인생도 이런 게 아닐까?
#1 눈과 햇살 사이
3월 29일 토요일. 아침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강동구의 하늘은 맑았다. 서울 둘레길을 걷기로 한 오늘, 마음 한편에 자리한 두려움. 긴 여정에 대한 부담감인가, 날씨 변화를 예감하는 직감인가. 가방에 물과 먹을 것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1시간 후, 중랑구의 하늘은 구름으로 뒤덮였다. 첫 발걸음, 봄의 전령사인 햇살이 간간이 구름 사이로 비친다. 서울둘레길을 함께 걷는 사람들의 얼굴에 봄날 산책의 기대가 어린다. 우리는 각자의 걸음을 이어갔다.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의 표정이 변했다. 구름이 짙어지고 작은 눈송이들이 춤추며 내려왔다. 계절의 경계가 무너진 듯했다.
망우역사공원에 들어설 무렵, 날씨는 더욱 험난해졌다. 눈 내리는 세상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눈은 쌓이지 않았다. 역사공원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갑작스러운 눈의 조화가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었다.
"3월 말에 눈이라니, 정말 이상한 날씨네요."
지나가는 등산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눈은 잠시 그쳤다가 다시 굵은 입자로 내렸다. 봄비도 아닌, 겨울의 마지막 인사 같은 눈발이 재킷 위에 하얀 점들을 남겼다.
망우산을 넘은 후 눈이 그쳤다. 아차산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바람이 주인공이었다. 산길을 오르내리는 동안 바람은 때로는 귓가에 속삭이듯, 때로는 온몸을 흔들어대듯 불어왔다. 아차산 정상 부근에서는 바람이 더욱 거세져 잠시 숨을 골랐다.
#2 구름이 걷히는 오후
아차산숲속도서관. 점심시간이었다. 배낭에서 준비해 온 것을 꺼내 도서관 앞 벤치에 앉아 먹었다. 숲속도서관의 고요함과 책 냄새,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주는 안정감. 오전의 변덕스러운 날씨로 인한 피로가 씻겨 내렸다.
다시 길을 나섰을 때, 하늘의 표정이 또 한 번 바뀌었다. 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간간이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한강을 건너는 다리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장관이었다. 한쪽은 구름이 남아있고, 다른 쪽은 파란 하늘이 드러나는 경계의 풍경. 한강의 물결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와, 정말 아름답네요."
한강을 건너는 동안 하늘은 점점 더 맑아졌다. 햇살은 더욱 강해졌다. 강변을 따라 피어난 봄꽃들은 방금 전까지 내렸던 눈을 무색하게 할 만큼 생기 넘쳤다.
광나루 장미원을 지나 암사역사공원에 도착했다. 우리 일행은 공원 벤치에 모여 휴식 시간을 가졌다. 간식을 서로 나누어 먹으며, 오전에 경험한 눈과 바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날씨가 다채롭네요."
함께 걷는 이들과 경험을 공유하는 기쁨. 혼자 걸을 때와는 다른 기쁨이었다.
다시 출발하여 고덕산으로 향했다. 산길은 이제 완전히 봄의 모습을 되찾았다. 눈은 온데간데없고,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어 땅 위에 아름다운 그림자 패턴을 만들었다. 고덕산에서 만난 고인돌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수천 년의 시간을 견뎌온 거대한 돌들이 오늘의 변덕스러운 날씨를 묵묵히 지켜봤을 것이라 상상하니 신기했다.
"이 고인돌은 오래전부터 있었다고 하네요."
안내판을 읽고 고인돌을 지나갔다. 인류의 역사와 자연의 시간이 공존하는 이 공간에서, 오늘 하루의 날씨 변화는 그저 찰나의 순간처럼 느껴졌다.
고덕산을 지나 고덕평생학습관 옆 맞이정원에서 해산했다. 사람들은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나는 아직 걷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었다. 5 정거장 거리를 더 걸어 집으로 향했다. 하늘은 온통 파란색이었다. 오전의 눈과 구름은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봄의 청명함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
집으로 가는 길, 오늘 하루 동안 경험한 날씨의 변화를 되새겨보았다. 아침의 맑음과 두려움, 망우역사공원의 험난한 날씨, 아차산의 바람, 한강을 건너며 본 아름다운 풍경, 광나루 장미원의 반가움, 암사역사공원에서의 휴식과 간식 나눔, 고덕산 고인돌의 신비로움, 마지막을 혼자 걸으며 느낀 성취감까지. 하루 동안 사계절을 모두 경험한 날이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30,000보를 걸은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뜨거운 물이 담긴 욕조에 몸을 담갔다. 따뜻한 물이 지친 근육을 감쌌다. 하루 동안의 피로가 서서히 녹아내렸다. 발목은 여전히 얼얼했다. 그 감각조차도 오늘의 특별한 경험을 증명하는 훈장 같았다.
서울 둘레길, 망우산, 아차산, 한강, 광나루 장미원, 암사역사공원, 고덕산을 지나온 오늘의 여정. 단순한 산책이 아니었다. 자연과의 대화였다. 계절의 경계를 넘나드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3월 29일 토요일, 봄을 맞이하는 서울의 하루는 다채로운 얼굴을 보여주었다. 나의 마음은 그 모든 순간을 담아 더욱 풍요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