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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Jun 09. 2024

첫직장 동기들과 36주년 여행

어디를 다녀왔는지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하기

태국 치앙마이에 다녀왔습니다. 첫 직장 동기모임 36주년 여행이었습니다. 입사 동기가 남녀 포함 스무 명 가까이 되었던 것 같은데 정확한 인원수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때 우리가 그 회사의 공채 2기였나 그랬습니다. 그중 여자 동기가 6명이었습니다. 여기에 한 살 많은 입사 선배와 동기처럼 끈끈한 관계가 되어 총 7명이 연락하고 지냈습니다. 36년 동안 2~3명씩, 4~5명씩 꾸준히 만났고 몇 년은 연락 없이 지낸 친구도 있지만 끈을 놓지 않고 있어 다 같이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녔던 우리 중 한 친구는 캐나다로 이민 갔고 한 명은 결혼하며 춘천에 자리를 잡았고 또 한 명은 홍천에 살고 있습니다. 2022년 캐나다로 이민 갔던 친구가 오랜만에 서울에 와 다 같이 춘천에서 모였습니다. 서울 사는 친구들은 콧바람 쐬는 기분으로 춘천여행을 간 거죠.  그때 우리가 만난 지 34년이 되었다는 걸 깨닫고, 35주년 기념여행을 가자고 결의했습니다. 캐나다에 사는 친구는 내년에 꼭 다시 서울에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 이전에도 여행 가자고 회비를 모았지만 개인 사정이 생긴 친구들은 못 가고 3명만 여행을 갔고 회비 냈던 친구들에게 돌려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회비를 모으면서도 여행을 같이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습니다.  


여행 가기로 한 2023년 가을, 캐나다에 사는 친구가 서울에 오지 못했습니다. 대신 2024년 봄에 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린 회비를 13개월간 내고 일단 멈추었습니다.  함께 여행을 갈거라는 기대치가 낮아졌습니다. 모임통장에 모인 돈을 정기예금에 넣어놓고 시간을 보냈습니다.  1월 갑자기 춘천 사는 친구가 치앙마이에 가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동의했습니다.  캐나다 사는 친구는 5월에 올 수 있다고 확답을 했습니다. 서로 여행 가능한 날짜를 얘기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5월 30일~6월 3일 일정으로 다녀오기로 결정했습니다.  7명이 다 함께 여행간것은 회사에서 가을마다 갔던 야유회가 전부였습니다. 우리끼리만 여행하는 건 처음인 셈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친구와 치앙마이로 여행 가자고 약속을 했었기 때문에, 그 친구도 이번 여행에 함께 할 수 있는지 동기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다행히 대부분 제 친구를 이미 알고 있어서 물어보기 편했고 동기들도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이후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투어보다는 쉬엄쉬엄 하는 여행을 하자고 하여 느슨한 일정으로 8명 만을 위한 패키지 일정이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는 수학여행 가는 고등학생처럼 인천공항에서부터 들떴습니다. 별 것 아닌 거로 웃고 얘기했습니다. 목소리가 커지자 서로 자제시키며 공중도덕을 일깨웠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웃을 정도의 소녀감성은 사라졌지만, 괜히 신나고 즐거웠습니다. 대한항공 기내식으로 나온 비빔밥의 양이 적어지고 맛도 예전만 못하다는 감상평을 했고 식사 후 맥주와 와인, 스낵까지 잘 먹는 춘천 사는 친구를 부러워했습니다. 땡볕에 타지 않기 위해 선크림을 목, 팔, 다리, 발까지 꼼꼼히 바르고 모자와 양산으로 무장한 채 다녔습니다.  날씨예보에 여행기간 내내 비가 온다고 하여 각자 우산을 준비해 갔는데 다행히 비는 소량으로, 그것도 관광지에서는 내리지 않고 버스에 타면 내렸습니다. 우리는 운이 좋다며 싱글거렸습니다. 그 우산을 양산 삼아 쓰고 다녔습니다.  밤에는 호텔 수영장에 모였습니다. 수영장을 전세 낸 것처럼 우리만 있었습니다. 수영을 할 줄 아는 친구는 2명밖에 없었지만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몸을 담갔습니다. 일행 중 2명은 죽어도 몸매를 드러낼 수 없다며 수영복 입기를 거부하여 선베드에 남아 얘기를 했습니다. 그때 망고를 원 없이 먹었습니다.  치앙마이에서 카페를 두 군데 갔는데 모두 규모가 어마어마했습니다. 단순히 건물만 있는 게 아니라 정원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꽤 큰 정원이어서 사진 찍기에 좋았습니다. 치앙마이 카페는 6시면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의아하게 물었습니다. "그럼 저녁 먹고 다들 어디 가요?" 가이드는 "집으로 가죠"라며 치앙마이 사람들은 외식을 많이 하지만 저녁시간을 집에서 보낸다고 했습니다.  술집, 클럽 등이 물론 있지만 늦게까지 하는 곳은 많지 않다고 했습니다.


태국은 불교국가라서 사원이 많습니다. 치앙마이에도 사원이 많았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원은 도이수텝(Doi Suthep) 사원입니다. 태국어로 'Doi'가 산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더위에 306 계단을 오를 수는 없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사원을 둘러볼 수 있는데 뜨거운 열기로 온돌방에 발을 딛는 듯했습니다. 그곳에는 점괘를 뽑을 수 있는 막대기가 있는데 원하는 것을 빌고 뽑으면 그 해답이 적혀있다고 했습니다. 몇몇 친구들은 막대기통을 흔드니까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고 했는데 대부분은 막대기 통을 흔든 후 손으로 뽑았습니다.  막대기에는 번호가 적혀있고 해당 번호에 맞는 종이쪽지를 줍니다.  우린 그 종이쪽지에 적힌 문구가 미래를 제대로 알려주는 것인지 미심쩍어하면서도 종이에 적힌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뽑은 종이에는 '참고 기다리라'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일에 치여 지쳐있다'는 말은 제법 맞는 말이었습니다. 치앙마이는 원래 태국의 속국으로 왕국이었다고 합니다. 란나 왕국. 란나는 '백만 개의 논'이란 뜻으로 비옥한 땅을 가진 곳이라고 합니다. 3 모작을 한다고 하네요.  치앙마이는 새로운 도시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치앙마이는 올드시티와 님만이란 두 지역이 핫플레이스라고 합니다. 도이인타논(Doi Inthanon)은 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어서 정상에 공군기지와 레이더 기지가 있다고 합니다.  국립공원으로 해발  2,565미터로 백두산(2,744미터)보다 약 179미터 낮다고 합니다. 차량으로 이동해서인지 그리 높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30분 정도 숲 속을 걸었는데 공기가 참 좋았습니다. 해발이 높아서 도심과 온도차가 많이 났습니다. 혹시 몰라 가져간 겨울 니트가 제 몫을 톡톡히 했습니다. 태국은 타이족이 80% 이상이고 나머지는 중국계, 말레이계와 소수민족들이 차지한다고 합니다. 고산지대에 사는 몽족 마을에서 커피를 마시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저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지만 소수민족이 사는 마을이 궁금했습니다. 마을은 1970년대 우리나라 시골 같은 풍경이었습니다. 개들이 목줄 없이 여기저기 늘어져 있었는데, 개를 무서워하는 저는 덕분에 걷기 불편했습니다.   

이번 여행은 단체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단체사진을 찍으며 깔깔대고 웃었습니다. MZ 감성으로 뒷모습 사진도 여럿 찍었는데 동작을 하나로 통일하는 일은 어려웠습니다. 하트모양은 제각각이고 양팔로 어깨동무하자고 하니 오십견으로 한쪽팔 밖에 못 든다는 친구들이 있어 웃픈 동작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이드가 있었기에 단체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태국인 가이드는 키가 커 보이게 사진을 찍어줘 모두의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차 안에다 카디건을 놔두고 카디건이 없어졌다고 찾아 헤매고, 가이드가 다음 목적지가 어디인지 설명해 줬음에도 '여기가 어디냐'라고 묻고, 심지어는 관광지 한 곳을 들린 후 점심 먹으러 가는데 '밥 먹으러 온 거냐'는 말을 하며 가이드를 정신없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재밌다며 웃었지만, 가이드는 마치 할머니 단체를 이끌고 다닌 느낌이었을 겁니다.  여행을 하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 동기는 모두 첫 직장이란 공통점이 있는 줄 알았는데 홍천에 사는 친구는 그 회사가 두 번째 회사였다는 겁니다. 첫 월급이 얼마였는지 기억을 더듬는데 그 친구는 많이 받았던 겁니다.  면접 때 월급 얼마를 받기를 원하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해서 다들 놀랐습니다. 신입이 아니라 경력직으로 입사했던 겁니다.  36년 만에 월급이 다 같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너무 오래전 일이니까요.

일정에 없던 크롱메카(Khlong Mae Kha)

그렇게 아주 짧은 3박 5일 여행이 끝났습니다. 너무도 금방 끝나버린 일정에 우리 모두 아쉬워했습니다. 다음 여행은 장가계로 가자는 얘기가 나왔고 캐나다에 사는 친구는 2년 후에 서울에 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당장 회비를 다시 모으기로 했습니다. 2년간. 총무는 계속 제가 맡기로 했습니다.  치앙마이에서 밤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비행기에서 일출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습니다. 출장과 여행으로 기내에서 일출, 일몰을 많이 봤지만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뉴질랜드 여행이 처음이었습니다. 앞으로는 기회 될 때마다 찍어두려고 합니다. 언제 봐도 신비스러운 광경이기 때문입니다.


월요일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일하는 친구들은 당일 오후에 출근했습니다. 저는 휴가를 내고 쉬었는데 씻고 바로 잠들어 밤 10시에 일어났습니다. 말 그대로 뻗어버렸습니다. 다음 날도 휴가여서 집에서 뒹굴거린 후에야 여독이 풀렸습니다.  그런데 쉬지 못하고 일한 친구들은 정말 체력이 짱입니다. 여행 내내 한약 먹는다고 고기, 밀가루를 피하며 먹다가 결국 밀가루 음식을 먹고 낙담한 저와 달리 친구들은 아무 음식이나 잘 먹고 다녔습니다. 다들 한 가지씩 고질병 약과 영양제를 먹으면서 말이지요.  체력도 운동하는 저보다 더 좋았습니다. 패키지여행은 너무 힘들다는 걸 새삼 깨닫고 다음에는 자유여행을 제안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느슨한 일정으로 짠다고 했는데도 아침 7시 30분에 밥 먹고 9시에 버스에 올라 밤 8시, 9시에 호텔로 들어오는 일정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저는 여행지에서는 느지막이 일어나 9시쯤 아침을 먹고 어슬렁거리며 다니거나 한 군데서 멍한 시간을 좀 보내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그랬는지 친구들과 한 여행이 재밌고 즐거웠지만 여독 푸는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저는 운동 열심히 해서 그들보다 체력이 좋고 생일도 12월이라 생물학적 나이도 제일 어린데 이렇게 힘들 수 가요.  이 기이한 현상을 후배에게 말했더니 "그 친구들은 다 결혼하신 분들이죠?"라고 물으면서 엄마들은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습관이 들어서 그럴 거라고 했습니다.  일견 수긍되는 가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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