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9. 9
하루 종일 구름이 하늘을 진하게 가렸다. 아침에는 아주 조금 틈이 있었지만 오후에는 그마저 여러 겹으로 가려 파란 하늘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기분도 좀 가라앉았다. 하늘 보고 예쁘다, 아름답다는 마음이 들지 않으면 심심하고 재미없다. 사진 찍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퇴근길에서야 파란 하늘을 보고 참 반가웠다. 구름이 많이 걷힌 하늘은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았지만 사진 찍을 만큼 환했다.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가끔 하늘의 모습과 내 상태가 연동된다.
운동 후 집으로 가는 길에 두 커플이 휴대폰으로 뭔가를 찍으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봤다. 뭘 찍는 건가 궁금해하며 휴대폰이 향한 곳을 보니 달이었다. 아주 환한 보름달이 제법 커 보였다. 그들을 무심한 척 지나 달이 잘 보이는 곳에서 나도 휴대폰을 들었다. 확대한 달 사진을 많이 찍은 관계로 매번 같은 모양의 사진이라 찍을까 말까 잠시 망설였지만, 100배 확대는 찍은 적이 없다는 걸 곧 인식했다.
100배 확대한 달 사진은 달 표면이 훨씬 더 잘 보인다. 특히, 달 하단 중앙부가 마치 수박, 참외에서 볼 수 있는 꼭지처럼 보인다. 궁금해서 AI에게 물었더니 "티코 분화구"라고 알려준다. 분화구 중심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광선 때문에 지구에서도 잘 보이는 것이란다. 약 1억 년 전 충돌로 생겼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억 년. 가늠할 수도 없는 시간.
문득 궁금해졌다. 인간은 우주의 한 생명체일 뿐인데, 모든 만물의 지배자로 살아가고픈 사피엔스의 욕심은 진정 '종'의 종말을 불러올 것인가. 새로운 '종'의 인류가 탄생할까?
역시 AI에게 물어봤다. 자연진화로는 희박하지만 유전공학으로 인위적 조작은 가능할 수 있다고 한다. 또는 기술(사이보그, 인공지능)과 결합한 포스트휴먼 시대가 오며 그때는 '종'의 개념이 무너질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이 생물학적 존재를 넘어서는 존재를 어떻게 부를 것이냐 하는 문제는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설명을 한다. (AI는 확실히 숫자와 과학 얘기에 좀 강하다)
건강염려증을 앓고 죽음을 두려워 하지만, 때로 우주 만물의 미생물일 뿐이라는 걸 떠올리면 죽음도 질병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음을 자각한다. 그럴 때면 마음이 편해진다. 마음이 편해지면서 손이 가는 음식을 먹는다. 식단 관리를 하지만 그것 때문에 더 건강에 예민해지고 불안지수가 높은, 악순환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요새 좀 풀었다. 그랬더니 불안지수가 낮아진 것 같다. 플라시보(placebo) 효과일지 모른다. 이러다가 피검사를 하고 수치가 올라가면 또 식단을 열심히 지키려고 할 것이다. 지금 희망은 이런 편안한 상태가 지속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