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19
노들섬을 처음 안 건 2019년에 업무차 답사를 갔을 때였다. 새로 단장한 시설을 둘러보며 '외국인 관광객도 좋아하겠는데' 싶었지만, 그 후로도 나는 일로만 이곳을 찾았다. 강변의 너른 잔디밭이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올 추석연휴는 거의 열흘에 가깝게 길었기에 싱글 모임의 친구들은 심심하면 연락하자는 말을 했었다. 느닷없이 한 친구가 모임방에 소풍 가자고 했다. 그러자 한 친구가 노들섬을 추천했다. 급 번개가 성사되었다. 일요일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오전인 탓인지 사람들은 별로 없었고 연휴 내내 내린 비로 땅에는 아직 물기가 많았다. 우리는 가져간 돗자리를 까는 대신 벤치에 앉기로 했다. 빗물에 젖은 벤치를 닦아내고 각자 가지고 온 먹거리를 풀어놓았다. 자리에 앉자 정면에 보이는 63 빌딩과 여의도의 스카이라인, 철교가 한눈에 보였다. 시야가 탁 트여 기분마저 상쾌했다. 강 위에는 이름 모를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서울 같지 않았다. 이국적이면서 낭만적이었다. 뉴욕의 센트럴파크 부럽지 않았다. 왜 진작 여기에 오지 않았을까? 버스정류장 위치도 바로 노들섬 입구고, 버스 노선도 많아서 편리한데.
노들섬은 이미 인스타그램에서 멋진 노을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날 노을까지 보고 싶었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있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비록 친구들과 카페에서 얘기 나누다 4시쯤 헤어졌지만, 일몰 시간까지 더 머물러야 했기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해 뜨고 지는 모습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해 뜨는 모습은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탓에 잘 못 본다. 해지는 모습은 기회 되면 언제든 보고 싶지만,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보내노라면 저녁노을을 보기 참 어렵다. 노을 감상하기 좋은 장소라는 노들섬에서 꼭 한번 보고 싶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화실에 같이 다니는 친구에게 노들섬에서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다고 말했더니 가보자고 하여, 즉흥적으로 가게 됐다.
오후에 간 노들섬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꽉 찼다. 돗자리를 쫙 펴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장관이었다. 아무 준비 없이 간 우리는 앉을 곳을 찾아 헤매다 6인용 벤치에 두 명이 앉아 있는 곳을 발견했다. 같이 앉아도 되는지 양해를 구한 후 합석했다. 마침 그 시간에 버스킹 하는 사람의 노랫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렸다. 남자 가수가 부르는 발라드가 무척 감미롭게 들렸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멍하니 강, 하늘, 강 넘어 빌딩숲을 봤다. 한강철교로 전철이 지나갔다. 도시적인 빌딩 풍경에 기차 지나는 소리처럼 덜커덩 소리를 내며 지나는 전철의 모습이 마치 시골풍경처럼 정겹게 느껴졌다. 강에는 지난주보다 더 차가운 기온 탓에 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요트가 한가로이 지나다녔다. 평화로웠다.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이상하게 혼자 있는 듯 고즈넉했다. 멍 때리기 좋았다. 그렇지만 너무 추워 오래 앉아있기 힘들었다.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지는 것까지 보고 싶었는데 손 시리고 몸이 으스스하여 못내 서운한 마음으로 일어났다.
강변을 천천히 걸으며 사진을 찍다가 해가 구름에 가려져 노을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낸 후, 얼어붙은 몸을 녹이려고 분식집에 들어가 어묵탕을 시켰다. 한강 라면을 끓이듯 셀프로 끓여 먹는 어묵탕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을 들고 한강대교가 보이는 창가에 자리 잡았다.
그때 오른쪽으로 붉은빛이 번쩍였다. 고개를 홱 돌렸다. 구름 사이를 뚫고 태양이 마지막 힘을 다해 강렬한 빛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바깥 자리를 아쉬워하며 일어섰는데, 알고 보니 여기가 진짜 명당이었다. 게다가 따뜻한 실내가 아닌가. 얼른 몸을 틀고 태양을 마주했다. 육안으로 보기엔 너무 눈부셔 휴대폰으로 가렸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보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몸을 좀 녹인 후 분식집 있는 건물의 루프탑으로 올라갔다. 태양이 이제 거의 저물어 작별의 빛을 뿌리는 중이었다. 진하고 어두운 붉은빛이 사방으로 퍼지며 동쪽 하늘은 분홍과 보라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점점 사위가 어두워졌다. 금세 다시 추워졌지만, 우리는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노들섬을 '글로벌 예술섬'으로 만들기 위해 11월부터 2년간 대공사를 한다고 한다. 그동안 이곳에 올 수 없다. 당분간 오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미련을 낳았겠지만, 오늘의 노을은 오래도록 얘깃거리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