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으로 인생 역전 (7)
퇴원 후에 샤워가 가능하다고 한 날이 되었다. 그날은 이제까지 안 봤던 수술 부위를 볼 생각이었다. 전절제를 당한 내 가슴은 어떤 모습일까. 붕대를 풀고 욕실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뒤돌기만 하면 거울이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거울을 응시한다. 엥? 뭔가 멀쩡해 보인다. 거울이 아니라 고개를 내려 직접 봐도 그렇다. 수술받은 오른쪽 가슴이 칼자국만 길게 2개 나 있을 뿐 왼쪽 가슴과 비슷한 사이즈다. 분명히 수술 조직검사지에는 192그램을 잘라냈다고 되어 있었는데? 이게 무슨 횡재인가, 했다가 아니 수술이 잘못되었나? 했다가, 퇴원 전에 간호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수술 부위에 물 차면 병원에 오세요."
"그런 경우도 있나요?"
"가끔 있답니다."
불안한 눈빛으로 내가 물었다.
"물이 차는지 안 차는지 어떻게 아나요?"
"물 담은 풍선 느낌 같으실 겁니다."
만져보니 출렁~ 하는 느낌이 영락없이 물 담은 풍선 같다.
예약을 잡고 병원에 가니 젊은 의사가 초음파로 수술 부위를 보여준다.
"이 부위에 물이 차 있네요."
하더니 주사기를 가슴에 꽂는다. 처음 겪는 나로서는 놀라서 눈을 찔끔 감았지만 젊은 의사는 늘 하는 일인지 행동에 주저함이 전혀 없다. 주사기에 액체가 담겨 나오자, 확연히 가슴이 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후로도 물이 계속 찼으므로 병원에 2주에 한 번씩 물을 빼러 다녔다. 5번쯤 빼고 나니까 수술 부위 피부 밑으로 바로 갈비뼈의 굴곡이 드러났다. 20대의 남편 모습이 떠올랐다. 깡말라 있던 그는 가슴 피부 밑으로 갈비뼈의 위치가 확연했었다. 그때의 안쓰러움을 내 가슴이 장착하다니. 남편은 30대부터 꾸준히 운동을 해서 지금은 건장한 상체를 가지고 있다. 남편을 보며 결심했다. 나도 운동을 해서 이 갈비뼈를 다 가려놓고 말겠어! 그 다짐을 서너 번쯤하고 잊어버릴 무렵엔 부처님이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절에 가기 좋아하는 친구와 등산 중에 가끔 절에 가곤 했는데, 대웅전 부처님을 뵐 때마다 불경스럽게도 부처상의 가슴 근육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때마다 운동해서 대흉근을 키우겠다는 결심을 되새기는 것이다. 하지만 당근을 써는 것 같은 사소한 집안일에도 수술받은 쪽 어깨와 팔이 아팠으므로 그 다짐은 쉽게 잊혔다.
대신 그동안 유방이 어떤 쓸모를 가진 기관이었는지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방은 모유수유에만 쓰이는 기관이 아니었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쓸모는 복원할지 말지 고민할 때부터 예상했다. 유방은 옷빨을 살려주는 근본적인 구조다. 신체 모든 기관이 옷빨을 잘 살려주는 구조겠지만 나는 가슴이 한쪽만 없어서 그런지 상의를 입고 거울을 보면 좌우가 틀어지고 볼품이 없다. 평소에도 패션 센스가 없는 편인데, 이건 아주 대놓고 이상하다. 사라진 오른쪽 구조물을 대체할 수 있는 뽕브라나 인공 유방을 몇 개 샀다. 그런데 내 몸이 아니라 부착물이라 그런지 매우 무겁게 느껴진다. 내 몸도 무거운데 너까지 달고 다니지는 못하겠다 싶다. 비싼 그 물건은 서너 번 사용 후에 구석에 처박혔다. 그다음은 옷에 브라패드가 달려 있는 제품을 시도했다. 겉옷에 브라패드가 붙어 있으므로 왼쪽 오른쪽 차이가 나지 않고 가벼워서 만족도가 높았다. 단 조심해야 할 일이 있다. 패드가 바깥 부분으로 볼록 나와 있는 형태인데 오른쪽 가슴은 그 아랫부분이 비어 있기 때문에 가끔 패드가 눌러져서 오목한 형태로 뒤집어져 있는 경우가 생긴다. 그것도 꽤 우스꽝스럽다. 길을 가다 반사되는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아이쿠야~하며 가슴을 가리는 일이 종종 있다.
하지만 미용적인 쓸모보다 실용적인 쓸모가 더 크게 다가왔다. 유방은 단연코 훌륭한 범퍼이다. 수술 직후 몇 달은 유방의 부재를 잊어버리는 순간이 많았으므로 의외로 여러 군데에 부딪혔다. 통돌이 세탁기에서 세탁물을 꺼낼 때도 세탁기 입구에 갈비뼈가 턱 받혔고, 반대쪽에서 갑자기 열린 미닫이 문에 부딪혔을 때도 가슴뼈에 충격이 느껴졌다. 엎드려 자다가 침대 모서리에 갈비뼈가 닿는 느낌 때문에 깨기도 했다. 뼈전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6개월마다 찍는 전신 뼈스캔 검사에서 오른쪽 갈비뼈가 까맣게 나왔다. 이런 경우는 뼈에 암이 생긴 것이거나 미세 골절이 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워낙 교수가 물었다.
"갈비뼈 다치신 적 있나요?"
"많지요. 요새 계속 다칩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곳에 가면 반사적으로 겨드랑이에 손을 꽂아 팔짱 끼는 것처럼 자세를 취한다. 그렇게라도 범퍼를 만들어 혹시나 생길 충격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몇십 년 동안 가슴부위로 오는 충격을 흡수하고 완화해 줘서 고마웠다. 내 가슴아.
또 유방이 내가 잠자는 동안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유방암 재발 방지를 위해 5년간 먹어야 하는 타목시펜이라는 약은 강제로 여성호르몬을 차단하는 약이다. 강제 갱년기를 겪는 셈이다. 복용을 시작하고 첫 번째로 온 증상은 불면증이었다. 그전에는 머리만 대면 바로 잠들 수 있고 무슨 난리가 나도 잘 수 있던 터라 남편이 내 잠버릇에 대해 설명해 줄 때면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젠 전세가 역전되었다. 남편이 어떻게 자는지 상세하게 묘사해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잠이 오지 않으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남편을 재우려고 말을 멈추고 자는 척을 한다. 조금 있으니 남편의 숨 쉬는 간격이 길어지고 가볍게 코를 고는 소리가 난다. 코를 골다가 가끔 너무 길게 숨을 멈추는 것 같아서 남편 코에 손가락을 대보면 숨을 쉬고 있는 것 맞다. 안심하고 도로 눕지만 잠이 안 오니까 옆으로 돌아눕는다. 그때 남편의 손이 나를 찾는다. 응? 해보지만 대답이 없다. 잠결인 듯싶다. 남편의 손은 내 잠옷 밑으로 들어오더니 가슴을 더듬는다. 내 오른쪽에서 자는 남편이 남편을 등지고 옆으로 누운 내 가슴을 만지자니 오른쪽 가슴이 타깃인가 본데 한참 만져도 뭐가 안 잡히니 손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풉~하고 웃다가 찔끔 눈물이 난다. 길 잃은 남자가 짠해져서 몸을 뒤로 더 움직여서 남편의 손이 왼쪽 가슴에 닿을 수 있도록 해 준다. 남편의 손은 왼쪽 가슴을 한참 만지다가 쌔근쌔근 상태가 된다. 힘을 뺀 남편의 손은 무게감이 느껴진다. 가만히 남편의 손을 빼놓고 나도 자 보려고 양을 세기 시작한다. 수천 마리쯤 셌다 싶으면 또 남편의 손이 와 있다. 평소에 이렇게 하고 잤구나... 왼쪽 가슴이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from 49세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