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배우는 시간 (12)
이번 주 글쓰기클래스 합평 때 첫 번째로 올라온 글은 ‘최초의 반항’이라는 글이었다. 셋째 딸이었던 글쓴이는 물려받는 일에 익숙했다. 부모는 중학생이 된 그녀에게 시계를 사주겠다고 했다. 부푼 마음으로 기다리던 그녀가 받은 시계는 뭔가 좀 이상했다. 요리조리 살펴보다가 그녀는 알아챘고 부모에게 소리쳤다. “이거 가게 손님이 맡긴 거지?” 스탠드빠를 운영하던 부모가 술값을 내지 못한 손님이 맡긴 시계를 줄갈이만 해서 딸에게 준 것이다. 딸의 거센 반항에 부모는 새 시계를 사주었다. “시계는 좋은 건데…”라는 엄마의 말도, 자신의 반항이 상황을 바꾼 것에 대한 뿌듯함도 인상적인 글이었다.
자녀의 마음보다는 부모의 마음에 공감하는 나이여서 그런지 다음과 같은 궁금증이 먼저 들었다. 왜 부모가 시계를 사주겠다고 하지? 딸이 먼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왜 사주겠다고 약속하고 딸에게 이 원망을 듣는 거지? 원래 이 집은 중학생이 되면 시계를 사 주는 집인가? 위의 두 언니들도 중학생 때 시계를 받았나? 이런 호기심이 일었다. 합평 의견을 낼 때 그 궁금증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했다. 2 문단만 써야 하는 우리 클래스의 상황상 분량의 문제로 안 쓴 것이라면 ‘그것은 나의 첫 번째 반항이었다.’라는 첫 문장이 ‘최초의 반항’이라는 제목과 중복되니 삭제하고 부모의 약속에 관한 정보를 더 주면 좋겠다고도 했다. 다른 급우들도 '시계를 주고도 저런 원망을 듣는 부모에게 부당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당할까요?’라든가 ‘그 시절에 스탠드빠를 운영했으면 부잣집 아닙니까? 부모는 왜 그러셨을까요?’와 같은 의견을 냈다.
듣고 있던 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글을 쓰는 법 못지않게 글을 읽는 법도 익혀야 해요. 상호 피드백을 할 때 우리의 목적은 팩트체크가 아닙니다. 글을 호기심으로만 대하면 공감할 수가 없어요. 저자의 글 보자기를 풀 때 독자는 그 안에서 독자 자신의 이야기를 만나야 해요. 문을 열고 이 글을 환대하겠다는 마음으로 읽으면 글 속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말을 듣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내가 호기심을 앞세워 조심성 없이 보자기를 풀어헤칠 때 강사는 어린 소녀의, 부풀어 올랐다 푹 꺼진 실망감에 공감하고 있었다. “이거 가게 손님이 맡긴 거지?”라는 말이 가져왔을 부모의 민망함, “시계는 좋은 건데…”라는 대사에 드러난 엄마의 심정, 헌 시계에 시곗줄만 바꿔서 선물했던 어른들을 대하며 세상과 첫 대면했던 아이의 날카로운 순간을 강사는 읽어내고 있었다. 내가 시시비비 가리느라 제대로 못 읽고 있을 때 강사는 독자를 단숨에 13살 소녀의 실망감으로 데려간 좋은 글을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친구가 쓴 글을 읽다가 어떤 문장에 밑줄을 치며 한참 동안 반성을 한 적이 있다. 읽기와 요약에 대한 글이었고 ‘내 관점을 찾는 일 이전에 대상을 온전히 지켜주면서 풀어헤치고 정성스럽게 다시 쌓는 과정을 소홀히 했다. 타자에 대한 배려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라는 문장이었다.’ 이 문장에 밑줄을 친 것이 한 달 전쯤인데 잘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셈이다. ‘온전히 지켜주면서 풀어헤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쓴이가 무엇을 쓰고 싶었는지부터 섬세하게 파악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를 하기 전에 너는 무슨 얘기가 하고 싶었던 거야? 에 먼저 귀를 기울이고 읽어야겠다. 자꾸 또 실패하겠지만 자꾸 또 연습해야지. 다음 시간에는 내 글로 합평을 하게 되니 찔리고 아프면서 더 잘 배울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든다. 자, 합평에 올릴 글을 써 보자. 이번 주 글 과제는 3 문단짜리 유년시절 이야기이다.
제목 : 장례 말고 발굴!
유년 시절의 첫 기억! 30대의 엄마는 부엌에, 서너 살쯤이었던 것 같은 나는 방에 있다. 방과 부엌 사이의 문은 틈이 성긴 여닫이다. 문틈으로 엄마가 뭘 하시나 내다보았고 아궁이 앞에 앉아계시던 엄마와 눈이 딱 마주쳤다. 엄마는 무서운 눈을 하고 문을 열었다. “왜 엿봐. 당당하게 봐야지. 왜 엿보냐고!”라고 시작된 엄마의 말들은 너무 크고 빨랐으며 꾸지람은 길고 무서웠다. 목이 콱 막혀 울 수도 말할 수도 없던 그날은 잊히지도 않고 생생하게 자주 생각났다. 그때마다 억울함인지 공포인지 수치심인지 모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함께 찾아왔다.
그때의 엄마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을 무렵 엄마에게 그날을 물었으나 생각나지 않는다 하셨다. 반갑지 않은 기억과 감정이 찾아오는 것이 싫어서 이야기를 지어 떠나보내기로 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최대한 끌어모아 개연성 높은 이야기를 만들었다. 엄마는 시모에게 볶여대며 고단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라고. 시모의 눈과 닮은 눈을 가진 딸내미가 시모스러워 보이는 행동을 하자 화가 폭발했던 것이라고. 30대의 그 젊은 엄마도 위로가 필요한 하루였다고. 30대의 내가 30대의 엄마와 3살의 나를 모두 안아주는 엔딩장면까지 더해 이 이야기를 마음속에서 반복적으로 상영했다. 이런 기억 장례식은 효과가 있었던지 예전만큼 자주 생각나지는 않았고 떠오르더라도 감정 없이 건조하게 만날 수 있었다.
이제 80대가 된 노모에게 그날이 기억나느냐고 또 물었다. 전혀 안 난다신다. 상황을 자세하게 이야기해 드렸더니, “엿봤다고 혼냈겠지. 우리 엄마도 그런 짓 아주 싫어했지. 했다간 크게 경을 쳤어.”라고 하신다. 예상 못한 답변이다. 웃음이 난다. 내가 지어냈던 이야기와 비슷한 데가 없다.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당한(?) 육아법을 나에게 그대로 실천했을 뿐이다.
“그게 그렇게 화낼 일이었을까요? 그러지 말라고 좋게 말해도 됐을 텐데?”
“미안하다.”
“아니, 외할머니 말예요.”
“외할머니가 성질내면 나는 도망 다녔어. 한참 있다 풀어지시면 그때 집에 들어가면 돼.”
“난 그때 도망 다닐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는데?”
”넌 도망 다닐 필요가 없었지. 때리지 않았잖아.”
“그러네요. 때리지는 않으셨죠.”
“......”
어릴 때 자주 도망 다녔던 엄마는 침묵으로 도망 중이실까? 쫓기는 10살 엄마가 가여워 추궁으로 들릴 것 같은 말은 멈추고 화제를 바꾼다. “외할머니는 어떤 분이셨어요?”
장례를 치를 일이 아닌가 보다. 외할머니 이야기부터 다시 써야겠다.
기억은 묻을 일이 아니라 제대로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잘 드러나게 써졌을까? 급우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from 51세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