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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어리 Aug 06. 2024

01 워낙 작은 가슴 덕분에

유방암으로 인생역전 (1)



   수술 전날이었다. 전절제 신세가 된 오른쪽 유방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있는데 수술과정을 설명하러 의사가 들어왔다. 담당 교수가 아니라 젊은 의사였다. 여러 설명 중에 내 귀에 꽂히는 내용은 주로 복원을 할 때의 부작용이다.  


   한 달 전 수술 날짜를 잡을 때 담당 교수는 유방을 떼어낼 때 복원도 할지 결정하라고 했다. 오른쪽 유방을  잘라낸 자리에 인공 보형물을 집어넣는 방식으로 복원을 하는 거란다.

"나중에 복원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또 수술을 해야 하니까요. 젊으시니까 이번 수술할 때 당연히 복원하시죠?"

  라는 담당교수의 말에 '곧 50이 되는 내가 젊은가?' 하는 생각을 하느라 어정쩡한 ‘네’를 뱉은 사람이 나이긴 하다.

    

   하지만 이렇게 부작용이 많은 일이었단 말인가. 조심스러운 어투로 설명하는 의사의 말이 귀에 잘 안 들어왔다. 한 달 전에 이 많은 부작용들에 대해 말해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 결정하라고? 충분히 사례 조사를 하고 결정해야 할 일 같은데,라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해진다.


   젊은 의사는 계속 설명을 하고 있다.

  "선생님! "하고 의사 말을 막았다.

  "네. 환자분."

  "제가 이걸 언제까지 결정해야 하죠?"

  "내일 첫 수술이시라 오늘까지는 결정해야 보형물 팀에 연락이 갑니다."

  저녁 시간에 설명을 하면서 오늘까지 결정을 하란다. 젠장!


  의사에게 묻는다.

 "선생님! 선생님의 여동생이라면 어떤 방향으로 권하시겠어요?"

  여동생이 아니라 애인이나 아내라면, 이라고 물었어야 더 정확한 정보가 나왔을 것인가 하고 순간 후회된다. 하지만 젊은 의사에게 혹여 무례한 일이 될는지 싶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는 한참 망설이더니 답했다.

 "안... 하는... 방향으로... 권할 것 같습니다"

   덜커덩거리는 대답이 뭔가 그의 진심인 것 같아서 고마웠다. 한 시간 정도 생각해 보고 결정 내리겠다고 말하고 그를 돌려보냈다.


  유방암 환우들이 모인 인터넷카페[유이카페]에 들어가 ‘복원’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시작했다. 사례들을 읽어보니 복원을 했을 때도 문제, 안 했을 때도 문제다. 복원하지 않았을 때의 문제는 미용상의 문제뿐이라고 예상했지만 아니었다. 그보다 더한 문제는 척추 변형이었다. 가슴 양쪽 무게가 달라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척추가 휜단다. 척추가 휘면서 어깨, 목, 고관절 통증에 시달리는 환우들의 글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이럴 경우 양쪽 무게를 맞추려고 잘라낸 유방 쪽에 무게감 있는 속옷을 착용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지만, 24시간 착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효과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 복원을 하는 게 나을까? 복원을 했을 때 가장 겁나는 문제는 염증이었다. 내 살이 아닌 것이 몸속에 들어가서 얌전히 있어주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나 보다. 염증이 생겨서 보형물을 빼거나 교환하는 수술을 했다는 환우들이 많았다. 내게 안 일어날 수도 있지만 일어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보형물이 아니라 자신의 살로 복원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수술 규모가 너무 커지고 게다가 이 병원에는 선택사항에 없다.


  두 가지 선택지만 놓고도 너무 어렵다. 내가 미용적인 문제는 가뿐히 포기하겠다고. 그런데도 왜 이렇게 선택하기가 어렵냔 말이다.  미국에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건다. 누군가에게 설명해 보면 문제가 더 선명해 보이지 않겠는가. 아참. 이 아이는 새벽시간일 텐데, 하는 차에 동생이 전화를 받는다.

 "언니야, 말해. 나 일어났어"

  에라 모르겠다. 말을 시작한다. 의사가 복원할지 말지 오늘까지 확정하래. 이건 이래서 몸에 안 좋고, 저건 저래서 몸에 안 좋대,라고 상황을 설명해 본다.

  "언니야, 둘 다 어려운데, 척추 문제는 언니가 스트레칭을 열심히 한다거나 속옷을 열심히 착용한다거나 언니 통제범위 안에 드는 일 같은데, 염증 문제는 언니가 노력으로 뭘 해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거 같아."

   와~ 이 이과 가스나. 뭔가 선명하다. 그래. 그렇지.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쪽이 더 마음 편하겠다.

  "언니야, 전에 언니 아는 분이 전절제 하셨다고 했었잖아. 그분이랑 이야기해 보면 어때?"

  "맞아. 그 선배랑 통화해 봐야겠다."

 

  전화를 끊고 박 선배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선배는 10년 전에 부분절제를 했고 3년 전에 재발해서 전절제를 했다. 박 선배가 전화를 받는다.

  "선배. 저 내일 수술해요. 복원할지 말지 아직도 결정을 못했어요. 선배는 복원 안 하셨잖아요. 저는 결정하기가 많이 어렵네요."

  "응 그렇지요? 자기가 지금 몇 살이지?"

  "몇 달 뒤면 오십이요."

  "젊구만. 해요. 난 척추가 휘어서 지금 어깨랑 많이 아파요. 1주일에 한 번씩 교정원 같은데 다녀요. 목욕탕이나 수영장 갈 때도 많이 불편하고 뭔가 상실감 같은 게 들어요. 옷 챙겨 입는 것도 꽤 성가시네요. 무게 맞춰 입는 속옷이 굉장히 비싸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해요. 저는 하는 걸 추천해요."

  "네 선배님. 경험자 말을 들으니 선명하네요. 결정하는데 큰 도움 되었어요. 감사해요!"


   전화를 끊자마자 남편에게 전화가 온다. 내일 수술 때 보호자실에 대기해야 하는지라 내일 일까지 챙겨놓고 오느라 퇴근이 늦었다며 전화가 늦은 이유를 길게 설명하는 남편의 말을 끊고 복원 이야기를 꺼냈다. 의사의 말, 카페에서 읽은 이야기들, 동생의 말, 박 선배의 말까지 다 전했다.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는 다 괜찮아. 다시 수술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가슴 없어도 괜찮아. 아프지만 마. "

  아이구야. 목소리가 습하다. 내가 지금 필요한 건 냉철한 이성의 목소리인데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은 아픈 마누라를 둔 불쌍한 남자 목소리다.


  젊은 의사가 다시 들어왔다. 수술 동의서를 들고 왔다. 아까 설명하던 자료랑 보형물 샘플도 같이 들고 왔다. 보형물을 사이즈별로 나와 있어서 고르면 되는 모양이다.

  "맞춤 제작이 아니라 고르는 거였어요?"

  "네."

  "그러면 제일 작은 사이즈를 보여 주세요."

 했더니. 하나 보여준다.

  "어? 이것이 제일 작은 거예요? 더 작은 건 없어요?"

  "네. 이게 가장 작습니다."

   젠장. 보형물의 가장 작은 사이즈도 내 가슴보다 크다. 나는 복원을 해도 짝짝이가 되고 복원을 안 해도 짝짝이가 된다. 그러면 할 필요가 없다. 나의 긴 고민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복원하지 않겠다에 표시를 하고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했다.


   나중에 담당 교수를 만났을 때 조심스럽게 물었다.

 "교수님. 복원을 안 하면 척추가 많이 휠까요?"

   교수는 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볼륨이 워낙 작으셔서 안 그러실 겁니다."


  '워낙'까지 꼭 붙이셔야 했을까?  '워낙 교수'의 진료실을 나오며 짝꿍도 잃고 이 말도 들어버린 남은 왼쪽 가슴이 가여워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from 49세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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