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으로 인생역전 (12)
맘마프린트 검사 결과를 들으려고 담당 교수를 만나는 날, 긴장된다. 이럴 때를 위해 만들어둔 기도문이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나 자신에게 말해 준다. “항암 할 필요가 없다고 나와도 감사합니다. 몸을 덜 괴롭히니까. 항암 하라고 나와도 감사합니다. 암을 공격하는 강력한 무기를 하나 더 사용하는 것이니까.” 기도문을 반복하니 굳어있던 심신이 좀 펴진다.
내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실 의자에 앉자 워낙 교수가 결과지를 내 쪽으로 편다. 이것저것 수치를 설명하더니 결론을 정리해 준다.
“조직분화도 등급이 높아서 항암 쪽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항암 했을 때의 베네핏이 없는 걸로 나온 거예요.”
“아~ 네~.”
“항암을 안 하니까 호르몬 치료를 좀 세게 합시다. 타목시펜이라고 들어봤죠? 5년 동안 매일 드시고요. 주사도 2년 쓸 겁니다. 졸라덱스 주사는 석 달에 한 번 병원에 와서 배에 맞는 거예요. 약도 주사도 여성 호르몬을 막아줘서 재발을 방지해 줘요. 주사는 오늘부터 바로 맞고 가세요. 나가면 간호사들이 다시 안내해 줄 겁니다.”
“아~ 네~.”
“반응이 무덤덤하네요?”
“아~ 버퍼링 중인가 봐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여러 번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가족들에게 전화를 해 축하를 받으니 더 실감이 났다. 마음이 기쁘니 처음 맞는 배주사도 맞을만했다. ‘졸라’ 아파서 졸라덱스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었는데 괜찮덱스라고 이름을 바꿔주고 싶었다.
이 기쁨이 완전하게 깨끗한 것은 아녔다. ‘하마터면~’ 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맘마프린트 검사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워낙 교수는 항암을 권했을 것이다. 그는 10년 전만 해도 이런 케이스는 무조건 항암 했다고 했다. 담당 교수가 권하면 환자인 내가 거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별로 치료효과도 없는 맹독제를 썼을 것이다. 벌어졌다면 참 억울한 일이었겠다. 상상만 해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유전자검사가 보편화되기 전에는 안타까운 일이 많았을 것이다. 유방암 치료의 역사를 알아가다 보니 안타까운 일은 이것만이 아니다. 15년 전만 해도 곽청술이 광범위하게 시행되었다. 유방암을 진단받으면 무조건 겨드랑이 림프절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다. 노폐물을 나르는 기관을 제거해 버리니 부종이 생겨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다. 요즘은 일부조직만 떼어내어 제거할 필요가 있는지 판단한 후에 시행한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곽청술 시행 비율은 다른 나라들보다 높은 편이다.
현대 의학이 점점 발전하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완벽의 단계에 다른 것은 아니다. 의사가 전문가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그도 내 몸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학이 암덩어리를 없애는 방법 위주로 발달해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다시는 암이 생기지 않도록 건강한 몸으로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3분 컷 진료로 알기 어려운 영역이다. 그러니 나는 병원과 의사를 맹신할 일이 아니라 필요한 부분에 효과적으로 사용해야겠다. 의사가 어떤 경로로 특정한 판단을 하는지 물어볼 수 있을 만큼은 공부해야겠다. 암이 자란 몸이 된 것은 내가 50여 년간 쌓아 올린 일상에 그 원인이 있다. 치유에 관한 운전대를 내가 잡고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 몸에 대해 더 공부해야겠다.
from 49세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