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작품의 전체 화자 월튼의 역할은 바로 독자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제시하는 것이다. 월튼은 북극 모험에서 빅터를 만난 이후, 그의 사람됨에 감화된 모습을 보인다. 월튼은 결국 빅터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반드시 죽여달라는 유언마저 받아들이지만, 종국에 이르러 피조물을 마주했을 때는 그 유언을 이행하지 않고 오히려 피조물과 대화를 이어 나간다. 늘 빅터를 동경하던 그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본 작품 맨 앞부분, 월터가 누이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를 유심히 들여다보자. 그는 삶을 돌아보고 성찰의 시간을 가졌던 떠올리며, 부족함을 느낀 자신을 시험하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고자 떠난 계기를 설명한다. 그와 동시에 짧게 기술되어 간과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그는 과거에 호머와 셰익스피어의 시를 읽고 그 감성에 푹 빠져 살았던 일화 또한 함께 쓰여 있다. 당시 시대상과 작가 메리 쉘리의 주변 환경을 비추어 볼 때, 작가는 화자에게 남성적 영웅주의, 즉, 'enterprize'로 요약될 수 있는 속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자연을 경외하고 인간의 감성을 중히 여기는 낭만적인 속성도 함께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부여된 '양가성'은 화자를 잠깐 기다리게 만든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괴물로 여기게 되는 피조물'이나 '자연철학을 신봉하여 인류의 선봉장을 자처하는 빅터'처럼, 한 방향으로 어느 정도 귀결된 등장인물을 중립의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 준다. 월터는 결코 빅터에게도, 피조물에게도 휩쓸린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그에 앞서 자신의 관점들을 대조해 보는 과정을 거칠 수 있었고, 이후의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모호함이 가득한 작품을 다룰 적에, 양가성을 지닌 화자의 존재는 독자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독자가 내리는 선형적 판단을 잠시 멈추고 다양한 관점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는 한 방향에 치우친, 일방통행로 대신, 일종의 '폭넓은 사고의 공간'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