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한인실 강의 5주 차, 언어가 가진 특징 중, 규칙성의 필요 유무에 관한 토론이 있었다. 나는 단순히 '소통의 편의를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 게시판에서, 언어의 규칙성은 십상 필요한 것으로 여겨짐을 인정하면서도, 그 필요성이 오히려 해가 된 상황을 예시로써 제시했다. 또한 이를 근거로 하여 ‘언어의 규칙성은 모든 상황에서 예외 없이 요구되는 사항은 아니다.'라고 피력했다. 사실상 주류와는 대조적인 견해를 밝힌 것이다. 간접적으로 반례를 들어, 그것이 참이 되는 사례가 존재한다면 앞선 명제가 거짓임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이번 주 과제의 주제는 이전과 동일하게 필요성 유무에 대한 의견을 밝히는 것이지만, 그 필요성의 대상이 언어의 규칙성이 아닌 한국어 어문규범이다. 규칙성과 어문규범은 비슷하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소통' 한 단어가 모든 이슈를 삼키는 답변이 이번에도 다수 제시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나는 그 두 개념이 시작점부터 판이하다고 생각한다. 그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필요성에 대해 역설해 보겠다.
바로 앞에서 언급했듯 가볍게만 생각한다면 규칙성과 한국어 어문규범은 유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나는 약간의 시간을 들여 그것들이 탄생한 근거를 머릿속에서 되짚어 보았고, 둘 사이에는 꽤 근본적인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먼저 규칙성은 언어가 가진 '성질'이다. 규칙성이라는 단어에 '규칙'이 들어가기 때문에 오해의 여지가 있지만, 그저 '규칙적으로 발생하는 성질이 있다는 것일 뿐, 누군가가 그것을 명문화하여 규칙을 제정한 것이 아님'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과거 인간이 '본능적으로' 만들어 낸 '생존을 위한 도구'이고, 인간은 그 본능을 관장하는 인지 기능에 대해 완벽히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는, 불규칙한 인류와 함께 '불규칙할 수밖에 없는 성질'을 지닌 채 끊임없이 변화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아는 한에서 언어는, '대체로' 규칙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영역에서는 '때때로' 발생하는 불규칙한 패턴이 존재하고, 이는 필요하다면 연구를 통한 증명이 시도된다. 즉, 인간의 언어는 그 모든 의문이 해소되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불규칙하기 마련이니, 앞선 토론에서처럼 흔하게 발견되는 반례를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고, 또한 그렇기에 '언어의 규칙'이 아닌, '언어의 규칙성'으로 명명되었다고 생각한다. 접사 '-성'의 의미는 일관적이고 예측 가능한 패턴을 보이는 경향이라는 의미에 불과하고, 100% 확실하다는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어문규범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규칙이다. 인위적인 규칙이란 애매하거나 불확실하더라도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특정 범위 내에서는 완전한 규칙을 적용하려 드는 것이다. 규칙성과 규범의 차이를 축구에 비유해 보겠다. 축구 경기에서는 선수들이 자연스럽게 공을 주고받는 패턴이라던가, '천부적인 골잡이 손흥민', '창조적인 플레이메이커 이강인'처럼, 선수들이 경기하는 스타일 등은 규칙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기 중에는, 그 모든 규칙적 성질이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불규칙해질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어문규범은 해당 경기의 심판 판정에 비유해 볼 수 있다. 경기 규범을 지닌 심판의 역할은, 가령 애매한 경합 상황에서 일어난 불규칙함을 못 본 체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대로 일관되게 판단해야 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그러한 상황을 '인위적으로' 규정된 축구 규범으로 통제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어문규범은 규칙성과 다르게 예외란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아쉽게도 여기에는 또다시 "그렇다."로 확답하기 어렵다. 여기에는 조건이 붙기 때문이다. 만약 세세한 변수를 모조리 통제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그런 완벽한 규범을 만들었다면, 당연히 "그렇다."로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다. 가능한 한 어문규범은 한 땀 한 땀 세세하고 명확하게 엮어지지만, 매초, 매 순간 변화하는 언어를 미처 반영하지 못한다. 이 또한 인간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 지점에서는 언어의 규칙성과 공통점을 공유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해당 지점만을 공유할 뿐이지, 우리 인간에게는 이러나저러나 규칙성보다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이 규범이다. 이상 열거한 사항들을 통틀어 종합해 보면, 어문규범은 '인간이 통제 가능한 인지능력 안에서, 모두가 합의한 규정이라면 100%에 가깝게 확실하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정의했기에 비로소, 필요 유무에 대한 대답도 가능해진다. "우리가 인지 가능한 영역에서 특정한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규범은, 그 특정한 필요에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 특정한 상황에 한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