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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일 Aug 22. 2024

뜨거운 여름을 얼어붙게 만든 진심과 사실 사이

뜨거운 여름을 얼어붙게 만든 진심과 사실 사이


  여름이면 휴가를 떠난다. 예전엔 고향을 찾는다는 목적이 부모님을 뵙고 바다도 겸하여 체험해 보는 휴가였다. 하지만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후 여름은 아버님 추도예배일에 맞춰진 8월 19일 전으로 주말을 이용한다. 막내인 나를 포함 누님 두 분이 자녀들과 함께 오신다. 올해는 특별했다. 막둥이 승혜가 함께 가지 않아 부부가 어쩌면 처음으로 홀가분하게 여행 아닌 여행을 떠났다. 할아버지 산소 벌초를 위해 장화 두 켤레와 낫도 두 개 준비하고 굵은 아카시아를 대비해 톱도 준비했다. 여벌 옷은 당연히 챙기고 장갑도 준비했다. 누님들과 나눌 선물을 위해 땡볕에서 꽈리고추를 수확했고 호박, 가지, 건조하려다 포기한 청양고추도 넣었다. 늘 아내가 준비해 주었는데 이번에는 내 것은 내가 한다는 마음으로 짐을 챙겼다. 들뜬 마음을 진정하고 개인 짐을 챙겼지만 결국 혼자 준비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성경 책 챙겼어요?”

“앗! 조금 전까지 생각했었는데~~”

“차가 지하에 있으니 올라오는 사이에 제가 가져올게요.” 아내는 감사하게 마무리를 잘해주었다.


“어디까지 왔니?”

“응 우리는 강릉 지나가고 있어”

"내비게이션에서 40분 남은 것으로 나오면 거의 비슷하게 만나겠네.”

“조심해서 천천히 와 ”

누님 두 분과 조카 둘과 부모님께서 잠들어계신 하늘정원에서 조우하고 예배를 드렸다. 뜨거운 햇빛에 얼굴은 땀으로 범벅되었다. 그렇지만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모일 수 있는 끈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위쯤은 감사한 마음으로 날려 보낼 수 있었다. 

“멀리 가지 말고 더우니 작년에 먹었던 곳에서 식사하자.”

“어딘지 알지”

“네”

기껏해야 일 년 한번 방문하는 곳이지만 맛은 변하지 않았고 우리는 늘 하던 대로 만두를 추가했다. 조카가 식사 후 차를 마시는 게 어떠냐고 해 우리는 오랜만에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해변 찻집으로 장소를 이동했다. 인증숏을 여러 장 찍고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도 여러 장 남겼다. 만남이 내일도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는 나이 탓에 사진 찍기에 열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너무 이르니 숙소를 들어가기도 그러니 바다를 보러 갑시다.”

아내와 난 망상해수욕장을 방문했다. 8월 18일 폐장을 앞두고 인파가 몰렸는지 주차할 곳이 없었다. 빠져나가다 한 곳을 찾아 겨우 주차하고 한참을 걸어서 사람들이 분비는 해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다를 보려고 준비하고 온 게 아니다 보니 신발도 운동화고 정장 바지에 난방 복장부터가 불량이었다. 모래가 신발에 들어가면 불편할 것 같아 신발과 양말까지 벗고 과거에 멋을 부려 보려고 

“뜨거운 모래에 걸으면 무좀도 사라진다는 말이 있어.” 하며 운동화 속에 양말을 구겨 넣고 걸어 보았다. 하지만 여름 모래사장 걷기에 용기를 내기에는 온도가 아니었나 보다. 허세를 더 부릴 수 없는 모래사장의 뜨거움은 발바닥을 금방이라도 태울 것 같았다. ‘와! 세상에 이럴 수가’ 마치 뜨거운 물속의 개구리처럼 팔짝 뛰며 운동화를 내던지고 양말을 신기도 포기한 체 운동화에 발을 넣었다. 모래사장의 뜨거움을 무장하지 않고 이겨낼 수 없었다.

“내일 산소 갔다가 작업복 입고 침수해야 할 것 같아 지금은 아냐”

“네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모래의 반사 열기를 감당할 수가 없어요.”


“J 친구 올해도 어단리에서 펜션 장사하는가? 갑자기 망상에 오니 생각나네?”

“작년에 재미 좀 보았나 모르지”

“연락해 보세요.”

“난 숙소에서 쉬면서 자유를 즐길 것이니 친구 만나서 식사라도 하고 오세요.”

“거기서 잠을 자는 것은 그렇지 않아요?”

“잠은 편하게 자고요." 아내의 제안이 난 너무도 고마웠다. 고향을 지키는 J 친구는 신혼 때 지붕이 날아가 힘들었을 때, 부모님 상을 당했을 때, 딸아이 결혼식 때 언제라도 모습을 보였던 친구다. 하지만 난 사업을 폐업하고 어렵다는 핑계로 친구 어머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친구와의 불편함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아 눈물이 날 정도로 아내의 말이 고마웠다. “다녀올 게 쉬고 있어.”


“보조키 있나요? 잠이 들었나 문을 열 수가 없네요.”

“사람이 없네요.”

“언제 나갔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처음 숙소에 들어갔을 때 이상하다고 느꼈던 생각은 점점 불안감으로 엄습해 왔다. 밖에 나와 기다리며 혹시 외출했나 무작정 숙소 밖을 서성거렸다. 시간은 야속하게 빠르게 흐르고 속은 뜨거운 열대야 열기만큼 달아 들어갔다. 아이들에게도 연락했지만 아무런 연락 없었단다. 전화기는 켜져 있다고 한다. ‘왜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도 답이 없을까?’ 불안을 넘어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시간을 미룰 일이 아니다. 최대한 전화기 추적을 하려면 빠르게 대처하는 게 답이다 싶어 경찰서에 실종 신고하려고 차에 시동을 걸었는데 전화가 왔다.

“전화를 수없이 했네요. 애들에게는 왜 연락했어요.”

“전화해도 답이 없고 문자도 답이 없는데 시간이 몇 시야. 어디야?” 불안감이 안도로 바뀌면서 화가 났다. 하지만 큰 녀석이 전화해 준 엄마 위로해 주라는 말이 어리벙벙하게 했다.

“엄마가 허락한 거야.” 하며 항변했지만 아이는 나를 나무랐다.


“여기까지 와서 혼자 밥을 먹으려고 들어갔는데 서러워서 그냥 나왔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난 뭐라도 사다 놓고 나갈 줄 알았어요”

“그게 다 날 무시하는 데서 나오는 행동이에요.”

“앞으로는 같이 가는 일은 없을 거예요.”

“여보 난 정말 당신이 이야기한 말 그대로를 믿었다고 이렇게 일이 발생하리란 건 꿈에서도 생각하지 않은 일이에요.”

“그럼 문자에 맛있는 거 잡수세요. 뭐예요?”

“그럼 친구에게 갔는데 뭐라고 해요” 아내의 말이나 문자는 진심이 아니었다. 그저 인사치레로 하는 답이었다는 것이다. 황당하기 그지없고 대답할 말이 없다. 난 철없이 말의 단어 그대로를 믿고 막둥이가 없으니 눈치 보일 일이 없으니 쌓였던 묵은 숙제를 풀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니 충격이었다. 식사 시간을 늦게 온 건 사실이고 빵이라도 미리 사다 놓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모처럼 둘의 여행인데 친구를 만난 것도 사실이다. 진심이라고 믿고 행동했던 내가 미웠고 늦은 저녁이라고 먹으려고 식당에서 준비해 온 회덮밥과 빵과 우유는 고스란히 쓰레기가 되었다.


  살다 보면 내 마음과 다르게 일어나는 사건과 사연들이 많은 것 같다. 왜 진심을 말 못 한 것일까? 아니 왜 진심을 말하지 않았을까? ‘모처럼 둘인데 친구는 다음에 만나는 게 어때요?’ ‘나 배고파 늦을 것 같으면 뭐라도 먼저 먹고 있을게요’ ‘친구 얼굴 보았으면 대충 눈치껏 와요’ 등 진심을 말했으면 행동했던 사실들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우연은 우리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길 수 있다. 마치 약이 그 시간에 필요했던 사람에게 스미싱 문자가 택배 오류 연락 요망으로 왔으므로 전화하게 되고 결국 수억을 전기통신금융 사기당한 사례처럼 말이다. 상대에게 정확한 자신의 의사표시는 사랑을 돈독하게 하고 소통을 원활하게 하므로 행동에 어그러짐이 없게 만든다. 다투면서 성숙하고 어른이 되어가겠지만 상처는 흉터를 남기고 흉터는 언제나 공격할 무기로 되살아날 수 있다. 가깝고 친하고 편할수록 진심을 정확하게 전달할 필요가 있다. 사실이 밝혀지면 진실이 시인하고 더 좋은 내일을 위해 애쓰는 모두가 되었으면 한다. 뜨거운 여름 간담을 서늘하게 한 진심과 사실은 이제 평생 여름이 되면 잊지 못할 악몽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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