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 나름인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여보 오늘 시간 어떠세요?”
“바쁘지 않으시면 나 데리러 오라고”
“알았어”
평소에도 시간만 되면 어린이집 조리사로 활동하고 있는 아내를 데리러 갔던 터라 대답과 동시에 신나는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하루 전 눈사태로 고생한 아내가 오늘도 새벽같이 출근한 것이 미안하게 느껴지며 속도가 붙었다. 함께 퇴근을 더 많이 하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러운 곳이 있어 조심하며 어린이집 근처에서 대기를 했다. 그런데 퇴근하는 아내의 걸음걸이가 이상하다.
“왜 어디가 불편해?”
“퇴근하기 전에 원장실에 서류 주고 내려오다 바닥에 플라스틱 간식 통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지 못해 미끄러졌어요.”
“저런 조심했어야지. 허리가 불편해 보이는데?”
“네 처음 넘어졌을 때 정신이 없고 허리가 아팠어요.”
“한의원 침을 맞아야겠어요.” 아내의 평범했던 일상이 깨졌다. 눈 깜빡할 사이에 일상은 무너질 수 있고 내 생각과 다르게 전개될 수 있다. 그렇기에 누구도 어떤 것도 장담하며 살 수 없는 게 인생이다.
“끓어서 3분 후 맞지?”
“네 치~ 소리 나면 3분 후에 약 불로하는 거예요”
“헉 약 불이구나. 난 끄는 줄 알았지. 일 날 뻔했네” 전에 만약을 사태를 위해 밥 짓는 걸 실습을 했었다. 하지만 기능이란 계속되지 않으면 쉽게 잊는 게 맞는 것 같다. 밥 짓는 것 역시 가스 불을 사용하고 디지털화되면서 정확하게 시간을 맞추지 않으면 탈이 난다. 슬그머니 아내가 결혼하고 집에서 연탄불 밥을 짓지 못해 내게 물어보며 밥 짓던 날들이 생각났다. 미소가 절로 나온다. 세월이 흘러 40여 년이고 아내는 밥 기능장 난 밥 초보다.
“그래도 다행이네. 내가 한 밥이라 맛있네” 약간 질긴 했지만, 너스레를 떨며 첫 작품 밥을 먹으며 행복을 경험해 본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은 좋은 일에서만 찾는 게 아니다. 아내가 불편해 일상생활을 어려워하고 있고 허리 통증으로 고통 중이지만 행복을 만들어가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고 생각한다. 어려움과 아픔과 고통은 늘 우리 곁에 머물러있다. 단지 찾아오는 시간이 각각 다르고 맞아들이는 방법도 다양할 것이다. 머물러있을 때 누구도 모른다. 행복이 무엇인지 불행이 무엇인지를, 그렇기에 우리에게 일상은 중요하다. 평범하다는 단어 속에 심오함이 있다고 느낀다.
“세탁기가 다 돌아갔나 봐요. 빨래 좀 널어주세요.”
“네”
“준비되었으면 가자. 여보!”
“너무 일찍인데요. 당신 활동하는 시간에 지장 없으면 천천히 가도 돼요.” 한 주간을 넘게 아내의 발이 되어 출퇴근 기사 생활 중이다. 결혼 후 이렇게 철저하게 보필하기는 처음이다. 행복이 가까운 곳에 있다. 어찌 아내를 이렇게 철저하게 감시하듯 경호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을 경호하는 사람도 돈을 받고 계약관계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아내 경호는 완전한 의무감에 사랑을 양념한 복합 보살핌이다. 아내의 허리 아픔을 핑계로 소소한 행복을 다시금 찾게 되고 정도 깊어가며 남편밖에 없음도 확증시키고 있다. 부부는 언제나 필요에 따르지 않더라도 의무가 있고 행함 가운데 사랑과 행복이 꽃 피는 것이다. 차 안에서 나누는 대화도 재미있다. 평소에 나누던 대화와 다르게 향후 어디서 어떻게 살아볼 건지, 상상하며 나누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간다. 늘 기회라고 생각하는 버릇처럼 아내와 함께 이야기하고 출퇴근에 동행할 기회가 있다는 것으로 감사했다. 난 젊은 시절 토목 현장 근무 때문에 주말부부였다. 그리고 사업한답시고 또 전국을 떠돌아다니길 좋아했다. 영업용 자동차 운전기사 꿈을 이루었는지도 모른다. 하루 2천 킬로미터를 운전하고 현장을 누빈 적도 있다. 그렇게 자유 하던 몸이 아내와 함께 지내게 되었으니 이보다 일상이 행복할 수 있으랴? 사소한 문제 보잘것없는 상황에서도 의미만 찾으면 소중하고 확실하게 행복한 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자.
어제 한의원 다녀온 아내의 말이 맴돈다.
“의사 선생님이 생각보다 오랜 간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사진을 찍어봐야겠어요.”
“오늘은 퇴근하면서 병원에서 X-레이 확인을 해봅시다.”
퇴근 시간이라 병원은 한가했다.
“아빠!” 아내의 호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척추 2번이 손상되었어요. 이런 상태로 2주간 일하면 어떻게 합니까?”
“입원하셔서 누워 계셔야 합니다.” 단호한 의사 선생님 불호령에 아내에게 억지로라도 병원에 함께 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다 내 잘못이다. 아내의 참고 버티는 성격을 넘어서는 깡 억지를 부려 병원에 갔어야 한다.’
많은 시간 아내의 참고 견딘 시간에 미안하고 죄스럽다. 하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다. 결과를 바꿀 수는 없다. 미안한 마음으로는 결과를 바꿀 수 없다. 그렇지만 오늘 준비한 김치찌개로 저녁을 차릴 수 있고 아내가 맛있게 먹은 것으로 감사하자. 행동으로 위기를 이겨내고 기회로 바꾸자. 결혼 후 처음 사고로 병원 입원하는 아내에게 진심을 느끼게 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자. 아내에게는 쉼의 시간이고 마음을 다스리는 시간이 주어졌다. 긴 시간 소망한 섬김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기회로 다가올지 모른다. 완치하고 벌어질 우리의 인생 3막에서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소소하고 달달 한 사랑으로 행복을 완성하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