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밈없는 여름이란
무덥고 습한 공기 속 소심한 신세한탄
진동하는 차창에 기대어 거센 에어컨 바람을 저항 없이 맞는다. 곧 눈을 감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집중한다. 고막을 때려대는 청량한 밴드 그룹의 여름 노래와는 사뭇 다른 바깥을 빗물 자국이 어린 창문으로 잠시 응시한다.
머리가 아프다.
어느덧 노란 학원 버스가 집 앞에 멈춰선다.
기사님께 꾸벅, 고개를 숙이고 이글거리는 인도에 발을 내딛는다.
보도블록에 붙어 말라죽은 지렁이를 보는 것은 익숙하다. 주위에 개미 떼가 까맣게 몰려든 것도. 가끔 이런 자연의 섭리가 야속할 때도 있지만, 일개 인간이 무어라 한 마디 일책할 수 있겠나. 푸른 행성에 눌러앉아 신세만 지는 주제에.
인간으로서,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리 순수하고 고능하지만은 않다고 믿는다.
곧 후끈한 열기와 함께 희뿌연 수증기가 안경알 테두리를 잠식한다. 매 여름마다 겪는 일이다만, 내겐 이 혹독한 날씨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마스크를 벗고 손부채질로 앞을 가린 김들을 애써 치워낸다.
잘 가시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이웃과는 언제부턴가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서로를 신경 쓰기에 너무 바쁜 것인지, 애시당초 일말의 관심도 없던 것인지는 모른다. 하긴, 일과를 마치고 지칠 대로 지친 밤 열 시 반에 이웃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려는 사람은 드물겠다.
터덜터덜 현관문으로 다가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른다. 두어 번의 실패 끝에 시끄럽게 울리는 경고음을 무시하며 집 안으로 입성한다.
머리가 깨질 듯 시원한 에어컨의 냉기가 날 둘러싼다.
땀으로 끈적해진 살결을 차디찬 물에 문대며 여름 정말 싫다, 등의 한탄이나 하고는 재빨리 목욕을 마치고 선풍기 앞에 앉는다.
탄산이 빠져 밍밍한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다이빙 경기를 보고 있자니, 조금 행복하다는 생각이 든다.
습기 가득한 한밤의 날씨에 문득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만히 누워나 있고 싶다- 는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