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렁이는 여름이란
여름의 끝에서 내뱉는 더운 숨
버스가 타이어 아래 흘려대는 냉각수가 도로에 길게 자국을 낸다. 그마저도 금새 뜨거운 공기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버스가 흘리는 땀 같기도 하다.
예상이 들어맞았다. 정류장 전광판이 내비친 빨간 '혼잡' 표시를 이미 보았지만, 믿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으로 가득 찬 십칠 번 버스가 힘겹게 멈춰선다. 탈 수 있으리라는 작디작은 기대마저 사라지는 순간이다.
몇 분 뒤 다른 버스가 도착한다. 이미 떠나간 최선보다는 차악을 택하자. 냉큼 버스에 올라탄다. 이제 난 집까지 두 정거장 더 걸어야 하는 신세다.
무더위에 달가운 소식은 아니다.
땀에 젖어 살갖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몇 번이고 정리했다. 정확히는 정리하려고 했다. 손을 댈수록 머리는 더 엉망이 되어간다. 일찌감치 포기하고는 차디찬 에어컨 바람을 쐬며 눈을 감았다.
횡단보도 앞 정류장에서 내린다. 더운 기운이 마구 들이쳐 내게 남은 힘마저 앗아가는 듯하다.
여름을 길고도 지치는 날들로 채워진 한 잔의 음료라 할 수 있을까.
달고 쌉싸름한 자몽청이 탄산과 뒤섞여 각얼음 사이 자리한다.
빈틈없이 채워진 그 액체 사이로 조그마한 기포가 떠오른다. 우리가 숨쉴 수 있는 순간이다.
그 기포 같은 순간들이 있기에
우리가 여름을 조금이라도 사랑할 수 있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