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맣던 금이 끝내 벌어져 생긴 일이다.
원체 작은 지우개라, 일 년 반 만이다.
그동안
부끄러운 실수도
서러웠던 순간도
잊고 싶은 기억도
말끔히 지워냈구나.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글씨는 지워도 자국이 남는다.
그만큼 뒤에 쌓인 지우개가루는
기억을 지우는 데 쓴 또다른 기억의 편린이자
그동안의 상처가 쌓여서 뭉쳐진 기억 덩어리.
기억은 기억으로 잊는 거지.
새 지우개를 샀다. 이전보다 큰 걸로.
나름 고민해서 골랐다. 새하얘서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확 눈에 띈다.
새로운 기억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