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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티백 Oct 23. 2024

좋은 영향을 주고 받는 사람이 될 거예요.

5년차 프론트엔드 개발자, 조이

개발은 공예와 비슷해요. 레고 블럭을 쌓듯이 하나 하나 노력을 들이면 집도 만들고, 미끄럼틀도 만들 수 있는 거에요.
다른 사람들을 응원하기 시작하니까 스스로를 응원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이제 나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나한테 편지도 쓰고 채팅도 해요.
부캐 자아가 3개 정도 있어요. 지금의 저인 조이가 있고, 영어를 하는 그레이스가 있고, 연약한 나를 상담해주는 에밀리가 있어요. 셀프 심리 치료를 하는 거죠. 오늘의 나는 조이에요. 즐기고 있잖아요.

안녕하세요, 조이님.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조이풀 라이프. 뭐든지 즐기면서, 춤추면서 살아가는 걸 좋아하는 조이라고 합니다.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나의 지식이 비즈니스가 되는 곳, 국내 1위 교육 비즈니스 플랫폼 라이브 클래스를 개발하는 주식회사 퓨쳐스콜레에서 일하고 있어요. 웹 버전인 라이브 클래스, 앱 버전인 라이브 클래스 프로에서 웹 프론트엔드랑 플러터로 앱 개발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강렬한 회사소개네요. 조이님은 어쩌다가 IT 업계에 일하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대학에서는 화학을 전공했고 교직 이수를 했어요. 졸업 시즌에 진로의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는데 임용고시, 화학 쪽 대학원, 공기업, 공무원, 이런 것들은 다 하기 싫은 거예요. 고민하던 중에 만난 멘토분이 프로그래밍 쪽을 제안했어요. 저는 그때 학과에서도 양자역학, 계산 쪽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어서 잘 맞았던 거 같아요. 운 좋게도 친구한테 개발을 실무 레벨로 배울 수 있었고, 4개월만에 바로 취업을 했어요. 친구는 지금 9년차 개발자로 있어요.


그러면 왜 화학 공학을 전공했어요?

보편적으로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이 진로를 선택하는 것처럼, 저는 그때 화학을 계속 100점을 맞았기 때문에 “나는 화학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라고 생각했거든요. 재미는 있었지만 실험을 하는 건 싫었어요. 화학공학은 실험을 하는 직군이 많거든요. LG 생활건강에서 비누나 약을 만든다든지. 그런데 저는 4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실험을 하는 게 싫었거든요.


어떤 점이 싫었을까요?

예를 들면, A 물질 5g이랑 B 물질 3g을 합성했을 때 C가 1g이 나와야 되는 원칙이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1.5g이 나온다면? 왜 1.5g이 나왔을지 플러스/마이너스 요인을 생각해야 해요. 내가 약을 조금 덜었을 수도 있고, 드라이기로 말리다가 날아갔을 수도 있고. 여러가지 플러스 요인과 마이너스 요인이 섞여서 1.5g이 나오는 걸 분석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그런 물리적인 한계들이 정말 싫었어요. 그때 당시에는 물리화학이나 양자역학은 되게 좋아했어요. 주로 오차가 없고 계속 계산을 하는 과정이어가지고. 그런데 그쪽 학문은 박사급 까지 가야 그다음 잡이 생겨요. 저는 석박까지 할 정도는 아니었고요.


개발은 처음 배울 때부터 ‘와 진짜 잘 맞는다’ 라고 느끼셨어요?

재미있었어요. 저는 옛날부터 공예를 좋아했거든요. 퀼트나 십자수, 나무 공예, 가죽 공예 처럼 조금의 노력을 들여서 조금의 결과물들이 나오는 그런 것들이 너무 재밌었어요. 개발도 비슷한 거 같아요. 레고 쌓듯이 하나, 하나, 하나 해가지고 집도 만들고. 기술이 좀 더 좋으면 미끄럼틀도 만들 수 있고. 공예도 구체적인,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에 좋아했던 것 같아요.


막상 개발자로 전향하셨을 때 ‘와 이건 진짜 힘들긴 힘들다’라고 느끼셨던 부분은 뭐예요?

개발자들은 ‘도대체 뭘 꿈꾸고 뭘 노력하고 뭘 준비할까’ 를 알 수 있는 환경이 주변에 많이 없어서 낯설었어요. 제 전공 필드인 화학이나 교육에서 시작했으면 친구/선배/후배를 통해 커리어 패스나 준비해야 될 것들을 알 수 있는데, 개발자들은 뭐 하고 살지 물어볼 친구나 선배가 없었으니까요. 개발을 가르쳐 준 친구가 한 명 있지만 아무래도 제한적이니까.


교직 이수까지 하셨으면서 왜 교사의 길로 안 가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교직 이수의 목표가 교사의 길은 아니었어요. 교육 자체에 관심이 많아서 교육학을 좀 더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거 같아요. 가르치는 게 좋고, 교육학이라는 것 자체가 궁금해서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과외를 시작했었는데, 저도 누군가를 가르치다보니까 대학에서 가르침을 받는 게 역지사지가 된다고 해야 되나, 이렇게 스위칭이 되더라고요. 대학교 1학년 때 하버드 나오신 교수님이 계셨는데 너무 수업을 잘 하셨어요. 그래서 교수님이 지금 이런 걸 트리거를 하려고 하는 거구나, 아니면 교수님이 이런 걸 전달하려고 하는 거구나, 이런 기법을 쓰고 있으신 거구나. 약간 동병상련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그때 교수님이 애들 모티베이션 시키려고 엄청 노력하셨어가지고 그게 되게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그럼 가르치는 게 왜 좋아요? 어떤 점이 좋아요? 

두 가지인 것 같은데, 일단은 그 가르치고 있는 내가 너무 멋있어. 능숙하고, 잘 하고, 잘 준비되어 있는 게 자아 실현 같은 느낌이라 좋았어요. 두 번째는 학생들이 ‘선생님 고마워요, 덕분에 재밌어졌어요’ 하는 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어요. 


어떤 학생이랑 합이 잘 맞나요?

저는 좀 잘하는 애들이랑 맞아요. 삼성 드림클래스라고, 학생들에게 대학생 강사를 매칭 시켜주는 프로그램을 3년 정도 했어요. 재밌었던 게, 시험기간에 프린트를 이만큼 만들어서 주고, 한 페이지를 풀면 abc 초콜릿 한 개, 그걸 3개를 모으면 몽쉘 한 개, 4개를 모으면 초코바 한 개, 이런 식으로 했더니 애들이 미친 듯이 푸는 거예요. 그러면서 “선생님 이거 하나 더 해도 돼요?” 이렇게 했던 경험이 되게 재밌었어요. 그때 만난 학생이랑 아직도 연락을 해요. 관심 없는 애들은 진짜 어려워요. 저희 어머니는 그걸 참 잘 하시더라고요. 학생이 뭐가 부족한지를 좀 찬찬히 봐주고, 기다려주는 걸요. 보통 선생님이 되는 사람들은 본인들도 공부를 좀 했기 때문에 공부 잘하는 애들의 마음을 잘 알고, 시선을 잘 알고, 그들의 니즈를 잘 알아채더라고요.


가르칠 때 얘기를 하는 조이님이 너무 행복해보여요. 지금 하는 개발과 가르쳤던 경험 중 어떤 게 더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이 돼요?

저는 프로그래밍 교육을 이런 식으로 해보고 싶은 게 꿈이기도 하거든요. 실무 교육 개념으로요. 부트 캠프 같은 경우에는 모티베이션이 낮은 친구들이 많이 오잖아요. 반면 실무 교육 같은 경우는 2년 차에서 3년 차 주니어들 기준으로 하면, 그 친구들을 먹고 살아야 되기 때문에 보통 자발적으로 오게 되는 루트가 많거든요. 그걸 대비해서 코딩이나 프로그래밍 쪽도 조금씩 과외를 해보고 있어요.


그래서 결국 에듀테크로 가셨군요.

그런 맥락도 있는 것 같긴 해요. 교육 도메인이니까 확실히 재밌는 것 같아요.


개발자로서 교육 도메인에서 이런 거 할 때 진짜 재밌다라는 특정 계기가 있으신가요?

수강 신청하고, 강의 듣고, 수료증 발급받는 사이클이 있잖아요. ‘아 이런 사이트는 이렇게 하던데’ 하는 유저 경험이 많다보니까 재밌었어요. 옛날에 부산에서 첫 회사를 채무 관리 쪽으로 다녔는데, 그때는 좀 어려웠거든요. 누가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얘가 이자율이 얼마고, 이만큼 상환했으니까 이 뒤에 이자율은 얼마고, 얼마를 갚아야 되고, 남아야 되고. 이렇게 하는데 너무 힘든 거예요. 그게 또 미국에 들어가는 프로그램이라 전부 다 영어였어요. 사장님이 열심히 가르쳐 주는데 나는 하나도 모르겠고. 그때는 프론트만 하더라도 전반적인 내용을 알아야 계층을 알 수 있었고, 사장님도 열정이 넘치셔서 몰라도 되는 것까지 가르쳐 주셨거든요. 서로 안 맞았죠. (웃음)


조이님의 커리어 패스가 더 궁금해요. 두 번째는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 하셨어요?

두 번째는 부산의 작은 IT 스타트업에서 프론트랑 백엔드 앱 개발을 했어요. 디자인도 하고, 기획도 조금 하고, 정부 지원 사업도 하고. 도메인은 24시간 헬스장과 피티샵, 트레이너 교육이었어요. 취업 준비할 때 워크넷에서 부산을 찍고 웹 개발자 쳤더니 한 개 나오는 거예요. 일단 지원하고 (다른 회사도) 준비해보려고 했는데 붙어서 갔어요. 여기도 교육 도메인이라 지원한 게 크긴 했어요. 왜냐하면 이제 트레이너 교육이기 때문에 거기도 교육 사이트가 있었거든요.


어쩌다 그 회사를 또 퇴사하시고 지금 회사에 이직하시게 된 계기가 뭐예요?

스카웃 제의가 와서 홀라당 왔습니다.


살면서 이건 잘했다고 생각한 일을 ‘이직하면서 서울로 올라왔던 일’로 꼽아주셨어요. 어떤 부분 때문인까요?

회사에 대한 만족도 있지만, 저는 계속 서울에 가고 싶다 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때 약간 서울의 문화 같은 것들이 너무 좋았어요. 학생 때 서울에 놀러오면 꼭 예술의 전당을 가기도 했고요. 예술의 전당 새싹 회원으로 전시회나 오케스트라 이런 걸 보러 갔어요.


조이님 지금 일하시는 모습도 되게 궁금해요. 어떤 업무를 할 때 가장 몰입하게 되세요?

일감이 딱 나오면 스캔을 딱 하거든요.이거 딱 딱 딱 딱 이거다. 딱 했을 때 이 프로세스가 싹 보여요. 이거 여기 처리하면 되고, 여기 처리해서 이거 하면 되고, 이거 하면 된다. 청사진이라고 그래야 되나, 그 프로세스가 딱딱 보이고 너무 재미있어 보여요.


그럼 기획자의 역량에 따라 재미를 느끼는 게 또 엄청 다르신가요? 그걸 잘 그려주는 분들이 보통 기획하시는 분들이니까.

좀 디테일하게 해 주시면 더 확실히 좋은 것 같긴 한데 크게 영향은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업무를 할 때는 기획적인 방향은 나온 거니까요. 내 업무에 대한 프로세스가 보일 때. 그리고 또 이거 좀 해보고 싶은데 좀 재밌어 보이는데.


그렇게 해서 딱 느낌이 와서 했는데 그 느낌이 틀렸던 빈도가 어느 정도나 돼요?

틀린 게 60%. 왜냐하면 늘 개발은 딜레이가 되잖아요. 항상 예상치 못한 것들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성공률이 40%보다 더 작을 수도 있어요. 1, 2년 차보다는 그래도 정확도가 높아지기는 해요. 그리고 약간 기세거든요. 개발은 기세다. 60% 보다 더 틀릴 수 있잖아요. 중간에 막히면 더 하기 싫고, 눌리는 것도 있고. 틀어지더라도 오차 범위가 또 얼마나 될 거냐는 또 다르기 때문에. 방어전을 잘 해 가면서 갈 수도 있는 거고.


조이님은 스스로 기준을 세워놓고 내가 거기에 도달할 것이냐, 말 것이냐 이런 것도 생각하면서 일하는 스타일인가요?

그건 아닌 거 같아요. 깡으로 해요. 얼마나 빨리 끝냈는지보다는 ‘오 재밌겠는데’ 이러면서 했는데 ‘아 빨리 끝냈네’ 이런 거죠. 좀 인간적인 느낌으로.


반대로 재미없을 것 같았는데 재미있을 때는 작업이 의외로 잘 풀릴 때 인가요?

‘좀 힘들겠는데’ 했는데 생각보다 협업이 잘 될 때가 있어요. 옆에 동료가 서포트를 해준다든지. 동료와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협업이나 집단지성이 잘 맞을 때 둘 다 통쾌해 하는 것 같아요. 같이 도와준 동료와 찢었다고 함께 기뻐하죠.


협업이 잘 될 때 쾌감을 느끼시는 것 같은데, 조이님과 협업이 잘 되는 동료는 어떤 사람일까요?

일단 태도가 방어적이지 않고, 서로 얼라인이 잘 맞아야 되는 것 같아요. ‘이 협업을 통해서 우리가 이걸 잘 해결해 보자’. 그리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좋아하고, 잘 받아들여지는 그런 분위기가 지금 회사에 잘 돼 있는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좋은 후배는요?

서로 배우고 역량을 잘 주고 받으면서 같이 성장할 수 있을 거라는 그런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이요. 저는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요.


상사도 굉장히 좋게 말씀해주셨어요.

저희 팀 리더분이 일처리를 확실히 깔끔하게 하세요. 그리고 먼저 많이 들어주시고, 공감도 해주시고, 그다음에 필요한 말을 해주시는 거 보면서 많이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팀 내의 분위기가 한쪽으로 약간 치우칠 수도 있는데, 그럴 때는 선은 딱딱 지키시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나중에 저런 리더가 되어야겠다’라는 생각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일하면서 도전적이거나 어려웠던 경험 혹은 뿌듯했던 경험으로 특정 프로젝트를 꼽아주셨어요.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라이브 클래스 프로 앱 출시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초기 디자인은 다 나와 있는 상태에서 프로젝트가 세팅되던 중이었고, 앱 차원에서의 퍼블리싱이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이미지는 JPG니까 클릭이 안 되잖아요. 퍼블리싱을 한다는 거는 앱 언어를 통해서 이미지 요소를 여기는 클릭이 되고, 여기는 스크롤이 되고 이런 식으로 바꾸는 거예요. 당시 저희가 플러터를 써본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UI 그리는 거를 빨리 배워서 디자인 시안을 만들어 놨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림 그리는 느낌이고. 저는 웹 할 때도 퍼블리싱을 엄청 좋아하거든요. 주변에서 긍정적인 피드백도 많이 받았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프로세스가 딱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퍼블리싱은 틀리는 일이 잘 없어요. 정확도가 70~80% 되는 것 같은데. 왜냐하면 로직적인 거나 백엔드랑 협업을 해야 된다거나 이런 요소가 거의 없기 때문에. 그래서 그때 착착 만들어 갔던 게 너무 재밌었어요. 진짜 자아 실현하는 느낌으로 했던 거 같아요.


프론트핸드 개발하시는 분들은 퍼블리싱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던데, 조이님은 정말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요즘은 퍼블리셔가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퍼블리셔가 아니고 웹 프론트를 했던 이유가 있어요?

처음에 프로그래밍 쪽으로 해보려고 시작한 게 코딩 교육 쪽이었어요. 강사 자격증도 땄는데 내용이 너무 얕은 거예요. 저는 더 배우고 싶은데 이 정도만 배우면 유입이 가능하고, 진입장벽도 낮고. 그래서 더 해볼까 했던 게 퍼블리싱이었거든요. 학원 가서 배우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집에 와서 다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짜고. 너무 재밌어서 그때 쌤이 프로젝트 6개를 줬는데 거의 한 20번 넘게 다시 했어요. 이것도 더 하고 싶어져서 친구한테 PHP, Node.js, React 이런 프론트/백엔드를 배우게 됐죠.


친구한테 개발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에 이미 퍼블리싱을 좀 해 봤던 거네요.

그렇죠. 퍼블리싱을 하고, 친구한테 더 물어봐야겠다. 그렇게 지금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조이님이 이 얘기를 할 때 너무 행복해보였어요. 조이님은 또 어떤 걸 좋아하세요?

네모네모 로직 알아요? 퍼즐 같은 거거든요. 여기 숫자가 써져 있고 그 숫자에 알맞는 칸을 색칠하고. 약간 스도쿠랑 비슷한 거예요. 로직이 탁탁탁탁 맞춰 들어가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뭐 하나 빠지면 거기에 완전 몰입하네요.

맞아요. 한번 몰입하면 그때 에너지가 엄청 많이 나와요. 중학교 때는 화학 교과서 7~8권을 하루만에 다 풀었어요. 너무 재밌어서.


그게 재미있었다는 게 저는 너무 놀라워요. 양자역학 너무 재밌다고 했잖아요. 제가 이해할 수 있게 좀 설명을 해주실 수 있나요?

있는 거 같은데, 없는 거 같은데, 있는 줄 알았는데, 없지. 양자역학은 이런 거예요. 슈레딩거의 고양이라고 박스에 고양이가 있어요. 얘가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는 상자를 열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열어봤을 때 이게 파동이면 파동, 입자면 입자인데, 덮혀져 있을 때는 모호하잖아요. 그거를 설명하는 게 양자역학이죠. 저도 졸업한 지 오래 돼서 (웃음)


여전히 어려운 거 같아요. 어떤 이론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게 그걸 진짜로 아는 사람들의 어떤 의무 아닐까요?

예전에 화학 교육 이제 과목 받을 때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어려운 개념은 어렵게 생각할 때 제일 쉽다. 어려운 걸 굳이 쉽게 설명을 하느라 더 어려워진다.


조이님은 요새 제일 열심히 하는 공부가 영어라고 들었어요. 목적이 있으세요?

영어로 얘기하는 내 모습이 너무 멋있어. 나의 자아상. 내가 너무 멋있고 믿음직스럽고. 유의미하다는 느낌도 있고, 그걸로 친구 사귀는 것도 좋아서요. 또, 저는 옛날부터 테드나 세바시 보면서 감명 받고 변화되고 이런 게 많았거든요. 그래서 저도 누군가한테 ‘너무 고맙다. 덕분에 내 삶이 바뀌었다’ 이런 메시지나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순간들을 계속 꿈꾸는 것 같아요.


조이님께서 상상하는 10년 후 나의 멋진 하루에 대해서 조이님의 목소리로 듣고 싶어요. (사전인터뷰에서는 ‘비트윈 시월애 행사에 참여하고, 개발 직군 선배 패널로 세션을 진행하면서 이후에 따라오는 후배 개발자들에게 경험한 것들을 나누어 주고 싶다’라고 적어주셨어요.)

저는 미래 소설 에세이를 써요. 미래의 나의 모습을 꿈꾸는 거죠. 되게 구체적으로. 데이바이데이로 할 수도 있고, 10년, 20년, 30년, 50년 후를 생각해볼 수도 있고. 그때 비트윈 시월애랑 아이티백이 떠올랐어요. 그걸 적었을 때 그 순간의 내가 너무 멋있어. 좋은 영향을 나눠주고, 또 나도 좋은 영향을 받고, 나는 너무 멋있고. 그런 것들에서 계속 좋은 영향을 주고 받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주는 것도 있지만 받아주는 쪽이랑도 상호작용이 이뤄져야 하잖아요.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데 관심없는 사람이면 ‘뭐 어쩌라고’, ‘쟤 좀 이상해’ 라는 반응이 올 수 있는데, 내 얘기를 의미 있게 받아주고, 그런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이 너무 즐거운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모습 중에 하나를 ‘다른 사람들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태도’로 말씀하신 게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저는 많이 부정적이었어요. 예민하고 까칠하고. 친구가 “네 말은 들으면 맞는 말인데 재수가 없어” 그러는 거예요. 그때 좀 자존감도 많이 낮았는데 발현되는 방식이 논리적이고 까칠한 방식으로 표출된 거 같아요. 사회생활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응원하기 시작하니까 스스로를 응원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이제 나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나한테 편지도 쓰고 채팅도 해요.


나와의 채팅이요? GPT로 하는 건가요?

아니요. 노션에서 멘토를 한 명 만들고 내가 질문하고 대답하는 거예요. 이게 텍스트로 적는 거니까 거리감도 느껴지고 객관적으로 보여요. 사람이 위로 받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만약에 뚜까님한테 위로를 받으려고 하면 되게 많은 장치들이 필요하죠. 일단 내가 왜 힘든지를 얘기해야 되고 내 상황을 얘기해야 되고 나를 위로하게끔 만들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부캐 자아가 3개 정도 있어요. 지금의 저인 조이가 있고, 영어를 하는 그레이스가 있고,연약한 나를 상담해주는 에밀리가 있어요. 셀프 심리 치료를 하는 거죠. 심리 치료나 인지 행동 심리 이런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잘했으면 스티커 붙이기, 이런 것 처럼 가시화 시키고. 몸을 움직여서 뭐 마음을 바꾸고.


조이님이 굉장히 솔직한 사람인가 봐요. 보통은 나 자신도 속일 수 있잖아요. 자기 자신한테 솔직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그것 밖에 답이 없을 정도로 힘들면 돼요. (웃음)


오늘 저희랑 차 한 잔 한 소감 어떠셨어요?

솔직하게 얘기해 보는 시간이었고, 한 번 더 내 삶에 대해서 좀 돌아보게 됐어요. ‘나 이런 거 재밌었지’ 이런 걸 정리하게 되는 좋은 시간이었어요. 제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돌아본 나는 조이, 그레이스, 에밀리 중에 누구였나요?

조이죠. 즐기고 있잖아요.



CREDIT

글 파도

인터뷰 뚜까, 오잉


인터뷰 전문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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