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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riverofwisdom Jul 15. 2024

딸아이가 쏘아올린 작은 철학

Art&Article 2024 June Edition



 사랑하는 남자와 아이를 가졌다. 뱃속에서 태동하던 딸아이가 세상에 나온지 어느덧 10년이다. 딸은 제 아빠를 닮아 호기심이 많고 배움에 부지런하다. 지금보다 더 어렸을 적의 아이는 자신이 보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내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그런 그녀의 질문에 최대한 성실하고 다정하게 답했다. 


 한 어머니는 “하늘은 왜 파란거야?” 라는 어린 자식의 질문에 “우리 ㅁㅁ이 눈 시원하게 해주려고 하늘이 파란가봐~.” 라는 멋진 답을 하셨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매번 그렇게 반짝이는 답변을 내놓을 자신은 없지만 언젠가 내가 엄마가 되었을 때 내 아이의 질문에 최대한 정직하고 성실하게 답하리라 다짐했다. 아이의 질문에 답을 한 후에도 과연 그 대답이 아이를 위한 최선의 대답이었는지 머릿속에서 재빨리 되짚어 본다. 매일 밤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그날 내가 아이에게 내어 놓은 수많은 단어들과 말하지 못한 단어들 사이를 오고간다. 


 올해 열 살이 된 아이는 지난 2년간 홈스쿨링을 끝내고 초등학교 3학년으로 편입 했다. 편입을 결정하기까지 쉽지 않았다. 홈스쿨링을 시작한 데에는 남편의 경험이 큰 몫을 했다. 나와는 달리 배움에 부지런한 남편은 나의 괴상한 궁금증을 기이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었다. 함께 궁금해 하고 그 뒤로는 조사하고, 내게 자신이 갓 찾아낸 따끈따끈한 지식을 설명해 주는 남자였다. 남편은 질문이 떠오르면 조사와 배움을 귀찮아 하지 않는 이였다. 시어머니는 남편과 시누를 홈스쿨링 하셨다. 


 작년 여름, 아이에게 병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오랜 기간의 치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되돌아 보니 그때 많은 것들이 변했다. 여지껏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어쩌면 우리에게 더이상은 허락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스트레스 조절이 필수였다. 학교 생활을 통해 아이는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익히게 될테고 최종적으로는 이것이 아이의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아래 학교에 다니기로 결정했다. 딸 아이는 2년간의 홈스쿨링 덕분에 다른 아이들에 비해 여유롭게 책보고 사색할 시간이 많았다. 관심 있는 분야를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것도 홈스쿨링의 장점이었다. 아이는 그 2년의 경험을 통해 배움에 대한 감각이 더 예리해 진 것 같았다. 


 알아야 보인다는 말이 있듯 아는 게 많아진 아이는 질문도 많아지고 그 깊이도 깊어졌다. 한층 똘똘해진 딸 아이 덕에 나 역시 내 식견이 좁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겸손해 질 수 있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읽어보아야 아이의 궁금한 점을 쉬운 말로 설명해 줄 수 있는 때가 잦아졌다.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나도 성장한다는 걸 느낀 적도 여러번 이었다. 며칠 전 설거지를 하던 내게 아이가 다가와 물었다. 


딸 : 엄마,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고 안 좋아하는 건데, 그게 절대 변하지 않으면은… 그건 나쁜 거야? 
 

"그래"라고 대답할 뻔 했다. 성급했던 내 대답을 뒤로 감추고 아이가 마음 속에 떠올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딸 : 예를 들면 도둑질 같은 거 말이야. 모두가 싫어하잖아. 


나 : 음, 그건 그렇겠네. 도둑질은 도둑 말고는 다 나쁘다고 생각하고, 안 좋아하니까 나쁜 거 맞겠다.


딸 : 그럼 나쁜 건 나쁜거네?


나 : 근데 엄마는 사람들이 싫어하고 안 좋아하는 거라고 했을 때, '죽음'이 떠올랐거든. 그런데 죽음이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딸 : 왜에?? 죽으면 못 보잖아.


 “왜?”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가끔 막막해진다. 당연한 진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싶을 때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이가 언제나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동전의 양면을 모두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다시 성실하게 답했다. 우리의 삶에서 죽음은 끝도 아니고 도피처도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 : 음... 다행인게 사람이 나이가 들면 젊을 때보다는 죽음을 조금 덜 무서워하게 돼. 그럴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생기거든. 그리고 죽음이 또 다른 세계로 가는 거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아. 그런 사람들은 죽은 다음에 좋은 세상에 가기 위해 살아 있는 동안 열심히 살아. 일도 열심히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착한 일도 많이 하고 말이야. 어떤 사람들은 죽어서 그리웠던 사람들과 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기도 해. 그런 사람들에게 죽음은 나쁘기만 하진 않겠지?  죽은 후의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아이는 그 이상의 긴 대답은 듣고 싶지 않았는지 수긍하며 제 방으로 돌아갔다. 

 나 역시 오랜 시간 동안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았다. 죽음 후에는 어떤 세상도 없을 것 같았고 다만 사라질 뿐이라 여겼다. 사후세계란 그저 한계가 있는 인간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 낸 오래된 상상일 뿐이라 치부했다. 


 그 때 딸을 낳던 순간이 떠올랐다.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그것과 닮았다.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지금까지 살아왔던 익숙한 곳을 떠나 미지의 세상으로 옮겨진다는 점. 태아가 알던 세상은 자궁 뿐이었을 테고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세상도 고작해야 내 조국, 지구, 우주 정도일 테다. 우리는 태아일 적 그랬듯 어디로 가는지, 언제 가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모두 각자의 때가 있다. 


 당신에게 죽음이 더 이상 피하고 싶은 단순히 두려운 것이 아니길 바란다. 두려워하기 보다는 그 순간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현재를 잘 살아내는 우리이길 바란다. 타인도 나처럼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존귀한 생명이라는 점과 어쩌면 그 타인을 죽음 후에도 또 다른 세상에서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이 세상은 조금 더 친절하고 안전한 곳이 되지 않겠나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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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 Haekang (River of Wisdom)

Illustrator :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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