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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강 riverofwisdom Aug 02. 2024

꿈에도 자격이 있나요

Art&Article2024    2024 August Edition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하나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는 지난 2년간 학교 교육 대신 홈스쿨링을 받다가 올해 초 3학년으로 편입 했습니다. 어렵게 결정한 홈스쿨링을 2년 만에 접게 된 데에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작년 여름, 아이가 갑자기 병을 진단받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이 병은 특히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스트레스 조절 능력이 완치를 위해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학교 생활을 하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며 스트레스를 조절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것 같았습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아이는 잘 적응하는 듯 보였습니다. 이왕 다니는 학교, 열심히 다녀보겠다며 학급 봉사 위원에도 자원하고, 축구나 탁구 등 가정에서는 하기 어려웠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희는 올해 학교와 담임 선생님의 배려를 톡톡히 받았습니다. 홈스쿨링을 받던 학생이 중간에 입학하는건 흔치 않은 일이지요.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담임 선생님께서 1학년 아이에게 하듯 살뜰히 보살펴 주셨습니다. 학교 측의 배려로 가장 친한 친구와 같은 반으로 배정받을 수도 있었구요. 늘 감사한 마음이었는데 생각지 못한 곳에서 난감한 상황이 생겼습니다. 어제 저녁 아이가 수업시간에 그린 그림이라며 제게 종이 한장을 내밀었습니다. 제목은 “만화로 그려보는 나의 미래.” 학생들의 장래희망을 적고 꿈을 이룬 자신의 하루를 상상해 보는 활동지였습니다. 


 딸애는 오랜 시간 축구 선수를 꿈꿔 왔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아이가 또렷이 말한 첫번째 꿈일 겁니다. 7살 쯤 엄마와 잔디밭에서 했던 공놀이의 기억이 좋았는지 아이는 축구공을 사달라고 했습니다. 비록 인정사정없는 엄마에게 태클을 당해 둘다 크게 넘어졌었지만요. 제 남동생은 아이의 7번째 생일에 월드컵 공식 축구공을 선물했습니다. 여자, 남자 편견없이 키우고 싶었던 저는 그 선물이 퍽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이는 그 공을 여전히 소중하게 아낍니다. 축구하러 나갈 때마다 옆구리에 끼고 가는 건 당연하구요. 자랑스러움까지 묻어납니다. 


 아이가 내민 활동지를 보고 저는 약간 당황했습니다. 축구선수가 아닌 제빵사의 하루를 그렸더라구요. 아이의 꿈이 축구 선수건 제빵사건 아무 상관없습니다만 꿈이 바뀐 얘기를 왜 내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아함이 들긴 하더군요.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축구 선수가 아니네? 제빵사로 꿈이 바뀐거야, 빵순이?”

 

  답을 기다리던 저에게 아이의 말은 당혹스러웠습니다.

 “나는 축구 선수 되고 싶다고 그랬는데, 선생님이 프로 선수 되려면은 자기 사는 지역에서 1, 2등은 해야 한댔어. 엄청 어려운 거랬어. OO이는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것도 게임을 엄청 잘해야 할 수 있는 거랬어…… 그래서 다른거 그렸어.”


 아, 이게 뭘까요? 아시겠지만 홈스쿨링까지 했던 저는 자식 교육에 유난이라면 유난인 사람입니다. 성적을 위한 학습만이 교육의 전부가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이가 해야 하는 공부에 대해서도 부모인 제가 정하기 보다는, 아이와 함께 의논합니다. 공부 계획표나 다니는 학원도 마찬가지 입니다. 집안일 역시 학습 못지 않게 중요한 공부라고 여겨서 함께 밥상을 차리는 것은 물론 현관 정리는 아이에게 맡겼습니다. 혹여 학교나 학원 숙제를 제때하지 못해 아이가 선생님께 혼나면 혼나도록 둡니다. 책임감없는 행동에는 유쾌하지 않은 결과가 따른다는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부모의 도움없이 독립적으로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는 힘을 아이에게 길러 주고 싶었습니다. 그 점이 홈스쿨링을 시작할 때 제게 큰 동기가 되었습니다. 아이가 살아가면서 가끔은 삶이 흔들릴 겁니다. 그럴 때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 주는 것은 명문대 졸업장도 아니고, 많은 재산도 아닐 겁니다. 나는 할 수 있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자존감. 그 자존감을 아이의 마음 안에 차곡차곡 튼튼하게 쌓아주고 싶었습니다.  

 담임 선생님 말씀처럼 프로 선수가 되려면 지역에서 1,2등을 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일 겁니다. 아이가 제게 되물은 것처럼 자기가 어떻게 부산에서 1,2등을 하겠어? 하는 말도 어쩌면 자기 능력을 객관적으로 본 대견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희 아이는 이제 겨우 만 9세입니다. 마흔이 코 앞인 저도 여전히 꿈을 좇아 이렇게 글을 쓰고 강의를 준비합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보석같은 문장을 찾기 위해 또 새로운 책을 집어 듭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인생을 듣고 그렇게 알아낸 삶의 조각들을 그러모읍니다. 제가 만난 이야기의 원석들을 다듬어서 여러분께 들려 드리고 싶어서요. 아직 제게 이런 일을 한다고 칭찬해주는 이도, 돈을 지불하는 이도 없습니다. 이 일을 통해 생활비를 벌고, 이름이 알려지고, 제 강연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오는 일이 언제쯤이면 가능해질까요? 3년 후엔 가능할까요? 4년 후에는요? 


 20대의 저와 사십을 바라보는 지금의 저는 꽤 다릅니다. 20대 때는 목적지가 분명한 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조금 오래 걸리고 고생스럽더라도 높은 목적지로 가는 길을 선택했었죠. 이제는 아닙니다. 어디까지 올라가느냐 보다는 가는 동안의 재미가 더 중요합니다. 지금 내딛는 한 걸음이 결국 길이 될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오솔길로 남아도 괜찮고 가볼만한 트레킹 코스로 소개되어도 그 또한 상관없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 가치있다고 믿는 일을 하니까요. 저는 제 아이도 그럴 수 있길 바랍니다.


 아이가, 아니 누구나 무슨 일을 하든 성실하게 일하면 최소한의 생활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게 대수인가요? 서울의 유명한 대형 아파트에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우리가 다들 불행한가요? 우리가 느꼈던 행복의 순간들을 돌아보면 결코 모든게 돈과 관련되지 않다는 걸 아실 겁니다. 아이의 옹알이 소리가 심장을 간지를 때, 퇴근하는 아빠를 향해 기어서 질주하는 아이를 볼 때, 그런 아이를 안아 올리는 남편을 볼 때, 아이를 위해 산 케이크를 꺼내오는 아내를 볼 때 느끼는 것이 행복 아닌가요? 여름이면 다함께 아이스크림을 물고 에어컨 아래 누워서 TV를 보는 것, 설날에는 손주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님의 얼굴, 산책 나오니 바람은 살랑 불고 강아지는 좋아서 동동거리는. 이런 것이 행복 아닌가요? 


 프로 축구 선수만 축구 선수가 아닐겁니다. 토요일 마다 축구 교실에서 뛰는 어린이들도 경기 때만은 축구 선수입니다. 휴일에 운동장에서 모여 운동하는 아저씨들도 시합동안에는 투지가 넘치는 축구 선수가 됩니다. 아이들도, 아저씨들도 축구를 하며 행복을 느낄 겁니다. 저는 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축구를 좋아한다면, 프로 축구 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축구를 계속 하길 바랍니다. 그것이 축구가 아닌 무엇이 되든지 말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좋아하시나요? 


ⓒ Art&Article 2024

  Art&Article 2024는 우리 일상 도처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찾는 일에 앞장 섭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당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조금 더 서로에게 상냥해지길 소망합니다. 수익금의 10%는 중증 소아청소년 환아들을 위한 서울대학교병원 어린이 통합 케어 센터인 도토리하우스 (02-2072-1758)에 기부됩니다.

Writer : Haekang (River of Wisdom)

Illustrator : Na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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