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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Jul 21. 2024

버거 앞에 장사 없다

7월 21일

  여행 첫날밤, 신계(新界)에 있는 호텔 방에 들어가자마자 짐 풀지도 않고 잔 것 같다. 코피가 안 나는 게 용할 정도로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단체관광으로 온 7월의 홍콩은 더웠고, 바람을 맞으며 돌아다닌 이층 버스 의자는 여전히 뜨거웠다. 그나마 푹푹 찌는 날씨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일행한테서 들었을 때, 나는 두 귀를 의심했다.


  첫날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가는 대형 버스에 거의 구급차 오르듯 올랐다. 가는 길에 버스 창 밖을 내다보니 멀리 있던 건물이 빠른 속도로 방향을 틀었다. 커브와 커브의 연속. 쏠린 몸이 디스코 팡팡에 놓인 것처럼 이리 쏠리고, 저리 쏠렸다. 지친 몸이 버스에 브레이크를 채운 것 같았다. 피곤의 응답을 받은 홍콩 고속도로가 잠이라도 푹 자라고 호텔로 가는 길을 세 배로 늘린 것 같았다.


  너무 피곤해서 잠이 오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불행이었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란 옛날 통신사 광고 문구가 생각날 정도였다.         


  둘째 날이 되어서야 호텔 주변이 보였다. 호텔 옆엔 버젓한 상가가 있었다. 과자를 팔고, 마트도 제법 큰 게 있었다. 트램정거장 너머로 고등학교도 보였다. 반대편에는 운하도 보였다.


  나와 일행은 자유 관광을 마친 셋째 날 밤, 트램 정거장 쪽에 피어오른 밝은 불빛을 보면서 거기 2층에 있는 맥도날드에 들렀다.

     

  첫날 간 야시장에서도 맥도날드에 들렀다. 햄버거 용지가 바닥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지만, 너겟을 찍어 먹는 "WASABI Sause"는 지금도 내 인생의 소스 탑 3에 드는 맛이었기 때문이다. (고기 구울 때마다 고추냉이를 찾는 나의 ‘험난한’ 여정은 기실 여기서 시작했다.)     


  같이 따라간 일행의 재촉에 나는 빅맥 세트 두 개와 너겟을 시키려고 계산대 앞에 줄 섰다. 사람들은 금세 빠져나갔고 이윽고 내 차례가 왔다. 영어로 주문하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던 나는 머릿속에 있는 희미한 글씨의 영어교과서에서 몇 줄을 찾기 시작했다.      

 

  사정을 알 리 없던 여성 종업원이 먼저 선수를 쳤다. 고개를 내밀면서 내 얼굴을 바라보자, 나는 더듬거리면서 영어로 대답했다. 그래도 잘 수습했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던 찰나. 종업원이 중국어로 내게 물어봤다.(‘물어봤다’라고 표현한 건 맥락상 그래 보였다는 말이다.) 아뿔싸! 종업원이 영어를 제대로 못했다. 홍콩섬에서는 그나마 통하던 영어가 신계에서는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황한 나는 온갖 손짓을 쓰고, 단어 위주의 영어를 사용하며 주문을 마쳤다.     

  

  자리에 앉자마자 몸을 늘어트렸다. 너겟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한 한 달은 늙은 것 같았다. 한 손으로 턱을 괸 일행이 내게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상상한 거랑 다르지? 그래도 그런 실수를 하는 게 중요한 거야.  하면  늘어.”     


  한 번 실수를 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80년대에 이미 해외에서 사무직으로 일한 일행의 말에 흐르는 배려심에 마음이 갔던 탓일까. 나는 '영어 문장을 완벽히 말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 벗어났다. 어디든 말이 통하지 않은 곳이 있을 것이다. 바로 거기서 포기하지 않고 의사소통을 이어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나는 그날 맥도날드에서 깨달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편안하게 여행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차라리 공손한 태도로 손짓을 동원했다. 영어 단어를 실수해도 괘념치 않았다. 결과적으로 선택은 내 영어 실력을, 아주 약간이지만, 올려줬다.


  일본에 처음 갔을 때, 나는 내가 일본 드라마를 통해 알고 있던 일본어가 얼마나 잘 통할지 몰랐다. 불안하진 않았다. 그때의 ‘실수’가, 그때의 배려를 잘 차려입은 모습으로 내 등을 떠밀었다.


  나는 거침없이 일본어로 돈가스를 시켰다. 문장 전체를 몰라도 단어를 연결 짓는 것만으로 종업원의 대답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외국어만큼이나 한국어를 잘 아는 게 중요하다고 느낀 게 그때였다. 아는 게 많아야 잘 캐치할 수 있으니까.) 내가 평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본어 단어도 잘 나왔다. 강박관념마저도 방향을 틀어 내 기억력을 끌어올리는 데 동참한 듯싶었다. 


  (물론 간 생강을 고추냉이로 착각하거나 하는 실수도 곧잘 저질렀지만,) 이제 나는 그때 홍콩 여행을 같이 간 일행처럼, 여유롭고 자유롭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복잡하다는 신주쿠[新宿] 역을 대부분 헤매지 않고 돌아다닐 정도니까. 감당할 수 있는 실패가 이렇게나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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