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7. 0-0-58
먼저 언급할 앨범이 두 장 있다. (발매일이 정확하다면) 같은 해에 발표된 앨범 『바람』과 싱글 『봄/햇님』이다. 일단 『바람』엔 『NOW』에 들어간 수록곡 중 일곱 곡이 먼저 실렸다. 「고독한 마음」은 (『바람』에는 실리지 않은 「가나다라마바」와 더불어) 김정미가 데뷔 앨범서부터 꾸준히 새로운 버전으로 발표했다. 「당신의 꿈」과 「나도 몰래」는 양희은이, 「아름다운 강산」은 ‘신중현과 더 멘’이 먼저 발표한 곡이었다. 『바람』은 신중현의 ‘야심작’이기도 했다. 『바람』에서만 신곡을 여섯 곡이나 발표했기 때문이다. 『NOW』에 실린 「바람」, 「불어라 봄바람」, 「비가 오네」가 바로 그 여섯 곡의 신곡에서 고른 곡이었다. 다음으로 싱글 앨범인 『봄/햇님』이 있다. 이 앨범엔 「봄」과 「햇님」 단 두 곡만 들어있다. 『NOW』에 들어있는 버전과 큰 차이가 없지만, 이 앨범이 『NOW』의 전에 나왔는지 뒤에 나왔는지 알 수 없다. 여하튼 『바람』의 신곡, 이전에 발표했던 신중현 자신의 곡, 그리고 신곡을 한데 모아 만든 앨범이 바로 『NOW』다.
컴필레이션 앨범의 성격을 다소 지닌 앨범인데도, 이 앨범의 음악은 독특하고도 고른 흐름을 지녔다. 「봄」과 「햇님」의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이뤄진 선율이 등장하는) 화려한 사운드와 나머지 곡이 들려주는 특유의 담백한 세션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이 앨범의 오케스트레이션은 더 넓고 복잡한 감정으로 청자의 마음을 가만히 고양시키는 데에만 집중한다. 오보에의 사운드와 어우러져 피어오르는 「봄」의 생동감 있는 오케스트레이션 편곡과 「햇님」의 (한번 끊었다가 다시 처음 사운드로 돌아가는) 독특한 구조가 담백하기 이를 데 없다.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은 절제의 미덕을 발휘하며, 차근차근 청자로 설득한다. 해사한 세계로 마침내 가는 모습을 소리로 구체화하는 신중현의 사운드엔 소위 ‘삿된 것’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저 이 앨범의 모든 소리는 오로지 청자를 위해 있다고 차근차근 일러준다.
『바람』에 실린 세 곡은 (키보드 파트를 거의 없앤 채로) 다시 녹음하여, 이 앨범에 실었다. 『바람』의 버전에 비해 깔끔해진 이 앨범의 「바람」은 김정미의 비음 섞인 관능적인 목소리가 (저음부를 강조한 다이내믹한 드럼 연주와 선명한 베이스 연주가 큰 힘을 보태기에) 더욱 매혹적으로 들린다. 곡의 후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신중현의 기타 연주는 이 앨범의 ‘끝까지 가는’ 방식을 음악적으로 풀어낸 명연주다. 짧은 곡에 속하는 「불어라 봄바람」의 후반부를 채우는 코러스는 지금 시대에도 충분히 먹힐 질감을 품었다. 「나도 몰래」의 더욱 선명한 베이스 연주는 곡의 그루브를 감각적으로 한껏 살렸다. 「고독한 마음」과 「비가 오네」와 같은 블루스 곡에서 김정미의 보컬은 특유의 관능미를 또렷하게 들려줬다. 이 앨범의 「가나다라마바」를 연주하는 ‘신중현과 더 멘’의 자유로운 연주는 순정(純正)하다.
신중현이 ‘소화’한 사이키델릭 음악은, 영미권 음악계의 그것과 다르게, 자연의 품에 안기는 제스처를 취했다. 놀랍게도 이 앨범은 이 제스처가 음풍농월(吟風弄月)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이의 순정한 사운드에 김정미의 목소리가 관능적이고도 깊은 매력과 품위를 부여한 덕분이었다. 캘리포니아의 해를 사랑하는 “사랑의 여름”을, 가을 하늘의 평온함으로 자연스레 치환한 그이의 사이키델릭 시대는 이 앨범의 대미와 더불어 (자의든 타의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이는 이 앨범에서 얻은 음악적 역량과 자신감(과 거대한 위기의식)을 바탕 삼아, 기존의 5인조 밴드인 ‘신중현과 엽전들’을 3인조 밴드로 재편성하며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