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9. 59-74-87
함춘호의 (소위 ‘컨트리 스트로크 주법’의) 리듬 기타와 김광석의 (벤딩이 들어간 블루스 주법의) 하모니카가 인트로를 장식하는 「일어나」는 가볍게 들리도록 꼼꼼히 설계한 편곡이 일품이다. 첫 벌스와 훅을 지나서 등장하는 (묵묵히 저음부를 책임지는 조동익의 베이스와) 김영석의 드럼 또한 군데군데 포인트를 강조하는 것 이외에는 거의 림샷을 주로 사용한다. 드럼의 자리를 대신하는 파트는 박영용이 담당한 퍼커션이다. 키보드 파트를 과감히 뺀 섬세한 편곡으로 인해, 김광석이 지닌 (삶의 굴곡을 절절히 반영하는) 목소리가 그대로 강조된다.
김광석은 이 앨범에서 자신의 보컬을 완성했다. 「회귀」를 부르는 그의 절창은 이전의 그가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슬픔을 더 깊이 노래하며, (김형석이 편곡과 연주를 맡은) 「맑게 향기롭게」와 「혼자 남은 밤」을 부르는 그의 보컬은 곡의 핵심 감정을 거의 정확하게 꿰뚫는다. 이전에 그가 부른 노래들 또한 범접할 수 없는 실력을 드러냈지만, 이 앨범에서 김광석의 목소리는 사람의 폐부를 찌른다. 생각보다 리드미컬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나, 비교적 얌전한 곡 구조의 「서른 즈음에」를 한층 더 시리게 부르는 그의 자연스러운 보컬은 해당 곡을 삶의 한 대목으로 바꾼다.
(「서른 즈음에」를 플랫리스 베이스로 연주한 음악적 역량만으로도 충분히 상찬 가능한) 베이시스트이자 이 앨범의 편곡자인 조동익은 플루겔호른이나 트럼펫, (김광석이 직접 연주하는) 멜로디카를 포크록 세션에 추가하는 선택을 하는 한편으로, 김광석의 목소리를 섬세하게 살리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그 결과 이 앨범은 김광석의 목소리와 세션의 연주가 조화롭다. 이주환의 스펙트럼이 넓은 트럼펫은 「서른 즈음에」의 우수 어린 톤과,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편안하기 이를 데 없는 톤을 둘 다 무람없이 연주한다. (그는 또한 「자유롭게」에서 멋진 트럼펫과 플루겔호른의 앙상블 연주를 들려줬다.) 1980년대부터 조용필, 김수철의 음악에 참여하며, 그 뒤로도 안치환의 앨범을 비롯한 다수의 음악에 퍼커션을 담당한 박영용 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애드리브를 적절히 사용한) 활기찬 리듬과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곡의 정서에 밀착한 연주를 둘 다 훌륭하게 연주한다.
앨범은 3악장의 파트에 에필로그가 더한 듯한 구성을 띠고 있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느낌의 세 곡을 지나면, 김광석의 숨은 명곡인 「회귀」의 절창을 기점으로 우울한 정서의 세 곡을 연달아 듣게 된다. 박용준의 키보드와 김광석의 멜로디언 연주와 박영용의 레인 스틱 연주가 인트로를 장식하는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앞의 가벼움을 이어받은 함춘호의 팝 뮤트 주법의 기타 리듬에도 도리어 서글픈 정서가 강조된다.
「서른 즈음에」를 거쳐 박용준이 쓴 「혼자 남은 밤」과 이무하가 쓴 「끊어진 길」을 지나 노영심이 쓴 (법정 스님의 시민운동 이름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맑고 향기롭게」에 이르는 여정은 슬픔 속에서도 묵묵히 걷는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고립의 컨트리에서 「자유롭게」가 지닌 가슴 벅찬 프리재즈의 자유로움으로 가는 이 앨범은 자유를 위한 김광석의 몸부림을 한껏 표현하는 듯하다. 「일어나」의 훅을 힘겹게 부르는 김광석의 목소리가 지닌 몸부림처럼. 아, 이 앨범의 가벼운 바람(Wind)이 실은 자유로워지려는 바람(Wish)이었음을 나는 이제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