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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Nov 19. 2024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

Part 9. 92-67-85

  제일 관련 없는 질문부터 던지자. 「엄마 엄마」의 하모니카를 분 건 누구였을까. (미국에서도 멜로디의 근원을 확인하기 어려운) 「Oh, My Darling Clementine」에 한국어 가사를 (앨범 내에서 유일하게) 완전히 입힌 이 곡은 두 대의 기타와 양희은의 보컬을 제외한 악기가 유일하게 등장하는 곡이다. 그런데 누가 하모니카를 불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앨범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곡의 서글픈 정서를 한층 배가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데도 그렇다.      


  대답 없는 질문이 몸을 바꿔 흥미로운 의견으로 거듭난다. 노래의 멜로디마저도 신원 미상의 작곡가가 지었는데, 하모니카 세션도 신원 미상이라니. 우연치고는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세션과 미국의 작곡가가 무슨 공통점을 찾을 계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더욱.     


  이 앨범을 만든 사람들조차도 자신들이 뭘 만든 건지를 짐작하지 못했을 듯하다. 양희은은 그저 자신의 앨범을 만드는 데 도와줄 사람으로 김민기를 불렀고, 그는 거기에 응하며 시각장애인이자 가수인 이용복과 더불어 이 앨범의 모든 기타를 연주했다. 김민기의 창작곡 두 곡과 김광희가 작곡한 「세노야」, 7개의 번안곡이 앨범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김민기와 양희은은 어쩌면 자기가 지은 곡과 자기들이 평소에 부른 레퍼토리를 녹음했기 때문에 훨씬 익숙하게 녹음에 임했을지도 모르겠다.) 동시녹음으로 진행된 이 앨범의 녹음은 단 하루 만에 끝났다.      


  앨범을 들으며 나는 어쩐지 양희은이 처음 노래를 불렀던 ‘청개구리의 집’에 있는 낮은 무대를 떠올렸다. 앨범을 발표할 시점의 그이가 생계를 위해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을 아는 데도 그렇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왜 그렇게 들렸는지 깨달았다. 이 앨범은 양희은의 목소리와 기타 두 대(그리고 하모니카 연주) 외엔 아무 소리도 등장하지 않는다. 코러스도 없다. 두 대의 기타와 하모니카, 그리고 한 명의 보컬만으로 이 앨범의 사운드는 충만했다. 어쿠스틱 기타로 모든 걸 표현하는 모던 포크의 사운드를 이 앨범은 의도치 않게 제대로 실천했다. 


  이 앨범의 「아침이슬」이 그토록 영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양희은의 목소리 외에 그 어떤 보컬도 집어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멜로디 파트의 기타를 맡은 김민기의 기타 또한 양희은이 훅을 부르는 대목에서 자신의 기타 소리를 줄이는 연주를 선보인다. 이용복은 훅에 이르러 (12줄 스틸 기타로) 본격적인 스트로크 주법의 리듬 기타를 연주하며, 양희은의 목소리에 더욱 힘을 불어넣는다. 양희은의 목소리는 그 힘과 더불어 솟구친다. 파격적인 구조의 곡, 두 대의 기타와 하나의 목소리로만 이룰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이 곡은 발휘한다. 그 막강함이 나머지 곡의 고분고분한 유려함에도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다. (물론 양희은의 보컬은 그러한 유려함에도 뛰어난 실력을 드러낸다.) 노래는 그렇게 이 땅의 모든 민중의 가슴을 흔들었다.     


  (발매일이 정확하다면) 이 앨범에 뒤이어 곧 나온 『김민기』(1971)가 나왔다. 물론 그 앨범에서 들리는 정성조 쿼텟의 연주나 김민기의 기타 연주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 그러나 「아침이슬」의 사회적 파급력 때문에 이 앨범 또한 김민기의 탁월한 연주가 실려 있다는 사실을 연결 지어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그런 이유로 나는 억지로나마 힘주어 주장한다. 이 앨범은 양희은의 걸작이자, 김민기와 이용복의 숨겨진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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