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앨범은 엄밀히 말해 그 당시에 발매된 여타 한국 대중음악 앨범과 같은 맥락에서 다룰 수 없다. 이 앨범은 엄연히 목적이 있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음악모임 ‘새벽’이 마침내 그들의 외부활동명을 ‘노래를 찾는 사람들’로 활동했을 때 나온 이 앨범에서 이들은 민중과 더불어 함께 싸우고 외치기 위해, 이들이 창작한 마당극의 주제곡이나 몇몇 창작곡을 모아 이 앨범 안에 담았다. 신디사이저의 솔로를 제외하고는 거의 악기 솔로 연주가 등장하지 않는 이 앨범의 편곡은 오로지 가창을 위한 것이다. 이들은 이들이 만든 노래를 다 함께 따라 부르는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그래서 가창에 있어서 남녀를 가리지 않고 부르는 균형감각을 발휘하며) 이 노래를 엄숙하고 진지하게 불렀으리라.
물론 이 앨범은 단순히 이러한 목적만을 담은 앨범만은 아니다. 이 앨범은 검열과 폭압에 의해 희생된 모든 말과 감정, 이디엄을 처음으로 온전히 담으려고 시도한 앨범이었다. 아직 은유의 세계에 머물러 있지만,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의 소나무가 지닌 절개에서, 땅과 산하, 마침내 「잠들지 않는 남도」의 제주도에 이르는 이들의 메시지는 이들의 저항이 단순히 일탈이나 방종이 아니라, 이 땅을 거쳐 간 폭압의 잔혹한 손에 억울하게 죽은 이들을 위로하며 싸우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그들은 「사계」의 느려지는 부분에 등장하는 파리한 목소리와 「저 평등의 땅에」를 아름답고 힘차게 부르는 권진원의 목소리에 이들은 이들의 진심을 담았다. 앨범에 든 대부분의 곡을 쓴 안치환과 문승현의 출중한 곡 쓰기 능력, 「광야에서」를 쓴 문대현과 「저 평등의 땅에」를 쓴 류형수의 능력은 이 맥락을 먼저 이야기하고 나서야 비로소 온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앨범은 민중에게 보내는 뜨거운 편지였기 때문이다.
이 앨범은 또한 당시 한국의 대중 음악계와 민중 음악계가 서로 다른 세계에 살지 않았다는 점을 강력하게 증언한다. 따로 또 같이의 일원인 나동민의 편곡과 프로듀싱은 이 앨범의 투쟁이 온전히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동물원의 초창기 멤버인 (소위 ‘운동권’의 유명한 건반주자이자, 안치환의 친구였던) 박기영은 이 앨범의 모든 건반을 전담하며 이 앨범의 사운드가 지닌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후일 동물원에 가입하는 배영길은 안치환과 더불어 기타로 자신의 힘을 보탰다. 훗날 레코딩 엔지니어로 참여하는 조성오는 「이 산하에」와 같은 곡에 진중함을 뒷받침하는 자신의 베이스 연주를 이 앨범에 담았으며, 나중에 김창기 밴드의 드러머로도 활약하는 이형복의 드럼 연주는 「그날이 오면」과 같은 곡이 지닌 단조로움에 셈여림을 다르게 하거나 대북과 드럼을 번갈아 치는 식으로 해당 곡에 음악적 악센트와 생동감을 부여했다. 이러한 연주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비상식적이고, 비인간적인 시대에 대한 공감대가 모든 사람에게 알음알음 있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한다.
이 앨범의 음악은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목적까지 포함하여) 모든 목적을 벗어던지고 어느 순간 자유를 부르짖는다. 결국 ‘음악’을 찾으려는 민중이, 음악을 짓밟는 이들을 이긴다고 앨범은 부르짖는 듯하다. 누군가가 시곗바늘을 반대 방향으로 비틀어도, 우리는 이 앨범 이전의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 한국 대중음악은 결국 (억눌린 역사와 금지된 대중음악을 대신하여) 이 앨범이 흘린 피눈물을 먹고 자랐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그랬거니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미 우리 안엔 이들의 더운 피가 한데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