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시간 30분. 이 앨범을 녹음하고 믹싱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믹싱 시간을 빼면 이 앨범의 실질적인 레코딩 시간은 10시간 30분이었다. 보컬 트랙은 따로 날을 잡아서 3시간 반에 마쳤으니, 이 앨범의 연주 녹음 시간은 고작 7시간이었던 셈이다. 연주 녹음도 한 번에 진행된 게 아니었다. 김수철은 최수일의 드럼과 합을 맞추며 직접 베이스를 쳤다. 바로 그 녹음본을 들으며 트윈 기타와 키보드 연주를 오버 더빙으로 덧붙여야만 했다.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할 수밖에 없었던 게 당시의 녹음 시스템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작업은 아무리 좋게 포장해서 말해도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이 짧은 녹음 시간은 국내에서 거의 처음 도입된 16채널레코딩 기술을 이용하기 위해서, 그가 치른 막대한 대가 중 하나였다. 그나마 이들의 모습과 노래를 주목하던 일본인 엔지니어인 키타가와 마사토가 믹싱을 맡겠다고 한 건 천운이었다. 그 제안을 듣고, 자신의 의도대로 되어가는 결과물을 들으며 김수철이 얼마나 기뻐했을지 감히 짐작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도 그가 만든 사운드는 안정적일뿐더러 강력하기 이를 데 없다. (베이스와 키보드의 든든한 지원을 받은) 「별리」를 부르는 김수철의 목소리는 민요의 정수와 맞닿아있지만, 어쿠스틱 기타로 서양 음악 코드를 연주하는 김수철의 기타는 정교하고 확실하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음악이 (서양 음악이든, 동양 음악이든) 늘 어떤 정수를 에너지 넘치는 직관력으로(그러면서도 현대적으로) 꿰뚫는 곡이었음을 천명한다.
호쾌한 기타 연주에서 블루스 기타 연주로 넘어가는(그리고 강력한 베이스 기타 연주가 들어있는) 「새야」나, 기타 피킹 연주 애드리브의 향연인 「알면서도」의 기타 연주는 아무리 믹싱이 훌륭하더라도 그 원래의 소스가 훌륭하지 않으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청자에게 일깨워준다. 김수철의 기타 연주보다 베이스 연주와 키보드 연주가 더 귀에 쏙쏙 들어오는 연주곡 「어둠의 세계」는 기타 히어로의 이미지에 가려져 있는 김수철의 밀도 높은 음악적 역량을 (최수일의 기본에 충실한 드러밍과 더불어) 해당 악기 파트마다 집중력을 온전히 발휘하는 또렷한 사운드로 증명한다.
이 앨범에 등장하는 기타 사운드가 너무나 압도적인 탓에, 이 앨범을 하드록 앨범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기실 이 앨범 전체를 아우르는 장르는 소울이다. 「어쩌면 좋아」는 김수철 소울의 진수를 느낄 수 있으며, (록 사운드가 인트로와 후주를 수놓는) 「행복」과, (김수철의 베이스 연주를 온전히 듣는 특별함을 누릴 수 있는) 「외로움」과 같은 곡 또한 김수철이 소울을 잘 만들고 부르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앨범 첫 곡의 「별리」는 바로 이런 지점을 생각할 때 비로소 앨범 전체와 연결할 수 있다.)
자신을 둘러싼 절망 앞에서 그는 주저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걸 끝까지 시도했다. 재편곡을 거친 이 앨범의 「일곱색깔 무지개」에서 그는 자신의 무시무시한 기타 연주를 마음껏 구사한다. ‘생존’을 뚫고 피어난 그의 음악은 그 자체로 경이롭다. 자신의 음악을 하기 위해 이를 악물고 채로 버텨서 이겨낸 인물이기에, 그가 작은 ‘거인’이라는 사실을 이 앨범은 뚜렷하고 확실하게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