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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Dec 04. 2024

『동경(憧憬)』

Part 9. 62-46-48

  어쩌면 모든 기억은 제각기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서로서로 기억에 틈입하며 엇갈리고, 때로는 함께 번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팻 매스니에 대한 동경도, 노란 대문을 두드리는 시절을 그리워하는 동경도, 결국은 다 같은 자리에서 왔음을 복원하여 고백하는 이 앨범의 진솔한 사운드는 모든 기억과 추억을 한 아름 껴안는다.

   

  이 앨범의 사운드는 악기의 특성이나 앨범에 흐르는 오마주의 성격을 문득 잊어버리고 듣게 만드는 힘을 발휘한다. 일요일 예배의 모든 풍경이 담긴 「엄마와 성당에」를 들으며 신디사이저 음을 잊고, 「물고기들의 춤」이 지닌 악기의 연주를 잊는다. 「함께 떠날까요」의 합창이 들리는 순간, 베이스 소리는 그저 이 곡의 사려 깊은 권유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사운드로 거듭난다. 지극한 오마주가 깃든 이 앨범은 오마주의 원래 대상인 사운드가 지닌 권위에 기대지 않는 미덕을 발휘한다. 대신 그 오마주 속에서 무엇이 피어났는지, 자신은 그 오마주를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를 차근차근 들려준다.

      

  「동쪽으로」나 「동경」에 짙게 등장하는 세련된 세션을 위해, 이 앨범은 자신의 정서를 구태여 희생시키지 않는다. 「엄마와 성당에」에 등장하는 ‘키 작은 걸인’을 소외시키지 않는, 「노란 대문(정릉 배밭골 '70)」에서 ‘칠성이네 엄마’와 ‘할머니’를 넉넉히 담아낸 조동익의 에티튜드는 이 앨범이 오마주의 성격을 띤 앨범일지언정, 맹목적 추종의 소산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노란 대문(정릉 배밭골 '70)」의 후주를 채우는 (김영석의 심벌 플레이가 돋보이는) 연주는 이 앨범이 지닌 여운을 끝까지 추적한 멋진 연주다.

   

  프리재즈를 표방한 곡에서도 조동익의 제스처는 여전히 건재하다. 「경윤이를 위한 노래」에서 지판 짚은 소리까지 그대로 들리는 사운드는 곡이 지닌 즉흥성과 현장감을 한껏 살리면서도 사운드에 대한 의미를 하나하나 짚는 신중함이 느껴진다. 이 앨범의 숨은 명곡인 「물고기들의 춤」은 장필순의 저음과 더불어 등장하는 조동익의 베이스 연주가 일품인 곡이다. 이 곡에서 그는 이 앨범에 누차 이야기한 ‘춤’의 정체를 음악으로 체현한다.


  한없이 밝은 빛만 있을 것 같은 이 앨범에도 물론 그림자는 있다. 이 앨범의 그림자는 듣는 이가 겪었던 종류의 피로와 수고로움을 자신 또한 거쳤다고 말하는 듯하다. 「함께 떠날까요」의 행복한 권유는 취기와 햇살 때문에 모든 게 ‘싫어질 때’라는 인식을 거쳤기 때문에 더욱 감동적이며, 「혼자만의 여행」은 단순한 편곡임에도 조동익의 깊은 목소리가 상대방에게 자신의 위로를 건네며 축복한다. 조동익은 결국 이 축복을 듣는 이에게 건네주면서, 동경으로 시작한 이 모든 일의 끝에 결국 상대방을 향한 사랑이 있었음을 말하는 듯하다. 허세도 강요도 없는 이 지고지순한 사랑은 차의 향기처럼 깊고 진하다.


  이 앨범을 들으며 걷다가, 문득 가지런한 자세로 깊은숨을 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 앨범은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그러나 내 몸속에 분명히 있는 숨구멍으로, 파란 하늘에서 갓 길어 올린 공기를 들이마시는 방법을 내게 일러준다. 날숨으로 흘러 나가는 게 아까워서 한동안 숨을 움켜쥐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이 앨범의 너른 가슴을, 조금이나마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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