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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Dec 03. 2024

『동물원 두번째 노래모음』

Part 9. 24-43-49

  이 앨범의 사운드에 담긴 비범한 긴장감은 그 까닭을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 ‘가을이니까 더 잘 팔리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아마추어리즘, 1집 앨범 발매를 전후하여 가진 라이브에서 얻은 자신감, 자신감을 바탕으로 2트랙 레코딩을 진행한 배짱, 전작에서는 쓰지 않던 리버브를 비로소 마음껏 사용하는 (약간의) 여유, 스쳐 지나가는 것과 떠나보낸 것에 대한 여전한 관심, 더불어 여전한 회의와 한숨이 이 앨범에 다 들어있다. 이들은 자신들은 시대와 상관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긋지만, 이 앨범의 사운드와 말은 시대의 감정과 아예 무관계하지 않은 듯한 모양새도 취하고 있다. 편곡과 노래가 서로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이 앨범의 다이내믹한 사운드가 이를 말해준다.      


  전작에 이어 훌륭한 곡을 만든 김창기와 유준열은 이 앨범에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내놓으며 앨범의 ‘키’를 잡았지만, 나는 1집에서 「어느 하루」와 「여기서 우리」를 쓴 박경찬이 이 앨범에서 「이별할 때」와 같은 곡을 내놨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전작에서는 피아노 세션으로만 참여한 박기영 또한 이 앨범에서 「잘가」와 「별빛 가득한 밤에」와 같은 좋은 곡을 보태며 자신의 송라이팅 감각을 드러냈다. (철저하게 기념 앤솔로지 음반으로 내놓은 앨범인) 전작이 지닌 감상주의적인 낭만성과 서투른 엄숙성을 덜어낸 이들의 곡은 이 앨범이 지닌 긴장감을 한층 더 밀도 있는 종류로 만들어놓는데 한몫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유준열의 곡과 김창기의 곡은 자신의 색깔을 확실히 하는 사운드를 청자에게 들려준다. 기타 스트로크를 비롯한 리듬 위주의 편곡이 (작곡가인 유준열 본인이 친 베이스 연주와 더불어) 돋보이는 「새장 속의 친구」는 김광석의 보컬로 인해 어느새 다른 곳으로 훌쩍 초월한다. 「길 잃은 아이처럼」을 노래하는 김창기의 목소리를 수놓는 다이내믹한 세션은 「동물원」의 고즈넉함에서 갑자기 솟구치는 (그래서 곡의 어딘가에 있던 어떤 심연을 의도치 않게 열어젖힌 듯한) 다이내믹한 사운드와 더불어 이 앨범을 다채롭게 만든다. 김창기는 그가 만든 가장 위태롭고 아름다운 곡인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와 같은 곡에서 곡의 멜로디와 뛰어나게 조응하는 언어를 곡 안에 수놓았다. 이 같은 과정에서 팀의 원래 취지가 살짝 바래졌지만, 그 점이 이들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하지는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앨범의 사운드는 동물원이라는 팀조차도 어느새 초월한다.        


  후반부의 방황을 「명륜동」의 허밍으로 마무리하는 이 앨범 이후로 동물원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김광석과 이우성은 이 앨범을 끝으로 프로 뮤지션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동물원을 탈퇴했다. 최형규 또한 이 앨범을 끝으로 동물원을 나왔다. 직장인의 삶과 뮤지션의 삶을 병행한 이들은 이 앨범 이후에도 좋은 앨범을 많이 내놓았다. 특히나 유준열과 김창기의 곡은 3집에서 본격적으로 빛을 뿜어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일곱 사람이 마지막으로 만든, 그들이 자신들의 80년대를 졸업하며 내놓은 이 앨범은 단순한 음조차도 무척이나 특별하게 들린다. 얼굴 주위에 있는 비누 냄새까지도 뚜렷하게 맡을 수 있는 이 앨범의 음악은 심지어 이 앨범을 둘러싼 추억보다 힘이 세다. 삶과 노래를 병행하는 이들이 불합리한 시대 속에서도 노래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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