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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Dec 02. 2024

『SeoTaiji and Boys II』

Part 9. 37-30-52

  전작에 대한 팬들의 성원을 이들은 「우리들만의 추억」으로 보답했다. 이 직접적인 보답은 당시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K-pop 아이돌이 팬에 대한 ‘보답가’를 한 곡 정도 부르는 아름다운 전통을 창안한) 이 곡에서 세 사람은 굳이 돌려서 말하지 않았다. 이들은 직접 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들이 직접 터놓은 통로를 통해 팬과 서태지는 더욱 가까워졌다. 그들의 잠적이 지닌 의구심을 단번에 해소하는 이런 과감한 어프로치가 이 앨범을 독특하게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앨범의 바로 그 어프로치를 ‘너와 나의 이야기’와 절묘하게 결합했다. 이 앨범에 등장하는 ‘너와 나의 이야기’는 전작에 있던 관습적인 표현과도 완전히 결별한다. 「너에게」의 선명한 사운드는 우리가 미처 다루지 못한 관계성에 대한 디테일 섞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뉴 잭 스윙의 편곡과 비트에서 영향을 받은) 「죽음의 늪」은 어두운 관계가 지닌 위태로움에 대해 날카롭게 묘파한다. 이 앨범은 그런 ‘너와 나의 이야기’에서 언제나 ‘너’에게 방점이 찍혀있다. 이 앨범에서 가장 말이 많은 「하여가(何如歌)」나, 이 앨범에서 가장 말이 적은 「수시아(誰是我)」는 각각 변한 ‘너’와 있는 ‘나’에 대해 다룬다. 「수시아(誰是我)」가 모호함이 가득한, 개인만이 풀 수 있는 암호의 성격을 띤다면, 「하여가(何如歌)」는 복잡한 말 속에서도 ‘너’를 향한 마음이 잘 느껴지는 곡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관계성에 대해 진지하게 말하는 작품은 많았다. 이 앨범은 디테일이나 음 하나하나를 조각조각 내고, 이어 붙인 거대한 모자이크 벽화를 통해 ‘너’를 그린다. 미스터리와 선명함이 절묘하게 섞인 이 앨범의 신선한 미감은, 미감의 맥락을 적극 파악하려는 사람에게 더 많은 즐거움을 안겨줬다.

 

  전작에서 서태지는 자신의 개인 스튜디오와 서울 스튜디오를 오가며 모든 곡을 녹음하고 믹싱했지만, 이 앨범에 이르러 그이는 자신의 (훨씬 발전한) 개인 스튜디오에서 모든 과정을 거쳤다. 세션 녹음 또한 서태지가 직접 담당했으며, (최소한이지만 효과적인 세션을 기용하는 역량도 발휘하며) 전작까지만 해도 사용하지 않던 베이스도 그이는 직접 연주했다. 당대의 어느 앨범과 견주어도 뛰어난 믹싱 상태를 자랑하는 이 앨범의 사운드는 바로 이 모든 과정을 직접 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서태지는 뮤지션이자, 뛰어난 사운드 엔지니어라는 사실을 이 앨범의 효과적인 하모닉스와 (메탈 기타에 태평소를 집어넣는 등의 실험을 적극 도입했음에도) 안정적인 사운드가 증명한다. ‘고작’ 200여 일의 시간을 들여 이런 결과물을 내놓기까지 그이는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듭했을지.


  전작에 대한 '신드롬'이 단순히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한 앨범은 시간에 쫓기며 만든 강박과 그럼에도 결국 나온 색다른 미감을 선명하고도 치열하게 담았다. 짧다면 짧을 수 있을 내용물을 담은 앨범의 실질적 마지막 곡인 「마지막 축제」는, 이 앨범에서 「하여가(何如歌)」 다음으로 긴 트랙을 자랑한다. 재즈와 신스팝의 절묘한 결합으로 이뤄진 이 곡의 산뜻한 이별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이들은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대중의 눈동자를 바라보면서 산뜻하고 친근하게 말을 건네길 주저하지 않았던 최초의 대중음악인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어프로치가 바로 팬들의 성원에 대한 화답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이 앨범은 (수고롭게 만든) 선명하고 입체적인 ‘너’로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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