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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Dec 01. 2024

『숲』

Part 9. 19-31-54

  이 앨범의 아픔은 뼛속까지 스민다.「푸른 애벌레의 꿈」을 노래하는 하덕규의 목소리는 정말이지 모든 걸 뺏긴, 괴로운 날을 온몸으로 겪은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소리를 지녔다.「가시나무」를 노래하는 하덕규의 목소리 또한 마찬가지다. 스타카토 주법의 현악 파트와 플루트 연주, 그리고 기타의 연주가 들려주는 슬픔의 무게를 간신히 비집고 나온 「새벽」의 멜로디는 높은 벽에 바라보는 충혈된 눈의 실핏줄이 떠오를 정도다. 이 앨범은 마치 반복해서 주문을 외우면 모든 것이 이뤄질 듯이, 끊임없이 ‘좋은 나라’를 이야기하지만, 「좋은 나라」의 ‘좋은 나라’는 우화와 가정법의 숲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다. 「새봄 나라에서 살던 시원한 바람」에 등장하는 바람의 결말을 다시 힘찬 편곡이 황급히 덮는 대목은 그것이 일종의 우화임에도 쉽사리 넘겨 듣게 하지 못한다.「때」의 (가장법이 섞인) 신실함은「새털구름」과 같은 (불안정한 곡 구조의) 평화를 바탕으로 겨우겨우 피운 하덕규의 희망이 아니었을까.     


  조동익과 하덕규는 (서정적인 멜로디를 지닌) 이 앨범의 수록곡이 함의한 고통을 편곡에 최대한 반영했다. 「새벽」의 시시각각 옥죄는 감각을 스타카토 주법의 현악으로 표현한 대목이나, 「푸른 애벌레의 꿈」의 후주 직전, 탈바꿈하여 자라는 애벌레의 고통 섞인 깨어남을 김영석의 (볼륨이 큰) 드럼 연타로 표현한 이들의 편곡은 감동적이다. 「나무」의 인트로에서 기타 코드 연주와 피아노 꾸밈음 연주가 이어지는 대목이나, 「새봄 나라에서 살던 시원한 바람」의 (신디사이저 연주로 문을 열고 좋은 텐션의 베이스 연주가 신선함을 더욱 살리는) 리드미컬한 인트로는 듣는 내내 청량하기 이를 데 없다. 이 곡에서 바람 부는 모습을 셈여림을 조정한 기타 연주로 치환한 음악적 센스 또한 신선하다. 이들은 곡을 풍부하게 만드는 대목에서도 훌륭한 편곡을 선보였지만, 곡을 적확하게 만들기 위해 절제한 대목도 훌륭하게 편곡했다. 약간의 보컬 더빙과 셈여림을 섬세하게 살린 피아노 배킹 트랙으로만 이뤄진 「새날」의 서늘한 처연함은 노래에 너무 과한 공간감을 불어넣지 않은 녹음 덕분에 더욱 선명히 들릴 수 있었다. 「숲」의 마지막 가사를 노래하는 하덕규의 보컬은 갑작스레 리버브가 사라진다. ‘ㅅ’의 서늘한 음가마저도 표백이 된 듯한 그이의 앙상한 마지막 목소리는 이 앨범의 ‘모놀로그’에 부합하는 독특한 마무리로 자리매김했다. 「때」의 드럼 연주를 브러시로 연주하거나, 「좋은 나라」의 세련된 세션을 차분한 탐탐 드럼 필인과 림샷 주법의 적절한 사용만으로 살린 김영석의 드럼 연주 또한 이 앨범의 적확한 편곡을 잘 드러낸다.               


  이 앨범은 앨범의 여러 곳에서 같은 말이 자주 등장한다. 나무란 단어를 이으면 곡의 여기저기로 뻗는다. 구름이나 새, 벽과 같은 단어들도 마찬가지다. 앨범 후반부에 이르러 내뿜다시피 하는 말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를 ‘동어반복’이라 부를 수 없는 이유는 이 앨범이 지닌 음악의 성격과 이 앨범의 말이 더할 나위 없이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곡 구성이 생각보다 복잡한(혹은 온전치 않은) 이 앨범에서 이 앨범의 반복적인 말은 일종의 고정핀처럼 작용한다.      


  한 음 한 음 꾹꾹 눌러쓰는 하덕규의 떨리는 손아귀마저도, 이 앨범은 적확하게 담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혼돈이자, 번민이자, 정겨운 어둠인 숲을 벗어나 다른 땅으로 갔다. 이 앨범에 나오는 ‘좋은 나라의 소식’은 아직도 멀어서 아름답고, 이 앨범에서 그가 운 자국은 아직도 선명해서 아름답다. 결코 좁아질 수 없는 그 간극이, 이 앨범에서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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