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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Nov 30. 2024

『趙容弼 대표곡 모음』

Part 9. 41-29-55

  이 앨범은 LP의 순서로 듣는 게 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A면이 조용필의 엘레지를 그대로 이어받는 편이라면, B면은 다양한 장르를 뚫고 나오는 조용필의 보컬이 절창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A면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B면의 「한오백년」과 같은 위치에서 비슷한 주제 의식을 공유하며 조용필이 지닌 목소리의 서러움을 이 땅 위에 수놓는다. 조용필의 절창 중 하나인 「한오백년」은 이 앨범에서 가장 세련된 신디사이저 편곡을 들려주는 「단발머리」와 더불어 들을 때 훨씬 더 효과적으로 들린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노래가 듣는 이에게 확 닿는 이유는 그가 노래에 목숨을 걸기 때문이다. 이 앨범에서 조용필은 정말이지 목숨 걸고 노래한다. 「창밖의 여자」의 절망 어린 훅과, 「한오백년」의 체념 가득한 가락을 처절한 목소리로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곡의 성격과 요소를 순식간에 뛰어넘어 듣는 이에게 확 꽂힌다. 그래서 그가 부르는 비극은 정말 비극이고, 그가 부르는 민요는 정말 한이 서렸다. 70년대를 통과한 이들에게 순식간에 꽂힌 이 목소리는 전례 없는 선명함과 생동감을 담고 있었다. 대중은 이런 그의 음악에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 


  이 앨범의 엘레지와 한탄 또한 목숨과 세월의 알레고리와 단단하게 묶여있다. 가장 밝은 곡이자 훌륭한 디스코곡인 「단발머리」에서조차 세월에 대한 원망을 한 줌 남긴 그는, 「대전 블루스」가 지녔던 관습적인 표현에 자신의 처절함을 불어넣으며 곡의 생명력을 부여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리듬구조를 약간 공유하는) 「잊혀진 사랑」이나, 「돌아오지 않는 강」, 조용필의 바이브레이션이 인상적인 감동을 자아내는 「정」,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와 같은 곡은 유달리 ‘돌아선다(혹은 돌아온다)’는 표현이 많은 이 앨범의 수록곡에서도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느린 리듬과 더불어 등장하는 신디사이저 연주 또한 거의 비슷한 구조의 편곡을 띠고 있다. 조용필은 이 곡들 또한 정성스럽게 그리고 능숙하게 부른다. 


  이 앨범에 참여한 세션들 또한 언급할 가치가 있는 실력을 이 앨범의 사운드로 드러냈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나 「한오백년」이나 「너무 짧아요」에서 주목할 만한 연주를 들려준) 이 앨범의 신디사이저 연주는 조용필이 지닌 탁성과 세련된 어프로치를 절묘하게 획득한 연주를 들려주고 있으며, 「단발머리」에서 하이헷의 오픈과 클로즈를 절묘하게 구사하는 이 앨범의 드럼 연주는 곡마다 다른 느낌의 드럼을 연주하며 곡의 다양한 성격에 들어맞는 연주를 들려줬다. 「너무 짧아요」나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같은 빠른 곡에서도, 「돌아오지 않는 강」이나 「정」과 같은 느린 곡에서도 표현력이 제대로 드러나는 라인을 들려주는 이 앨범의 베이스는 자칫 가벼울 수 있었던 이 앨범의 무드를 적확한 곳에 안착시켰다. 「돌아와요 부산항에」에 등장하는 기타 배킹 연주 또한 곡의 비감을 은은하고 적확하게 살리는 탁월한 센스를 발휘한다.

       

  이 앨범은 생각보다 훨씬 현대적이다. 이 앨범은 또한 생각보다 전통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이 앨범은 조용필이 처음 내놓은 자신의 목숨처럼 들린다. 훗날 그이가 추구한 ‘생명’에 대한 실존적인 음악적 탐구는 이 앨범의 ‘모진 목숨’에서 비롯되었던 게 아닐까. ‘음악과 뮤지션은 별개’라는 입장은 적어도 이 앨범에선 통하지 않는다. 이 앨범은 조용필의 음악과 조용필을 구분할 수 없다. 이 앨범에서 마침내 조용필은 음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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