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앨범을 들으며 나는 이 앨범의 사운드를 (레코딩 과정이든, 믹싱 과정이든) 최선을 다해 공간감 있게 담아낸 사람에게 넙죽 절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적어도 이 앨범의 A면 수록곡에 깃든 사운드는 그가 한 선택이 지극히 옳았다는 사실을 확연히 증명하니까.
해머링 기타를 뒤로 한 채, 이승철의 보컬이 (「너 뿐이야」에서 훌륭한 베이스 연주를 선보인) 김병찬의 베이스와 같이 등장하는 「희야」의 인트로는 해머링 기타 연주 부분에서 노이즈가 살짝 뜨는 데도, 비 오는 소리를 삽입하거나, 리버브를 살리는 식으로 곡의 톤을 공간감 있게 살린 레코딩을 한 덕분에 제대로 곡의 분위기를 잡을 수 있었다. 이러한 장점은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도 등장하는데, 곡의 벌스와 브릿지에 살짝 얹힌 송태호의 신디사이저는 곡의 인트로를 채우는 기타 솔로의 톤(과 황태순의 라이드 심벌 연주를 곁들인 드러밍)과 곡의 훅에서 본격적으로 폭발하는 기타 톤을 음악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완벽하게 잇는다.
적어도 이 앨범의 A면은 이런 공간감 있는 레코딩 덕분에 마치 라이브 콘서트에서 해당 수록곡이 녹음한 것처럼 들린다. 나는 이 선택이 부활이 라이브 공연에서 비로소 태어났다는 점과, 부활의 곡이 지닌 서정성(이자 이승철의 보컬이 지닌 특징)의 선명도를 동시에 강조한 멋진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완결되었다고 생각한 「비와 당신의 이야기」의 구조는 전혀 다른 맥락의 후주로 인해 끝나지 않고 계속 새롭게 부활하는 밴드의 이미지에도 잘 어울렸는데, 그게 공간감 있는 레코딩과 만나 제대로 시너지 효과를 냈다. 밴드의 정체성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이 곡을 다른 누구도 아닌 김태원이 쓰고, (초반부는 이승철이 불렀지만) 김태원이 불렀다는 사실이, 이 앨범의 수록곡이 지닌 면면보다도 선명하다.
또 하나의 대곡인 「인형의 부활」이 포문을 여는 B면은 A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타 애드립과 태핑을 비롯한 여러 기타 연주 테크닉이 등장한다. (부활의 탄생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이지웅의 작곡이자, 부활의 이름을 걸고 내놓은 첫 자작곡인) 「사랑 아닌 친구」와 「사랑의 흔적」은 이승철의 보컬이 지닌 여린 느낌으로 인해, 70년대 캠퍼스 밴드가 부른 곡과 주제 면에서 성격을 같이한다. 그러나 이 앨범의 기교적이고, 각 잡힌 트윈 기타의 테크니컬한 연주가 푸릇푸릇한 두 곡에도 골고루 배어있다. 단순히 리듬 스트로크 연주이나 솔로 기타를 친다는 개념보다 훨씬 세밀한 주법을 (이펙터와 더불어) 치밀하고 세밀하게 쌓아 올린 이 앨범의 기타 연주 파트는, 황태순의 단단한 드러밍과 김병찬의 기본에 충실한 베이스 연주와 더불어 묵직한 덩어리로 합쳐져 빛난다. 앨범의 숨은 명곡인 「슬픈 환상」 또한 이승철의 보컬이 전면에 등장하고 상대적으로 배킹 기타가 많이 등장하는 곡임에도, 제대로 각 잡힌 세션 덕분에 훨씬 선명하고 감미로운 서정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아마추어 뮤지션에서 프로 뮤지션으로 거듭나며, 이들은 잃은 것도 많았고 얻은 것도 많았다. ‘야심’이 없었던들 이 앨범의 서정성과 완성도는 말장난에 불과했을 것이다. 이 앨범은 의도치 않게 그들이 잃은 것과 그들이 얻은 것을 한데 그러모아 정직하게 기록했다. 앨범에 대한 말보다도 앨범의 내용물이 훨씬 이들을 잘 대변하는 이 앨범은 사술(邪術)을 부릴 숫기마저 없는 정직함으로 인해 일종의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