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9. 58-83-63
통속적인 소재를 다뤘다. 그러나 통속적이지 않다. 이 앨범이 말하는 외로움과 사랑에 물기가 없기 때문이다. 명백한 사랑 노래인 「외로운 밤에 노래를」에서도 이정선은 ‘사랑 노래를 불러달라’고 간원한다. 모든 게 나를 흔든다고 말하지만, 이 앨범은 끝끝내 말을 다 하지 않는다. 달뜬 감정과 과묵한 말이 이 앨범 안에 조화롭게 머문다.
사람들이 「섬소년」이나 「산사람」을 비롯한 ‘자연주의’ 포크로 그이를 생각했을 때, 그이는 기타 밴드의 역량과 편곡 방향에 대해서 몰입했다. 자신의 ‘블루스’를 ‘뽕 블루스’라고 단언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그는 너무나 많이 아는 사람이기에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이 앨범을 단순히 블루스 앨범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연히」를 연주하는 이정선의 기타는 한층 더 핑거링을 강조하는 플레이를 들려주며, 이정선의 보컬은 전과는 다른 미감을 드러낸다. 뭐랄까. 안전하게 부른다는 느낌보다는 그저 날 것을 드러낸다는 의지가 다분한 보컬이랄까. 이 앨범은 고백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토로의 언어로 모든 말을 한다. 전작의 성격과 닮은 「행복한 아침」이나 「그녀가 처음 울던 날」 또한 이정선의 노골적인 보컬이 시행하는 토로 덕분에 또 다른 미감으로 거듭났다.
이 앨범의 A면은 어쿠스틱 기타를 전면에 내세운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음악이 실렸다. 키보드나 오르간 또한 어쿠스틱 기타의 연주가 지닌 결을 헤집지 않는다. (당장 전작의 수록곡인 「해송」이나 「사랑의 약속」 같은 곡을 듣다가 이 앨범의 곡을 들으면, 이 앨범의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확 잘 들린다.) 이는 일렉트릭 기타가 거의 모든 연주에 들어간 B면의 수록곡 또한 마찬가지다. 일렉트릭 기타가 연주되는 와중에도 그이는 어쿠스틱 기타로 리듬기타를 친다. 그렇기에 일렉트릭 기타로 연주하는 블루스곡의 필링 또한 풍성해졌다. 다시 부른 곡도 처음 부르는 곡에서도 이런 장점이 고르게 드러난다. 「건널 수 없는 강」이나 (흔히 바닷가‘의’ 선들로 잘못 표기하는) 「바닷가에 선들」에 등장하는 이정선의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예상치 못한 보너스일 테다. 이 앨범의 모든 곡은 강력하고 정교하고 미진함을 찾아볼 수 없는 그이의 리듬 기타 연주가 굳건하게 떠받친다. 이정선이 섭렵한 모든 음악 장르의 기타 연주를 마음껏 들을 수 있는 최상의 포트폴리오가 바로 이 앨범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이의 ‘블루지’는 늘 그이 안에 있었다. 초창기 작품인 금지곡 「거리」에도, 유학 직전에 만든 「해송」이나 「사랑의 약속」 같은 곡에서도 그이의 외로움은 도사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앨범은 그가 차라리 자신이 해왔던 음악을 재정립한 한 장이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리라. 이정선의 변화와 이정선이 지닌 음악적 화두의 관계성 그리고 그이의 보기 드문 대중적인 어프로치가 이 앨범에 이르러 절묘한 지점에서 (타협하지 않고) 만났다고 나는 생각한다.
감정의 밑바닥까지 드러내는 이 앨범의 사운드는 이정선의 가장 직관적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다. (요즘의 30대와 이 앨범이 나온 때의 30대는 달라도 한참 다르지만) 30대를 통과하는 나이임에도 아직도 세상이 의문투성이인 나는, 이 앨범의 진의를 알아차리기엔 너무 덜 자랐는지도 모르겠다. 이 리뷰는 언젠가 갱신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