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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MIN Dec 08. 2024

『Cry... Our Wanna Be Nation!』

Part 9. 44-23-40

  이 앨범에서 그들이 들려준 사운드는 1집의 유연함과 거리가 멀었다. 이 앨범에서야 비로소 두 사람의 개성이 본격적으로 드러났지만, 그건 차라리 구별이라기보다는 깨어졌다고 보는 게 타당할 테다. 최철의 곡에 방준석이 가사를 붙인 「지울수 없는 너」와 이승열의 리듬기타가 인상적인 방준석의 곡 「나의 다음 숨결보다 더 아름다운 너를 원하고 있어」, 리듬 파트를 제외하고 모든 연주를 방준석이 한 「어떻게」와 같은 곡은 대중에게 어필하기 위한 요소가 일종의 복고적인 사운드로 들리고, 이승열이 만든 「없어」나 「La La La La Day」는 전형적인 가사를 품고 있음에도 독특한 사운드와 곡 구조 덕분에 파편적으로 들린다. 드럼 머신 사용에만 머물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드럼을 제외하고) 적극 활용한 이 앨범의 음악은 물 흐르던 전작의 구조와는 달리 때로는 이상하게 끊기고, 때로는 끊임없이 연결되며,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이상한 곳에서 섞인다. 이 어울림의 정체 속에서 이승열과 방준석의 보컬은 현기증을 앓는 듯하다. 「세상 저편에 선 너」의 훅에는 전에 없던 사이렌 소리가 첨가되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그대영혼에」는 (묘하게 이승열의 근작이 연상되는) 이승열이 길게 늘어놓은 후주와 기타 연주가 더 인상적으로 들린다. 「U」는 그들이 추구하는 블루스를 대변하는 듯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수 김장훈이 부르는) 블루스 하모니카와 오르간 연주(처럼 들리는 장경아의 신디사이저 연주가) 등장한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장르도 대중에 대한 자신의 어필도 이 앨범은 불균질하며, 거칠고, 때로는 파편적이고 어설프게 전달한다. 시간과 영원에 대한 사유 또한 이 앨범에서는 온전히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망가졌다. 저음부의 프레이징을 강조한 곡 후반부의 절규는 심연 근처에서 조각조각 붙어있는 듯했다.      


  그러나 바로 그게 이들의 얼터너티브(모던)록이었다. 차라리 전형성이나 대중성에 대한 거대한 퍼러디처럼 들리는 이 앨범은 정말이지 이지(理智)적인 방식으로 록의 에너지를 살렸다. 회색지대를 통과하는 상실과 외로움에 노래하는 이들의 노래는 이 앨범에 등장하는 ‘너’조차도 제법 입체적인 존재(아니면 차라리 맥거핀 같은 존재)로 거듭나게 했다. 물론 이들은 이 앨범을 만들면서 자신들의 슬픔에 너무 매몰되지 않았다. 핑거스타일 기타 연주로 인트로를 여는 「언제나 내 곁에」는 (마지막을 차지하는 비틀즈의 「All you need is love」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재치가 두드러지니까.


  송홍섭, 강기영, 김병찬과 같은 베테랑 베이시스트, 김민기, 김성태, 김욱과 같은 헤비메탈 밴드 출신의 드러머, 키보디스트 장경아가 이 복잡다단한 앨범에 제대로 된 라이브의 열기를 심어주며 최선을 다했고, 이들은 ‘그날’을 1과 2로 나누어 각각 오리지널 버전과 라이브 버전으로 수록하거나, 「지울수 없는 너」의 베타 버전을 두며 수미쌍관을 이루는 식으로 이 앨범의 ‘할 말’을 확실히 내세웠다. 그러나 대중은 또다시 이 앨범을 외면했다. 지독히 개인적이고 지독히 외로우며 지독히 애원하고 지독히 절규하는 이 앨범이 함유한 감수성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당시에는 몇 없었던 탓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이 앨범의 상처가 지닌 의미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시간은 그들의 편이었다. 사람들은 결국 이 앨범을 망각의 바다에서 끄집어내는 데 성공했다. 따개비 하나 없이 말쑥하게 발굴된 이 앨범은 비로소 정당한 평가와 선구자의 위치를 동시에 획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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