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진1』

Part 9. 36-39-25

  「바람 부는 길」의 인트로에 등장하는 (추측컨대 조원익이 연주했을) 리코더 소리를 들을 때마다 헛헛함을 감출 길이 없다. 이 앨범을 된서리가 이는 계절에 들으면 안 된다는 ‘충고’를 나는 아직도 가슴 속에 담아두고 있다. 추위 속에 오래 있을 때, 어느 순간 자신이 지닌 체온을 선명하게 깨달을 때가 있다. 이 앨범은 바로 내 안에 있는 ‘군불’을 발견하라고 사려 깊게 말한다. 그 따스함을 온전히 마음으로 느낄 때까지 기다릴 시간을 충분히 내준다.

      

  내가 (그이가 이 재녹음반을 녹음한 ‘의도’와는 별개로) 이 앨범의 재녹음판을 지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초판의 사운드가 지닌 역사성과 필링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이가 말하고자 한 속도와 여백은 재녹음판의 사운드가 훨씬 더 잘 구성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광민과 조원익, 이병우가 중심 세션으로 활약한 이 재녹음반은 그러나 여전히 맑은 그이의 노래를 충분히 조명한다. 「행복한 사람」의 소박한 아름다움은 여전하고, 「작은 배」의 간주와, 「저 멀리 저 높이」 (그이의 프로그레시브 록에 관한 관심을 엿볼 수 있는)에 인트로를 장식하는 김광민의 키보드 연주는 조동진이 의도한 세련된 명료함을 온전히 갖췄기 때문이다.

     

  이 앨범에 있는 대부분의 곡은 그이가 1960년대부터 지었던 곡들이었다. 많은 가수가 작곡가인 그보다 먼저 그의 곡을 불렀다. 그러나 모두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 그의 노래는 그의 긴 호흡과 너무나 닮아있어서, 그의 목소리를 통해야만 곡의 음이나 뉘앙스가 제자리를 찾으며 제맛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곡을 소화하는 단거리 경주 같은 레코딩 세션 사이에서, 그는 자신의 곡을 제 속도에 맞게 부르는 방식을 채택했다. 템포가 느려졌다가 빨라지는 방식이 반복되는 「내가 좋아하는 너는 언제나」에서도 여전히 이 앨범의 속도를 유지하는 그이의 신묘한 보컬을 들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말을 줄였다. 「흰눈이 하얗게」에서는 종결어미를 생략하는 대신, ‘하얗게’라는 단어를 천천히 부르면서 흰 눈이 내리는 속도를 표현했고, 「행복한 사람」이나 「다시 부르는 노래」는 도치법을 사용하여, 청자에게 직접 다가가는 어프로치를 취하지만, 도치법으로 맨 먼저 앞세운 문장을 천천히 노래하며, 청자가 질문을 음미할 시간을 내어준다. 

     

  ‘사랑과 미움을 불꽃 속에서 본다’라는 「불꽃」은 이 앨범에서 가장 복잡한 성격을 지닌 곡일 테다. 부재의 마음으로 피운 불에서 삼라만상을 보는 그이의 말은 불꽃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청자에게 제대로 들려준다.    

  감정이나 사물에 뭔가를 더 얹지 않는 앨범의 말은 섬세한 대목까지도 투명하게 들린다. 이 앨범의 말은 결국 울고 있는 ‘당신’을 위한 말이기에 투명하다고 이 앨범은 말하는 듯하다. 세파에 휩쓸리며 외로움을 견딜 수 없어도 희망이 있다면 날 수 있다는 이 앨범의 느리고 소박한 몇 마디 위로는 찻잔 속에 담긴 차처럼 따듯하다. 이 앨범에 담긴 노래는 온전히 ‘나’를 배려한다. 그래서 가끔 이 앨범을 듣는 게 조금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이 앨범을 들을 때마다, 이런  배려를 받을 만큼 내가 좋은 사람인지를 곰곰이 생각하며 온 하루를 지새우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