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9. 15-25-24
조동익은 이 앨범에서 7곡의 노래를 편곡했다. 그이가 편곡한 노래는 거의 밴드 편성으로 편곡을 한 게 많지만.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나 「내 사람이여」 같은 단출한 세션의 편곡 또한 그이의 손길이 깃들었다. 그리고 그 단출한 편곡은 더 뭉클하게 듣는 사람을 울린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의 다소 엇나간 김광석의 보컬을 듣다가, 「내 사람이여」의 집중된 김광석의 보컬을 연이어 들으니 가슴께가 뻐근하고 뭉클하다. 모던 포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이 앨범에 든 노래가 전부 리메이크곡이라는 사실을 알기도 전에, 김광석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에게 깊이 닿는다. (그가 서른 살 무렵에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정말이지 세련되게 편곡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원곡의 편곡인 것처럼 곡에 착 달라붙는 조동익의 편곡은 이 앨범을 단순한 베스트 모음집 이상의 것으로 만들었다.
드러머 김영석은 이 앨범의 곳곳에서 대활약했다. (한대수의 원곡을 김민기가 고쳐서 부른 버전을 바탕삼은) 「바람과 나」의 단순한 비트 연주나 「불행아」의 브러시 연주,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의 완급 조절이 뛰어난 연주를 특유의 필로 소화하는 그이의 드럼 연주는 (곡이 지닌 필에 적확하게 붙으며) 이 앨범의 핵심인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와 김광석의 목소리를 선명하게 살린다. 기타리스트 함춘호는 「바람과 나」의 기타 연주를 미묘하게 다른 느낌으로 연주하는 대목이나, 「변해가네」나 「그녀가 처음 울던 날」의 일렉트릭 기타를 크리스피하게 치는 대목, 「변해가네」, 「새장 속의 친구」에 등장하는 리드미컬한 어쿠스틱 리듬 기타를 소화하는 대목 등을 비롯한 여러 곳을 능숙하게 연주했다. 피아노와 키보드로만 이뤄진 「내 사람이여」의 김광석의 목소리를 덤덤하게 받쳐주거나, 「새장 속의 친구」의 인트로를 부드럽게 연주하는 박용준 또한 이 앨범을 빛내는 데 공헌했다. 하동진의 슬라이드 기타 연주는 특히 이 앨범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후반부를 (김광석의 하모니카와 더불어) 풍성하게 만들어, 곡의 애수 어린 성격과, ‘발현악기’의 사운드에 초점을 맞춘 이 앨범의 기조를 한꺼번에 만족시켰다. 조동익은 이 앨범에서 테크닉보다는 곡에 충실한 베이스 연주를 연주하는 겸양의 미덕을 발휘하며, 김광석의 목소리와 앨범에 든 곡이 충분히 조명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 앨범에 이르러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돌린을 잡은 김광석은 「잊혀지는 것」이나, 「변해가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에서 해당 곡이 지닌 샤프니스를 보충하는 스트로크 연주를 곳곳에 실었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의 인트로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의 인트로 같은 곳에서 등장하는 정교한 하모니카 연주는 그가 훌륭한 하모니카 연주자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한다.
수많은 정교한 연주와 훌륭한 편곡이 들어갔지만, 결국 남는 것은 정확하게 부르지 않은 부분까지도 사람 가슴을 치는 경지에 이른 김광석의 목소리와 그 목소리에 가지런히 모인 11개의 노래다. 그는 소위 ‘히트곡’만 찾아서 부르지 않았다. (당시 기준으로) 사라진 노래에서 자신이 부를 노래를 골라 부른 그이의 안목은, 좋은 노래를 찾아 부른다는 일념 하나로 이뤄졌기에 더 강력하다. 그의 마지막 스튜디오 앨범이라는 사실까지 되살릴 정도로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이 앨범은 안타까움의 한숨이 천천히 퍼지는 속도로 우리네 가슴을 잔잔히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