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9. 25-24-22
이 앨범이 노태우 집권 시기(말엽이긴 하지만)에 발매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새삼스럽다. 이른바 ‘문민정부’가 들어서기도 전에 나온 이 한 장의 신드롬은, 음반을 만든 본인들을 포함한 거의 모든 세대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세상으로 이끌었다.
물론 「난 알아요」나 「환상 속의 그대」가 그 당시의 한국 상황 기준에서 상당히 새로운 사운드를 담고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신디사이저를(피아노나 소위 ‘배경음 도구’로 이해하던 당시의 통념을 뒤집으며) 잇단음으로 연주하여 사운드를 더욱 다이내믹한 덩어리로 만들기도 하고, (초보적이긴 하지만) 랩의 구절마다 더블링을 집어넣기도 하며, (당시에 이런 테크닉을 구사한 팀은 이 팀과, 라임에 더블링을 집어넣은 듀스밖에 없었다.), 필요에 따라 디스토션 기타나, 각종 비트박스 사운드나 보이스 샘플을 약방의 감초처럼 사용하는 이러한 사운드 메이킹은 이 앨범을 일종의 ‘재밌는 앨범’으로 들리게 했다. MIDI 프로그램으로 만든 음악의 얄팍함을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완하는 이러한 ‘고안 장치’는, (당시 이름으로는) ‘랩뮤직’이라는 장르에 대한 청자의 이질감을 줄이며, 청자와 음악의 간극을 좁혔다.
앨범의 사운드 자체가 샘플링 기법을 동원했기에, 이 앨범은 리믹스의 가능성 또한 제대로 열어뒀다. 「내 모든 것(Live Mix)」은 손무현의 기타 솔로와 신디사이저의 활용 능력을 여실히 들을 수 있는 곡이지만, 환호성이나 리허설 잡담을 넣은 덕분에(아직 그가 자신의 팬과 조우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이 곡을 만들었다는 점을 상기하자.) 새로운 질감으로 거듭났다. (이 곡은 또한 이후에 일어날 서태지와 팬의 흥미로운 교류를 끌어내는 주요한 구심점이 되었다.) 「난 알아요」를 영어로 편곡한 「Blind Love」나, 「Rock'n Roll Dance ('92 Heavy Mix)」 또한 이런 방식의 연장선상에 놓인 곡이다. 90년대 댄스음악이 지닌 특유의 유머 감각, 그리고 리믹스를 비롯한 여러 개념은 기실 이 앨범의 소산인 셈이다.
물론 이 앨범은 80년대 댄스 앨범이 지니고 있던 ‘정조’도 담겨 있는 앨범이기도 하다.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양현석이 가사를 쓴)「이 밤이 깊어가지만」이나 (양현석이 보컬로 참여한)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그리고 「이제는」과 같은 곡은 「난 알아요」나 「환상 속의 그대」가 지닌 신선함이 비교적 놓치고 있는, 정서적인 유연성을 충분히 보충한다. 그러나 이런 곡들조차도 당시의 대중에 대한 참신한 어프로치로 인해 전혀 다른 뉘앙스의 곡으로 거듭났다.
이 앨범의 ‘분명한’ 그림자는 이들을 포함한 그 당시 한국 사회에 살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었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멀거니 넋 놓고 앉아 한탄하고 부러워하는 대신, 발버둥이라도 치는 편을 선택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그게 다 마음에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앨범에 대한 비판은 (몇몇 귀 밝은 청자와 당대의 뮤지션과 당대의 뮤지션 ‘워너비’를 제외한) 상당 부분 나를 포함한 우리 자신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혹은 우리의 젊은 시절 어른들은) 이들의 음악에 열광했다. 이 점을 모두가 솔직히 인정한 다음에야, 우리는 이 앨범을 비로소 제대로 논의할 수 있을 테다. 그날이 올 때까지 나는 이 앨범의 음악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힌 수많은 눈동자를 들여다볼 생각이다. 현재까지 이 앨범이 거둔 의심의 여지 없이 가장 큰 성과는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