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설렁탕 한 그릇을 먹는 행복

by GIMIN

나는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정의를 적어놓은 책이 한 권쯤은 가슴 속에 품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여러 권의 책을 쌓아 놓은 사람도 있었고, 귓속말로 한 줄 정도 되는 분량의 문장으로 내게 말을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홍콩 여행 이야기와 여름의 오사카 이야기를 비롯한) 12월 말의 도쿄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쓰면서 차근차근 쓴 글을 다시 읽어봤다. (모든 작가는 자기 글의 첫 독자라는 특혜를 누린다.) 여기 적힌 문장은 내가 여행 도중에 적은 것도 많다. 읽는 내내 내가 이런 문장을 썼다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뿌듯했다. 나는 계획대로 되지 않은 여행에 유달리 날 서있었던 듯싶었다. 안 그런 척했지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엄청 불평이 많았구나 싶었다.


그러나 결국 그 불평도 기억 속에 사라져 갔다. 대신 내 기억 속에 남은 건 풍경이었다. 비 오는 풍경, 바람 부는 풍경, 구름이 잔뜩 낀 풍경.


불행과 행복은 그 풍경 안에서 분리할 수 없는 빛과 그림자로 덩그러니 남았다. 지나고 나면 다 저렇게 덩그러니 남을 것을 나는 왜 그리도 아등바등 살았던가.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쓰면서도 나는 내 마음을 불행과 행복이라는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고 있다. 아마도 이런 ‘분류’는 계속 이어지리라.


나는 사진 한 귀퉁이를 집게로 집어 줄에 매단 것처럼 매달린 풍경들을 오래 지켜봤다. 나는 거기에 뭘 더 얹고 싶지 않다. 이 문장들을 들고 내 방으로 가면 문장은 내 방의 채도로 덧칠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도쿄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 써서 실은 것말고도 더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쓰여지지 않은 이야기'를 그대로 남겨두고 싶다. 내 여행은 글을 쓰기 위한 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쿄에 대한 글이 나를 발견할 때까지, 나는 내 워드 프로그램을 내버려 둘 생각이다.


소금 결정의 각진 모양보다 뚜렷한 현실 속에서, 희미하게 맡을 수 있는 재스민 꽃의 향기를 찾는 일은 늘 쉽지 않다. 그러나 재스민 꽃의 향기는 금세 사라지고, 소금은 결국 우리 삶을 썩지 않게 한다. 향기를 찾는 삶을 꿈꾸는 일만큼이나, 소금 땀을 흘리며 사는 지금 이 순간 또한 소중하다.


결국 불행이 내 행복을 썩지 않게 했고, 행복이 내 불행을 꽃향기로 물들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가슴이 뭉클하다.


내 행복의 책 마지막 페이지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날 저녁에 먹은 설렁탕 한 그릇이 있다. 밥에 말은 설렁탕에 깍두기 한 점 올려서 맛있게 먹기 위해 여행을 갔다 온다는 사치를 내가 지금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 이거 한 그릇 먹고 바로 푹 자자. 내일 당장 있을 애매한 불행을 고민하다가, 덮고 있는 이불처럼 손에 잡히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낭비’까지 저지르진 말자, 우리.(202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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