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추럴 와인이란 무엇인가
지금 와인 세계에서는 하나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바로 네추럴 와인이라는 유령이다. 이 주제를 놓고 여러 의견들이 활발히 나오고 있으며 어떤 의견들은 극단적으로 대립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네추럴 와인은 정확히 무엇인가?
사실 아무도 모른다. 아직 네추럴 와인에 대한 법적, 행정적인 정확한 정의는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관습적으로는 유기농 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하고 화학비료 및 화학적 첨가물(인위적 효모, 인공 탄닌, 당, 색소 등등)을 최대한 배제하며 보존제인 이산화황을 최소로 넣은 와인들을 네추럴 와인이라고 부른다. 음, 유기농으로 농약을 쓰지 않고 인위적 첨가물이 없다니 당연히 좋은 거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렇게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문제다. 이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와인의 근현대사를 먼저 알 필요가 있다.
-와인의 급속한 공업화 및 세계화
20세기에 급속도로 발전한 과학적인 와인학(eonology) 덕택에 와인 생산자들은 와인에 화학 성분을 추가하거나 제거할 수 있게 되어 자유롭게 원하는 맛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병입 후의 산화, 조절되지 않은 발효, 브레타노미세스균에 의한 불쾌한 냄새 등 와인의 결함들을 손쉽게 제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와인 산업은 엄청나게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전쟁 후 바야흐로 본격적인 산업 시대가 시작되고 농촌의 젊은이들은 모두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리게 된다. 그래서 와인 농가는 일손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그런 농부들에게 구원과 기적이 일어났으니 바로 화학비료와 농약 그리고 농기계였다. 이것들의 도움으로 인력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와인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그에 더해 20세기를 특징짓는 세계화의 영향으로 와인 산업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유명 와인 평론가의 입맛에 맞춘 와인들을 만드는 것이 와인 생산자들의 목표가 된 것이다. 왜냐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그런 와인이 잘 팔리게 때문이었다. 기계와 화학 비료 및 제초제의 도움으로 포도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으며 앞서 말한 와인학의 발달의 덕으로 특정한 맛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한국에 사는 우리들도 전 세계의 다양한 와인들을 저렴한 가격에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 세계의 다양한 와인들의 맛이 획일화되어버리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이렇듯 와인의 현대화는 빛과 그림자를 모두 갖고 있다.
-네추럴 와인이 약동하는 21세기
획일적인 공산품이 되어버린 와인에 염증을 느낀 몇몇 와인 생산자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이 와인을 만들던 방식을 다시 되살려보고자 노력하며 인간의 개입을 최소화시킨 와인들을 만드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트랙터 대신 가축의 힘을 빌어 밭을 갈고 사람의 손으로 직접 포도를 수확했다. 육중한 기계가 땅을 짓누르지 않은 덕택에 공기가 잘 드나들고 배수가 용이한 건강한 토양이 되었으며 알맞은 포도를 선별해 세심히 손수확한 덕택에 포도가 으깨지지 않았다. 포도가 으깨지는 순간 포도껍질에 있는 효모와 과육에 있는 당의 만남으로 자연발효가 시작된다. 따라서 기계 수확을 하는 생산자의 경우 온도를 낮춰 때 이른 자연발효를 멈추고 자신이 원하는 시점에 인공 효모를 넣어야만 한다. 그들은 와인의 발효가 끝난 뒤 필터링을 하지 않거나 최소한으로만 했다. 필터링은 와인병 안에서의 원치 않는 발효를 막기 위함이지만 이 과정에서 와인의 복합적인 맛과 향 그리고 상당수의 유산균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상술한 움직임은 198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며 후에 사람들은 이 와인들을 네추럴 와인이라고 부르게 됐다.
21세기인 현재, 전 세계의 모든 이들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현상의 심각함을 직접 몸으로 느끼며 환경 보호가 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이런 이유로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포도를 재배하여 만들어지는 네추럴 와인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으며 그 관심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네추럴 와인생산자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다.
당연히 한국에도 네추럴 와인이 소개됐고 코로나 시기에 잠깐 네추럴 와인 붐이 일기도 했었다. 하지만 네추럴 와인에 대한 수요가 계속 증가하는 전 세계의 흐름에 비하면 한국의 네추럴 와인 붐은 너무나 빨리 시들시들해져 버린 느낌이 있다. 왜 그랬을까?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우선 코로나 이후에 시작된 본격적인 불경기로 인해 소비심리가 위축된 탓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필품이 아닌 와인의 소비량 자체가 대폭 감소했다. 대량 생산을 하지 않는 네추럴 와인의 특성상 단가가 컨벤셔널 와인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기에 네추럴 와인은 경제 불황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일부 와인 보틀샵과 레스토랑 그리고 와인바에서 네추럴 와인을 지나치게 비싸게 팔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와인의 품질보다는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찍어 올리기에 좋은 예쁘고 힙한 레이블에 초점을 맞추어 와인 리스트를 구성했다. 기분 좋게 사진을 찍고 병 안의 와인을 마신 소비자들은 당연히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네추럴 와인은 가성비가 좋지 않다는 인식이 만연하게 됐다. 앞서 말했듯이 네추럴 와인에 대한 관련 규정이 확실히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옥석을 잘 가려야 할 필요가 있다. 네추럴 와인의 유행에 편승해 기준 미달의 와인을 네추럴 와인이라고 내세우는 생산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와인들 탓에 네추럴 와인 전체의 이미지가 타격을 입었다.
나는 합리적인 가격의 정말로 맛있는 네추럴 와인들을 소개해 네추럴 와인에 대한 이런 부정적인 편견을 깨고 싶다.
-네추럴 와인을 마실까? 말까?
그렇다면 지구를 위해서 네추럴 와인만을 마시는 게 옳은 일일까? 글쎄, 나는 어떤 것을 먹고 마실지는 각자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와인을 마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군가는 단순히 취하기 위해 마실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와인을 마시는 자신의 모습에 취해 마실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 와인을 마시는 근본적인 이유는 즐거움이다. 기분 좋은 맛과 향에서 오는 즉각적인 쾌락뿐 아니라 8000년의 역사를 가진 이 경이로운 술의 역사적, 문화적 여정을 알아가는 지적 즐거움. 그것이 내가 와인을 사랑하는 이유다. 나는 네추럴 와인의 질박하고 생동감 있는 맛과 향이 즐겁다. 나는 소박한 농부들인 네추럴 와인 생산자들이 들려주는 그들의 문화와 역사 이야기가 즐겁다.
어쨌든 와인을 즐기며 얻는 즐거움은 주관적인 경험이며 주관적인 취향에 옳고 그름은 없다; 자신의 취향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한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