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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을 보지 말고, 본질을 봐

by 봄날의 북극

대학입시 면접날이었습니다. 근엄함 표정의 면접관이 앞에 앉아 있고, 그날 처음 본 낯선 네 명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명은 면접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습니다.

마침 햇살이 비스듬히 면접장으로 스며들었고 햇빛에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오른쪽 벽면에는 태국이 중심이 된 커다란 지도 한 장이 걸려있었습니다.

내가 지원한 학과가 태국어라 그러했을 것입니다.


다소 긴장한 분위기의 면접장 모습과 달리 나는 조금 짜증이 밀려왔습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이 상황도 그리고 저기 테이블 너머의 근엄한 면접관도 마음에 들지 않아 몹시 거북하면서 신경이 거슬렸습니다. 학력고사 시절이던 그때의 면접이라는 것은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당락과는 전혀 무관했는데도 묘한 긴장감이 흐르던 그때의 공기가 지금도 잊혀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곳의 긴장감과는 달리 나는, 원하던 대학교는 떨어지고 후기 대학교 중 적당한 곳에 지원하면서 내 의견이 아닌 담임 선생님의 유망학과라는 추천으로 그 당시로는 생소한 태국어과에 지원 한 것에 대한 짜증과 냉소가 섞인 불량한 태도였을 겁니다.


무엇보다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 때문에 호르몬이 요동치는 시절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날의 면접 내용은 30년 훌쩍 지난 지금에는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다만 면접관인 교수님이 무언가를 질문했고, 다들 순응적이고 모범적인 답을 이야기하는 것과 달리 그날의 기분이 태도가 되어버린 나는 몹시 공격적이고 냉소적인 답변을 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러한 점을 교수님은 재밌어하셨던 것 같습니다. 면접이 끝난 후 내 수험번호와 이름을 부르며 합격하게 된다면 자신의 사무실에 들러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다면 빙긋 웃던 모습이 지금껏 기억납니다 만, 합격 후 교수실을 찾아 간 기억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학교 그 과에 결국 합격을 했습니다.

내가 원했던 과는 아니었고, 내가 가려고 했던 학교도 아니었지만 덜컥 합격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학교를 다니게 된 것입니다.


봄날 화사한 빛깔과 꽃냄새와는 달리, 당시의 시대 상황은 수업하는 날 보다 데모하는 날이 많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모임이 많은 날들이었습니다. 봄꽃 냄새보다는 매캐한 최루탄 가스를 자주 맡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 냄새는 익숙해질 수 없는 독한 매운맛이었습니다.


학교 운동장을 둘러가는 오르막길을 오를 때면 1주일에 서너 번은 운동장에 무슨무슨 총궐기 대회라는 플랜 카드와 민중가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곤 했습니다.

처절하고 비장한 가사 때문인지 5월의 푸릇함도 붉게 물들어 가는 피비린내를 느끼곤 했습니다.

귀를 막고 싶을 만큼 거부감을 느끼기도 했었습니다.


어느 날엔가 과 선배들과의 신구 대면식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벌써 몇 차례의 대면식과 술자리가 있은 후라서 또 무슨 대면식인가 싶을 만큼 모임이 많던 날들이었습니다.

한 선배가 제게로 와서는 네가 "**이지?" 라며 물어 왔습니다. 수줍은 많은 사람인지 약간 얼굴을 붉히면서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은 소리로 말을 걸어와 처음에는 나를 부르는 것인지 바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가 빤히 나를 바라보는 게 아니었다면 나를 부르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너 제법 유명하던데?'

유명이라는 말과 나라는 인간사이의 간극이 너무 멀어서 이 선배가 진정 나를 가리켜하는 말인가 하는 의심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분명 그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너 얘기 자주 하시더라, 면접 때 재미난 친구가 왔다면서 그러시더라고"

그런 식의 말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나도 그때의 나도 '재미'라는 것과 '유명함'이라는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호르몬 폭발이던 그때 나는 잠깐 누군가에게는 '재미난 친군 걸'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는 모양입니다.

선배는 그렇게 종종 나를 찾아와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갔습니다.

주로 지금의 시국이야기와 대학생인 우리들이 해야 될 일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했었습니다.

그때 것 저는 모범생이라고 하기에는 쑥스럽지만 어른들이 줄 그은 길 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했고, 신문과 티브이에서 보여지는 것들이 세상의 진리라고 믿고 살던 때였습니다. 세상물정 모르고 내 주변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다만, 불만 가득한 시절이라 모든 게 삐딱하게 보이던 것들이 왜 삐딱한지를 알지 못 한 체로 삐딱함이 불편하고 짜증이 나는 정도였을 뿐입니다. 세상은 내가 보고 있는 게 다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자각은 그렇게 내 속에서 울화처럼 자라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은 수업과 수업사이의 시간이 2시간 정도 비어 있는 날이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난 시각의 5월의 야외 벤치에서 빈 시간에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선배가 나에게로 왔습니다.

"너는 동기들이랑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 근처 비어 있는 벤치 옆에 나란히 앉으면 말을 걸었습니다. 마침 5월의 햇살이 선배 뒤편 위에 있어 그를 바라볼 때마다 얼굴이 찡그러졌습니다.

별다른 말을 찾을 수 없어 그를 흘긋 보다가 다시 빈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청 재킷이 좋아 보인다."

그 말에 따라 그런가 하며 입고 있는 재킷을 훑어보았지만 어디가 어떻게 좋아 보이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하루 나 빌려 줄 수 있어?"

"오늘도 저녁에 학교에서 자야 될 것 같아"

"어제도 집에 못 들어가서 옷을 못 챙겨 왔거든, 5월이지만 밤이 되면 제법 추워"

그날 처음 입고 온 청자켓이라 잠시 망설여졌지만, 그렇게 하겠다며 벗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몇 마디 더 나눴지만 지금으로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 대화입니다.

다만,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그날의 대화 중 하나가 있습니다.

"현상을 보지 말고 본질을 보고 판단해야 돼,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현상을 보지 말고 본질을 보고 판단해야 돼,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그 말이 그처럼 강렬하게 각인되었던 것은 아마도 어렴풋하게나만 느끼고 있던 부조리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는 말이라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빈 운동장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길었던 그날의 대화는 어떻게 끝났는지, 그리고 오후 수업에 들어갔었는 기억나진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청자켓은 어떡했냐고 물었고, 선배에게 하루 빌려줬다는 말에 그 옷 오늘 처음 입고 간 거 아니냐, 그리고 제법 비싼 옷이라며 타박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그날의 마지막 기억입니다.

내일 받을 수 있어라고 변명했지만 죄송스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 돈으로 학교를 다니고, 부모님의 돈으로 생활을 하던 시절이었고 그 옷도 형평에 맞지 않게 비싼 옷이었을 겁니다.


다음날 등교를 했고, 옷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던 나였지만 전날의 그러한 일 때문에 신경이 쓰여 처음으로 먼저 그 선배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있을 만한 학과실이나 동아리실, 그리고 우리끼리 은밀히 부르던 지하서클 방까지 돌아다녔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과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2학년 동기생인 선배 한 명을 우연히 만나, 그 선배에 대해 물었지만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2학년 동기생 선배 몇 명을 더 만나 묻다가, 그들 동기생 중 누군가가 그는 어제 경찰에 잡혀갔다는 말을 전해주었습니다. 한밤중에 학교 지하 서클로 경찰이 들이닥쳐 미처 피할 사이 없이 거기 있던 모든 이들이 잡혔갔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유로?라고 묻지는 않았습니다.

그 당시는 그런 시절이었으니까요.


거의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봄도 벌써 지났고, 이제 청자켓 따위는 입을 수 없는 따가운 햇살과 후덥 한 기온의 그런 날, 우연히 그를 마주쳤습니다.

평소에도 말이 없고 그나마도 나른하고 조용한 말투와 행동 때문에 눈에 띄지 않는 그 선배였지만, 언제나 나를 보면 늘 반갑게 말을 걸었왔던 그였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평소보다 더 창백하고 생기가 없는 얼굴로 따가운 햇살이 남아 있는 벤치에 앉아 빈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쳐 갔을 나를 그가 불러 세웠겠지만, 그는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청자켓을 돌려받아야 하는 나로서는 할 수 없이 먼저 아는 척을 하며 비어 있는 앞 벤치에 앉아 그를 불렀습니다.

그는 멍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먼 곳에 아득한 저 너머의 어딘가를 보는 듯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시선은 현실로서 여기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투명하게 반짝이는 유리알처럼 나를 통과해 저 멀리 내가 알 수 없는 어느 곳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가 바라보는 것이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이 아니라는 느낌에 그의 시선을 붙들고 이곳으로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눈빛에는 지독한 외로움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곳, 지금 여기로 돌아올 수 없음을 저는 직감했습니다.

청자켓 역시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여름이 시작되는 지금 청자켓이야 어찌 되던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그가 말했던 현상을 보지 말고 본질을 보라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의 현상인 껍질은 여기에 있는데 그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그가 바라보고 있는 그곳이 본질인 것일까?

나는 그의 껍질을 보고 있을 뿐 그의 본질을 볼 수 없음이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으로 우리의 대화도 우리의 만남도 끝이 났습니다.

2학기가 시작되고도 한참이 지나서 누구에게서 들은 것인지 모르지만 자퇴를 했다는 것이 그에 대한 마지막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본질을 볼 것을 요구했고, 현상에 집착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껍데기에 불과한 현상은 그저 본질의 그림자에 불과할 뿐임을 그는 말하고 있었지만, 지금 나는 그림자에 쫓기어 살아가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유리알처럼 투명한 눈길로 나를 통과해 저 먼 곳 어느 지점을 바라보며 껍데기로서의 삶을 끝내려 하던 그 순간을 저는 깨닫지 못했나 봅니다. 그는 자신의 본질을 찾아 떠나갔으리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그림자가, 껍데기가 가득한 이곳을 버리고 그가 찾아 나선 본질에 닿았는지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무척 궁금해집니다.


어느 순간 그림자로서, 껍데기로서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 나의 존재를 그의 투명한 유리알 같은 눈빛으로 다시 한번 나를 바라봐 준다면 내가 그토록 그를 붙들어 이곳으로 데려오고 싶어 했던 그날에, 나도 그와 함께 그렇게 떠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림자로 살아가다 보니 그것이 진정한 나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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