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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북극 Dec 24. 2024

기억에 대한 오해/그(그녀)와의 만남


"어쩌면…"

걸음은 멈추지 않은 채  그(그녀)는 다음말을 신중히 고르고 있는 것인지 말이 없다.

어찌해야 될지 모르는 나는 여전히 주춤한 걸음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어쩌면 저는 처음부터  당신이 떠나온 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느낌은 당신에 대해 차즘 알아가면서 확신에 가까운 믿음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가끔 떠나온 그곳의 풍경을 말할 때면 눈이 반짝이며 흥겨운 즐거움으로 말이 빨라지는 것을 스스로는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그(그녀)가 나를 처음 만난 날? 문득 그곳이 어디였지 그날이 언제였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말도 멈추지 않은 채 계속 이어 나갔다.


"당신이 길을 나서던 그날은 날이 참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멀지 않아 진흙에 빠지고 발이 묶였던 날에 하루 낮을 그렇게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졌고 어둠이 찾아왔을 때 하늘의 별이 참 아름다웠다고 말했었죠."


"그 별을 바라보던 순간에 당신은 어쩌면 별이 되기 위해 떠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었습니다."


"별이 된다는 것은 당신이 그토록 바라던 하나의 음(音)을 얻게 되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의 음(音)에 대해서 저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진흙 속에 완전히 잠식되기 전 우연히 저는 당신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의 순간이었습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뒤돌아 보지 않는 그(그녀)의 말은 그(그녀)가 향해 걷고 있는 방향으로 뻗어 나갔다가 어딘지 알 수 없는 먼 곳까지 가서는 무언가에 부딪혀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아득하고 멀게 들려왔다.

그(그녀)가 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쯤에 이곳 하늘에도 별이 보일 것 같은 생각에 하늘을 올려다봤지만 캄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환하게 밝은 것도 아닌 희끗한 하늘이 보일 뿐이었다.

그것을 하늘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머리 위 저 아득한 곳이 하늘이 아니라면 뭐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


그(그녀)는 잠시 멈춰 섰다. 내가 하늘을 올려다보느라 걸음이 늦어져 자신과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듯 기다려 주는 것일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도 나를 느낄 수 있는 것일까?


"하나의 음(音)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저는 여러 번 당신에게 물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말하기 전 당신은 떠나온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이 조화롭고 완벽했지만 시인이 되기에는 환경적으로 미흡하다고 했습니다."


"시인이 되기 위한 적합한 환경이라는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의문은 접어두고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수시로 아름다운 새들이 노래하고 바람에 실린 훈풍은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저곳에서 이곳으로 불어오곤 했습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 자신에게 일어나는 변화와 목소리에만 귀 기울일 뿐이었습니다. 사실 목소리라는 것도 필요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편의상 목소리라고 했을 뿐 자신에게 울리는 마음의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던 것입니다."


" 평상시에는 서로에 대한 관심이 없어도 그들에게도 가끔 서로와 소통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마저도 소리 내어 말하는 대화의 방식이 아니어도 소통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대로 하나의 작은 세계였던 곳을 당신이 떠나려고 했던 건 어느 날 밤하늘의 별을 보았을 때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날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그날의 당신은 하루종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둠이 찾아오고 소리 없는 밤이 찾아왔을 때 기적처럼 작은 별 하나가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곳에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머리 위에 하늘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살아갔는지도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하늘에 별이 뜨고 달이 진다."


"당연한 이야기 같겠지만 그날 하루종일 하늘을 올려다보던 당신은 그 사실이 기적처럼 감동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그 순간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하늘에 별이 뜨고 달이 진다."


"그 말을 소리 내어 말해 보고, 실로 얼마만의 목소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자신의 목소리 같지 않은 낯선 소리가 잔잔하게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당신은 시인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늘에도 별이 뜨고 때가 되면 달이 지듯 당연히 당신도 시인으로서 살아가야겠다는 것이 운명처럼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그날 밤, 당신은 그곳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직 별이 떠 있을 때 소리도 없는 밤이 사라지기 전 당신은 떠나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하고서는 길을 나섰다고 했습니다."


그(그녀)는 여전히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걷고 있었다. 하늘의 별을 보고 떠나왔다는 그(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별을 따라 길을 나섰다는 것일까?


지금 이곳은 하늘이라 불릴 만한 머리 위의 저곳에는 별도 달도 보이지 않는다.

그(그녀)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그녀)도 하늘을 올려다본다.


"여기도 한때는 하늘이 있었지만 지금은 하늘이라고 하는 흔적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당연하게도 별과 달도 없습니다."


그 말을 하는 그(그녀)의 목소리가 가볍게 떨린 다고 느꼈다.


늘 억양이 없는 그(그녀)의 목소리였지만 분명 감정이 북받쳐 마음을 뒤흔드는 떨림이 번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감정의 파문이 나의 가슴에도 상처를 남기며 스쳐 가는 것이 느껴졌다.

상처의 결이 느껴지는 상당히 실체적인 고통이었다.


눅눅한 늪 같던 진흙에 발이 묶였던 어느 날, 걸음을 옮길 때마다 더욱 깊이 발이 잠겼던 그날의 기억이 상처의 결을 따라 떠올랐다.

한 걸음, 다음 한 걸음, 발목에서 무릎으로 그리고 목까지 진흙이 차 올랐다.

이제 곧 나는 숨을 쉴 수도 없을 거고 목소리도 낼 수 없을 것이다.

떠나온 곳에서는 목소리가 필요치 않았지만 지금은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었다.

소리를 지른다.

비명 같은 나의 목소리를 끝으로 진흙이 밀고 들어와 막아 버린다.

하늘의 별이 반짝인다. 그래 나는 별을 따라 시인이 되려고 했었지.

하나의 음(音)을 찾아 길을 나섰지.

그런 생각들이 진흙이 목구멍으로 밀려 들 듯 머릿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이제 눈까지 밀려 들어온 진흙 탓에 하늘의 별도 더 이상 볼 수 없을 쯤에 그(그녀)가 손을 내밀었었다.

진흙 탓에 그(그녀)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따스한 그(그녀)의 손길이 구원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그(그녀)와의 첫 만남이었을까.

그것이  우리의 필연적 관계였을까?


그런데 당신… 누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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