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그락, 동전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 때문인지 잠에서 깨어났다.
분명 새벽 2시 그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확인하지 않았도 새벽 2시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난밤과 멀어져 깊은 새벽으로 가기 전,
다음 날 아침이 오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
그 정도의 어둠이 방안에 있다.
잘그락, 동전 소리는 또 한 번 먼 곳에서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메아리 같은 소리는 방향성이 느껴지지 않아 어디서 들려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곳 이 방 안에서 울리는 소리 같진 않았다.
나의 방은 그리 넓지 않다.
작은 책상 겸 다용도 목적으로 이용되는 테이블 하나와 가끔 음식을 먹거나 혹은 술을 마시기 위한 용도의 앉은뱅이 접이식 탁자가 있다.
그렇지만 한 번도 접힌 적이 없는 탁자는 늘 그렇듯 그 자리에 있었다.
완벽히 어둡지 않은 희미한 어둠이라 방안의 그러한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때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불 밖으로 나의 손이 허공을 향해 손짓하듯 혹은 무언가를 잡으려고 했는지, 아님 급하게 사라지려는 누군가의 흔적을 붙들려고 했는지, 뻗고 있는 상태로 있었다.
그러나 그 손 안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잘그락 거리는 동전 소리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척 소리에 잠이 깼는지 모르겠다.
5평 남짓한 방안은 한 번 슬쩍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샅샅이 살펴볼 수 있다.
이렇다 할 가구도 없는 나의 방은 무언가가 숨어 있기에는 정말 부적합한 장소이다.
방안은 지난밤 잠들기 전과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본격적인 추위가 찾아오지 않은 겨울의 초입이라 이불밖으로 손을 뻗고 있었지만 춥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가만히 손을 거둬들이고 희뿌연 어둠 속에서 나의 손을 바라보았다.
다섯 개의 손가락과 손바닥의 지문이 낯설게 보였다.
실체적인 나의 손이지만 왠지 이질적인 느낌이 남아있는 손을 다른 손으로 만져보며 확인해 보았지만
틀림없는 나의 손이다.
손안에 어떤 흔적이, 무언가의 예언이 남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으로 살펴보았지만 그것은 그저 평범한 나의 왼 손일 뿐이었다.
새벽 2시경은 무척 조용한 시간이다.
지난밤과 멀어져서 세상은 깊은 잠에 빠져 들었고, 꿈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모호한 경계에서 서성이는 시간이다.
꿈이 현실 같고, 현실은 꿈처럼 느껴지는 그 시간이 새벽 2시가 가진 특징이다.
모호한 경계에서 잘그락 거리는 동전 소리가 실체인지 환청인지 구분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던 동전 통이 생각이 났다.
한때는 쓰다 남은 동전 모으는 재미로 작고 투명한 플라스틱을 저금통 삼아 동전을 모았었던 적이 있다,.
그것은 여전히 방안 구석에 지금도 그대로 있었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홀로 시간을 보낸 듯 동전만큼이나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정도이다.
오래전 일이다.
지금은 동전이 생길 일이 전혀 없어서 더 이상 동전 모으기를 할 수 없게 되었지만 한때는, 투명한 플라스틱에 동전이 차오르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었었다.
그때도 지금과 같은 위치에 동전통은 있었지만, 동전을 모을 수 없게 된 어느 순간부터 존재감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잘그락 거리는 동전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동전통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법 가득 모여진 동전들 중에는 10원짜리 동전도 많이 있을 텐데.
그중 하나를 아니 두 개를 꺼내어 전화를 걸 수 도 있을 텐데, 하는 엉뚱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지금은 2개의 동전으로는 전화를 걸 수도 없다.
전화를 걸기 위해서 이제는 더 많은 동전이 필요하겠지만 동전이 넉넉하다고 해서 전화를 걸 수도 없다. 거리에 공중전화 부스 자체도 찾는 것이 쉽지 않고 운 좋게 공중전화를 찾았다고 해서 누구에게 전화를 걸 것인가?
동전이 없어도 지금은 누구나 스마폰을 가지고 있고 원할 때 언제든 전화를 걸 수 있지만, 전화기 너머 누구와 통화를 할 수 있을까?
애타게 찾던 그(그녀)는 그곳에서 여전히 나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계속하게 둘 순 없다.
새벽 2시경에서 시간은 지금도 착실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다시 잠들지 못한다면 다음날 아침 아니 오늘 아침은 몹시 곤란할 것이 틀림없다.
생각을 멈추고, 잘그락 동전 소리도 잊고, 다시 잠을 자야겠다.
아직 어둠은 완전하게 찾아오지 않았고 눈을 감아도 완전한 어둠이 찾아오지 않는다.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가 더 이상 모호하지 않고 구체화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또다시 잘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서늘한 한기가 어둠의 장막을 걷고 밀고 들어오려는 듯이 느껴졌다.
긴 복도 끝에 간신히 불을 밝히고 있는 자판기와, 커피와 교환되지 못한 동전 하나가 또르륵 굴러오는 것이 느껴졌다.
새벽 2시경.
그러나 지금은 몇 시일까?
며칠일까
까무룩 잠이 든다.
모호한 경계를 넘어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