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간 근무하시고 연말에 퇴직을 앞두고 계신 선배님이 만날 때마다 걱정 한가득이시다.
"앞으로 어떡하지?"
"이제 뭐해서 먹고살지?"
마음이 답답해서 그냥 하소연하시는 것인지
진짜 무엇을 하면 좋을지 도움이 되는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시는 것인지
둘 다 이신지
정확한 의중을 모르겠어서 "글쎄요... 뭐가 좋을까요.." 얼버무리고 만다.
선배는 집안의 외벌이 가장이시다.
가장으로서 본인이 은퇴하면 '퇴직 후 가정의 생활비는 어떡하나'가 가장 큰 걱정이라고 하셨다.
배우자가 있으시고, 자녀분들은 성인인데 그중 한 명은 아직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았고, 노부모님을 봉양해야 하는 상황.
어떤 속사정이 있는지 세세히 알지 못하여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려 본다.
"가족분들과 얘기 나누어보시면 어떠세요?
그동안은 선배님께서 가장으로 집안의 경제적 역할을 모두 책임지셨지만,
이제부터는 그 부분의 역할을 함께 나누어보자고 말이에요.
미미할지라도 십시일반 힘을 모으자고 말씀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퇴직 후 생계비를 오늘도 내일도 걱정하시는 선배님의 말씀을 듣다 보면
듣는 나도 버거워진다.
진정 무거운 짐을 혼자서 모두 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신지
당신이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을 하시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두 경우 모두 가혹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금까지 지켜봐 온 선배님은
매우 검소하시고 경제관념이 철저하셔서 텅장은 분명 아닐 것이다.
자가도 있으시고 연금도 꾸준히 납부하고 계시고
예금 적금도 분명 있으실 것이다.
대책 없는 분이 절대 아니시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직 후 가정의 생계비로 고민이 많으시다.
내가 가장 마음이 쓰이는 부분은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려 애쓴다]는 점이다.
가정의 경제력 담당에 지나치게 강박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워낙 책임감이 강하셔서
끝까지 가족을 책임지고자 하는 마음이 크시겠지만요..
하지만요 선배님
혼자 짊어지려 하지 마시고
가족들에게도 참여할 기회를 주세요.
가족들과 함께 진지하게 상의해 보세요.
함께 나누시면 덜 힘들잖아요.
자녀분들의 성장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데 평소 선배님의 성격으로 보자면,
내가 이렇게 말했을 때
"나 밖에 없어. 다른 가족들은 할 수가 없어. 못해.." 하며 한숨을 쉬실 것 같다.
선배님의 마음을 한번 더 내려앉게 할 수도 있어서
마음에 담아둔 말을 쉽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가족분들도 선배님의 은퇴시기를 알고 계실 테고
그래서 가족 구성원들도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건강한 심신 유지를 위한 외부활동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제2의 인생에서 마저 의무감을 가진 경제활동을 고민하고 있다는 건
생계전선 현역을 계속 이어가셔야 한다는 건.. 너무.. 슬프다.
그 끝이 없을 것만 같아서...
선배님!
은퇴 후 전처럼 돈을 벌지 않고 있다고 해서 뭔가 어색하고 불안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 집안의 가장은 나라서 어쩔 수 없다는 그런 족쇄 같은 숙명에서 벗어나셨으면 합니다.
퇴직 후에도 계속해서 억척스럽게 살아가야 함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퇴직하기 전에 미래를 더 준비해두지 못했다고 자신을 타박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항상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강인함을 줄이시고, 가족들에게 기대기도 하면서 살아보셨으면 합니다.
그동안 충분히 수고하셨으니
이제는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도 채우셨으면 해요.
직장생활 시절과 다르게 살아보는 것을 목표로 삼아보셨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사는 것이 즐겁구나를 느끼는 인생 2막이 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