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집 마당을 지키던 머루나무가 어느새 제 나이를 온몸으로 드러내고 있다. 한때는 아버지의 손길을 한껏 받으며 푸르고 단단하게 자라던 나무였다. 집안의 기둥처럼 든든히 뿌리를 내리고 서 있던 그 나무가, 이제는 무성하던 가지를 제어하지 못한 채 산발처럼 흩어뜨리고 있다. 더는 자신을 돌봐줄 이가 없다는 것을 아는 듯, 잎을 틔우는 일도 꽃을 피우는 일도 어딘지 힘을 잃어 보인다. 마당을 오가며 등을 쓸어주고 장하다 칭찬해 주던 아버지의 손길이, 그 나무에게는 무엇보다 깊은 거름이었음을 이제야 헤아리게 된다.
처음 심었을 때만 해도 머루나무는 한 해 맛보기로 몇 알의 열매를 맺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듬해부터는 가지가 휘어질 만큼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기 시작했다. 마당을 드나드는 아버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날 줄 몰랐고, 촘촘히 박힌 머루 송이를 자식 보듯 어루만지며 대견해하셨다. 친정에 갈 때마다, 금세 말라버릴 듯 가냘프던 묘목이 제법 의젓한 과일나무로 자라나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태양이 머루 알을 먹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하면, 알알이 살이 오르며 탐스럽게 익어갔다. 그맘때가 되면 아버지는 객지에 나간 자식들을 불러 모으곤 하셨다. 달큰한 머루 향이 퍼지는 나무 아래서 삼겹살을 구우며, 북적이는 사람 냄새 속에 사는 재미를 나누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러나 머루가 한창 익어가던 어느 해, 예상치 못한 일이 찾아왔다. 아버지의 사랑을 한껏 받으며 자라던 나무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서서히 병들기 시작한 것이다. 제 몸집을 헤아리지 못한 채 무턱대고 매달린 열매들로 가지는 찢어지고 부러졌다. 양분은 모자라고, 살은 말라가며 그 틈으로 벌레까지 스며들었다. 과실나무를 처음 키워보셨던 아버지는, 나무 속 깊은 사정까지는 미처 살피지 못하셨던 듯하다. 곁가지를 솎아내어 숨통을 틔워주어야 했건만,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에만 마음을 빼앗긴 채 ‘가지치기’의 때를 놓치고 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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