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붉게 내려앉는 시간, 국립경주박물관에 도착했다. 경주에 오면 늘 가슴이 설렌다. 눈깔사탕과 곶감을 갈무리해 두던 외할머니의 깊은 속곳처럼, 어딘가 신비롭고 내밀한 옛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아서다. 이천 년 역사를 한눈에 축약해 놓은 이곳에 발을 들이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신라의 시간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다.
동궁과 월지의 풍경을 눈에 담고 홀린 듯 월지관으로 향했다. 그곳엔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화려한 능에서 발견된 부장품들과 달리, 이곳의 유물들은 통일신라 사람들의 고단하고도 생생한 숨결이 묻어나는 생활용품이 많아 더욱 정겨웠다. 정교한 제사 용기와 찬란한 불교 유물 사이에서 유독 내 시선을 붙든 것은 집채만 한 거대 항아리, ‘명문대옹(銘文大瓮)’이었다.
“세상에, 항아리가 어찌 이리도 클까.”
사람 키만 한 그 듬직한 자태에 압도당해 한참을 서성였다. 항아리 목 부분에 새겨진 ‘十石入瓮(십석입옹)’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무려 곡식 열 석을 담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당시 열 명 남짓한 식구가 겨울을 나려면 이런 항아리 여덟 개 분량의 식량이 필요했다고 하니, 그 거대한 용량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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