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사근히 스치며 오래된 기억 같은 향을 실어 나른다. 콧속을 훅 채우는 이 알싸하고도 비릿한 냄새는 봄볕에 기대어 다복다복 올라온 쑥의 숨결이다. 공원 한 켠, 볕이 잘 드는 둔덕에 몸을 낮추고 앉아 쑥을 뜯는 여인이 보인다. 아직은 아기 손가락 끝만도 못한 여린 순이 소쿠리에 담길 때마다, 대지의 체온 같은 온기가 내 발등까지 조용히 번져 온다.
여인은 오늘 하늘이 티 하나 없이 맑다며 들뜬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고개를 들어 보니 과연 하늘빛이 전과는 다르다. 무채색의 겨울이 물러간 자리, 연둣빛 풀잎의 여린 결이 이토록 선명했던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세상이 환할수록 내게 봄은 늘 위태로운 손님이었다. 겨울의 완강한 얼음장을 뚫고 나오는 생명들의 신음이 들리는 듯해서였다.
봄은 결코 공짜로 오는 법이 없다. 얼어붙은 땅을 찢고 나오는 새순의 등은 굽어 있고, 꽃을 피우기 위해 제 몸의 진액을 다 짜내는 나무의 몸짓은 차라리 처절하다. 꽃샘바람이 훑고 지나갈 때마다 파르르 떨리는 꽃잎을 보면, 저 화사함이 사실은 죽음과 맞바꾼 마지막 안간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해지곤 했다.
그 위태로움은 봄이 가진 양면성 때문이다. 겉으로는 생동의 찬가가 울려 퍼지는 듯해도, 그 이면에는 여전히 앙상한 뼈대를 드러낸 고목과 마른풀들이 겨울의 잔해처럼 널려 있다. 온기와 냉기가 교차하는 그 경계 위에서 연약한 생명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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