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키에 숨겨진 아름다운 비밀
컴퓨터를 하다가 실수로 Shift키를 연속적으로 눌러 “고정키를 켜시겠습니까?”라는 알림이 뜬 적이 있을 겁니다. 아니오를 눌러 창을 닫아도 Shift키를 몇 번 누르게 되면 또다시 나오게 되는 이 알림 창.
도대체 윈도우에서 이 고정키라는 기능은 왜 존재하고 있으며 오늘날 과연 사용하고 있는 사람이 있기나 한지 궁금하시지 않으셨나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고정키는 신체적으로 불편하거나 키보드를 사용할 때 두 손을 사용하기 힘든 유저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도구입니다. Ctrl, Shift, Alt 등을 포함한 여러 개의 키를 동시에 입력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착한 도구죠.
이 고정키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꽤 오래 전인 1970년도로 돌아가 봐야 합니다.
1971년, 위스콘신 공과대학의 학생이었던 그렉 밴더하이덴(Gregg Vanderheiden)은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친구의 의사소통을 도와주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서 Trace R&D 센터 연구팀을 설립하게 됩니다.
설립한 지 6개월이 지나 그렉 밴더하이덴은 자신의 연구팀과 함께 장애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 보드의 문자를 가리키면 TV 화면에 단어가 입력되는, 일명 Autocom이라는 것을 개발하게 됩니다.
이 연구 센터가 가지고 있는 목적은 이후에도 확실했습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편해질 수 있는 기술들을 연구하고 만들어내는 것이었죠.
시간이 지나 1980년도에는 개인용 컴퓨터, PC의 보급이 시작되자 Trace Center에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손쉽게 컴퓨터를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없을까 고민을 하게 됩니다.
특히 1986년, IBM에서 출시한 거대한 사이즈의 키보드, 'Model M'이 등장하게 되는데요.
이 Model M 키보드가 선보인 Ctrl, Shift, Alt 등의 위치가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타 사의 컴퓨터 키보드들도 이러한 Model M의 모습을 점차 따라가게 되어 오늘날까지도 이 키보드가 만든 레이아웃이 유지되게 됩니다.
문제는 이 Model M 키보드가 이전에 등장했던 키보드들보다 사이즈도 훨씬 커졌기 때문에 컨트롤 쉬프트 알트 같은 키를 누르면서 동시에 다른 키들을 함께 누르는 단축키 사용이 어려워졌고, 신체적으로 불편했던 사람들은 두 손을 이용해 컴퓨터를 하기 더 어려워지게 됩니다.
이렇게 신체적으로 불편하거나 두 손을 사용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Trace Center에서는 고정키, 영어로 Sticky Keys라는 도구를 개발하게 됩니다.
단순히 이 Model M 키보드 때문에 만든 기능이라기 보단 앞으로 미래에 다가올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하게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기능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죠?
고정키를 처음 개발할 때만 하더라도 DOS용으로 개발되었었는데 Apple 측에서 먼저 컨택을 해 1988년 클래식 맥 OS였던 시스템 6 버전부터 고정키 기능이 추가됩니다.
실제로 애플의 직원이 고정키를 사용해서 덕을 본 사연이 있었는데 당시 애플의 소프트웨어 부사장이었던 크리스 에스피노사가 파리에서 팔을 다쳐 팔꿈치 부상을 당해 양손을 사용할 수 없었을 때 고정키 기능의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다고 하죠.
반면 윈도우는 고정키의 지원이 조금 늦었습니다. 1995년에 출시한 윈도우 95에 가서야 고정키가 등장하죠.
이 당시에 고정키는 물론 오늘날 윈도우 11까지 꾸준하게 지원하고 있는 토글 키, 필터 키 역시 윈도우 95에서부터 추가된 기능들입니다.
참고로 토글 키 역시 Trace Center에서 시각 장애인들을 위해 개발한 도구로 Caps Lock, Num Lock, Scroll Lock 같이 토글키가 켜져 있을 때는 높은 소리 꺼져있을 때 낮은 소리를 내게 해 이용자들에게 청각적으로 도움을 주는 기능이죠.
오늘날 Trace Center에서 만든 고정키와 토글 키는 국제표준화기구인 ISO에 등록되어 있어 표준적으로 PC와 맥, 크롬 북부터 아이패드까지 원활한 기기 사용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기본적으로 탑재돼 있어야 하는 필수 기능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