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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텍스트로그 Jul 23. 2024

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

순간을 기록으로 영원히 기억하기


 포토그래픽 메모리라는 말을 아시나요? 영화나 책에서 종종 등장하는 이 능력은 보고 들은 것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기억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탈리아 작가 보르헤스의 단편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 나오는 주인공 푸네스가 그렇습니다. 그는 특정한 날의 구름 모양, 산에 있는 각 나무의 잎사귀 하나하나, 그리고 이를 지각했을 때의 느낌까지도 완벽하게 기억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잊고 싶은 고통의 순간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지요. '망각은 신이 준 축복'이라는 말처럼, 모든 순간을 영원히 기억한다면 일상을 살아가기 힘들 것 같습니다.


 반면,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 레오나르드 셸비는 10분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입니다. 10분마다 그의 모든 기억이 사라지죠. 그는 메모, 사진, 문신 등의 기록을 활용하여 아내를 살해한 범인을 쫓습니다. 셸비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억은 방의 모양을 바꿀 수 있고, 차의 색을 바꿀 수 있어. 그러니까, 기억은 왜곡될 수 있어. 기억은 단지 해석일 뿐이야. 기억은 기록이 아니지.’ 그에게 의지할 곳은 오직 기록뿐입니다.

 

 우리는 셸비처럼 10분마다 기억이 사라지지도 않고, 지금 당장 무언가를 반드시 기억해 내야만 하는 극한의 상황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푸네스처럼 모든 것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것도 아니지요. 그러나 우리에게는 분명,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여행지의 기록]

 몇 년 전 겨울 제주 여행을 다녀와서 남긴 기록을 다시 읽어 봤는데요. 기록하지 않았다면 '좋았었지'라는 느낌, 단편적인 장면의 기억들만 있었을 거에요. 그런데 숙소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느꼈던 감정과 생각, 영화를 보고 즐겼던 시간은 기록으로 기억납니다.  기록해 놓았던 것들은 읽는 그 순간마다 생생히 살아납니다. 장면이 떠올라 미소 짓게 되어요. 하지만 이 때의 제주 여행도 기록에 없는 것들은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기록에 없는 그 외 어디를 갔고, 무엇을 먹고 보았고 특히 무엇을 느꼈는지는 흐릿해요. 


[가족과의 소중한 시간의 기록]

 저의 어린 시절을 담은 앨범에는 엄마의 기록이 한 줄씩 쓰여 있는 사진들이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100일 사진' 등 제목 같은 한 줄부터 '토끼눈을 하고, 내가 제일 귀여워'와 같은 엄마의 해석이 담긴 한 줄까지. 그 기록 때문에 어릴 적 사진 보는 일이 더 즐거워요. 저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한 줄 한 줄의 문장 속에 엄마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수 있어서입니다.


 저도 아이의 사진에 한 줄씩 기록을 남깁니다. 지금은 사진과 영상이 넘쳐나니 모든 사진에 기록을 남길 순 없지만, 오래 기억하고 추억하고 싶은 아이의 순간에는 제 생각과 느낌을 적어 놓습니다. 그런데 사실 보물 같은 순간은 빠르게 지나가 버리기 때문에, 카메라에 담지 못할 때가 더 많아요. 어느 날, 잠자리에서 아이와 누워 별 모양 수면 등을 켰어요. 그러자 아이가 '엄마, 커튼에 별 열매가 열렸어. 엄마 별열매 따줄게'라고 말하더라고요. 별 열매가 열렸다니. 그 표현이 아름다웠습니다. 이런 순간을 생각날 때 기록으로 남깁니다. 그때의 생각과 느낌도 같이 남겨요. 이렇게 쌓인 기록은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소중한 보물이 되고 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기록도 남깁니다. 어느 날 자녀가 대학교에 입학한 선배님이 말씀하시더라고요. '부모님과 여행을 갔는데 부모님을 중심으로 일정을 짜고, 부모님 중심으로 사진도 찍어드렸더니 정말 좋아하시는 거야. 그때 새삼 느꼈지. 지금까지 아이 키울 때는 항상 아이 중심이었고, 다 같이 시간을 보내도 나의 시선은 항상 아이를 향해 있었다는 것을. 부모님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도 새삼 깨달았어.'


 제 사진첩을 들여다보았어요. 자주 만나지 못하는 부모님과 겨우 함께한 날들에도 아이의 사진이 더 많아 보였습니다. 엄마가 생신 선물로 만들어 드렸던 달력을 소중히 여기셨던 기억이 문득 났습니다. 엄마의 사진을 넣고 사진마다 짤막한 편지 같은 글을 남겨 만든 달력이었거든요. 마치 엄마가 저의 어린 시절 사진에 해주셨던 것처럼요.


 이후로 의식적으로 카메라에 부모님을 더 담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아빠가 우리 왔다고 요리를 해주시는 모습, 아이와 함께하시는 모습. 그리고 부모님의 사진에도 한 줄씩 글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모아서 앨범으로 선물 드릴 생각을 하면 지금부터 기분이 좋아져요. 언젠가 흐릿해져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순간이, 사진과 영상, 그리고 무엇보다 생각과 느낌을 담은 글로 남겨진다면 언제고 지금, 이 순간을 다시 살아나게 할 수 있습니다.


[일상의 기록]

 매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도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특별한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돌아보면 간직하고 싶은 일들이 보입니다. 

어느 토요일 오후의 기록을 꺼내볼께요. 


" 아이와 함께 원래는 영화를 볼 계획이었다. 아이가 일어나서 목이 아프다고 하여 영화는 취소하고, 병원에 다녀와서 점심 먹고, 아이는 낮잠 재웠다. 크게 특별할 게 없는 하루인가. 그런데 더 찬찬히 생각해 보니 아이와 병원에서 돌아오면서 설산의 풍경을 보고 감탄했던 게 떠올랐다. '와, 정말 예쁘다. 눈 쌓인 산 좀 봐' 그러자 아이가 말했다. '너무 예뻐서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이 말을 듣고 '아니 나보다 더 감성적이네. 그런데 이런 표현은 어디서 배웠을까? 아, 오늘 아침에 읽은 책의 영향이구나. 프란 핀타데라의 '엄마, 우리는 왜 울어요?'라는 그림책이었지. 내가 읽어도 정말 좋아서 필사해야지 생각했었는데, 지나칠 뻔했네'라고까지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하루를 들여다보니,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마음껏 감탄한 시간이 있었고, 보물 같은 아이의 말을 발견했고, 수집하고 싶은 문장이 있는 그림책을 알게 되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그날의 하루는 기록 속에 언제든 펼쳐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에서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나를 만든 나의 과거는 극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은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 모든 걸 숨김없이 토해내기 위해 들인 나의 노력은 한 인간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네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헛수고가 아니라고 생각하네.'


 맛있게 먹은 음식, 새롭게 시작한 일, 재밌게 본 콘텐츠. 하루를, 혹은 한 주를 들여다보며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발견을 기록합니다. 기록으로 '기억'될 수 있는 시간의 조각이 만들어지지요. 


이렇게 쌓인 순간들이 우리 삶의 소중한 이야기가 되어갑니다. 

스쳐 지나가 버릴 순간을 기록함으로써, 

나 자신에게 그리고 기록을 보게 될 누군가에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이야기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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