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가기 전 들른 다이소에서 스노클링 빨대를 보고 멈칫했다. ‘나 이거 사야 하나?’ 미리 결론을 말하자면 이때 꼭 사야 했다. 한여름의 뜨거운 바다를 우습게 보지 말 걸 그랬다. 여행을 같이 가기로 한 친구와 각자 스케줄이 있어서 우리는 따로따로 동해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타면 쾌청 비디오를 틀은 느낌이어서 적당한 주기가 되면 버스를 오래오래 타줘야 한다. 머릿속을 청소한다고나 할까. 그런데 휴가철에 버스가 너무 밀려서 생각보다 오래 머리를 청소했다.
내가 먼저 목적지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했다. 방에 도착해서 곧장 씻고 잠옷을 입고 침대에 쏙 들어갔다. 누가 보면 1일 차 끝났다. 친구가 올 때까지 이 침대는 다 내 거다. 텔레비전도 볼 만큼 보고, 방 탐험도 여기저기 했다. 이제 졸려서 불을 끄려는데 아무리 찾아도 불 끄는 버튼이 없었다. 이제 지쳐서 힘도 없고 그냥 조용한 거 틀어놓고 자야지 하고 리모컨을 든 순간 불 끄는 버튼 발견! 기뻐서 잠이 깼다. 텔레비전을 계속 보다 보니 또 추웠다. 에어컨 리모컨을 찾기 위해 방을 두어 바퀴 돌고 나서 티비 리모컨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슬슬 짜증 난다. 하지만 지쳤다. 한 30분 정도 자고 나서 짐을 풀다 보니 친구가 왔다.
친구랑 보양 음식으로 장어를 먹고 빵집에 들러 꼭 먹어야 하는 쿠키를 사가기로 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리가 안지 참 오래됐다.’ ‘이젠 그만 봐도 된다.’는 등 농담을 주고받으며 팔랑팔랑 걸어왔다. 쿠키는 꼭 먹지 않아도 되는 맛이어서 우리 둘 다 속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다음날은 한섬해수욕장에 가서 바다에 발을 담그기로 했다. 생각보다 바다는 파랗고, 해수욕장 옆으로 나무랑 바위가 같이 있어서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바닷물도 덜 끈적여서 쾌적해서, 그 바다를 보고 그냥 몸까지 폭 담가서 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까지만 해도 여유롭게 놀기로 해서 옷이랑 화장까지 다 신경 쓰고 나와서 말 꺼내기가 망설여졌다. 그렇지만 지금 말을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야 담글래?” 친구가 대답했다. “와 나도 그 말하려 그랬는데.” 친구가 MBTI J라 그랬는데 이 상황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이지 않아 안심했다. 편의점에서 옷을 사서, 우리는 곧장 바다로 향했다.
예쁘게 사진 찍겠다는 결심은 버리길 잘했다. 친구 옆에서 개헤엄으로 파도를 타는 나에게 친구는 박수를 보냈다. ‘아 강아지가 이 맛에 재롱부리는구나’라고 강아지를 이해했다. 진짜 칭찬은 누구든 춤추게 한다. 놀다 보니 튜브랑 파라솔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빌려왔지만 파라솔이 꽤 무거웠다. 친구랑 어정쩡하게 용쓰고 있으니까 지나가던 사람이 도와줬다. 그렇지만 그 사람도 힘이 모자란 듯했다. ‘마음이 고마운 거지 뭐..’ 대충 생각하고 이렇게 본거지를 꾸리고 물놀이를 했다. 조금 깊이 들어가니까 몸이 투명한 치어도 보이고 도파민이 꼭대기를 때렸다.
놀다가 상어를 조심하라고 방송이 나왔다. 상어 조심은 어떻게 하는 걸까. 친구랑 다리가 멀쩡한지 물 밑에 검은 그림자는 없는지 살폈다. 다행히 다리는 두 개씩 무사하다. 세월이 더 흐르면 겁나서 물에 못 들어오겠다. 물에 들어갔다가 누워서 몸을 말렸다가를 몇 차례, 정말 배고팠다. 일하다 보면 정말 얕게 배가 공복감이 들 때쯤 점심식사를 해서 이렇게 허기질 일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물놀이를 하니 배 안에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었다. 이런 진짜 배고픔이 오랜만이었고 오히려 몸이 가벼웠다. 그나저나 여행 오기 전에 다이소에서 스노쿨링 빨대를 살걸.. 자꾸 생각이 났다. 내년에는 꼭 빨대 사서 와야지!
물놀이를 마치고 동해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낸 뒤 6시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1박 2일이지만 사실상 전날 저녁에 도착해서 1박 1일 일정이었다.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집에 돌아왔다. 그래도 이 나이에도 망설이지 않고 같이 바다를 들어갈 수 있는 친구가 있어서 참 뿌듯했다. 여행 중에 주고받은 ‘이젠 안 봐도 된다.’는 농담조차 취소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