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 헤르만 헤세 (1919)
이 작품은 약 5년 전쯤 철학 모임에서 읽고 나눔을 해야 하는 작품이라 처음 읽게 되었는데 그때는 내가 고전문학을 막 읽기 시작할 때였다.
처음 읽고 나서 이 작품은 정말 전율 그 자체였다! 얼마나 재밌던지! 얼마나 짜릿하던지! 얼마나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은지!!! 헤세가 이렇게 내가 느끼는 부분들을 느낀다는 게 너무나 신기했고 그것을 그렇게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 또 감탄하면서 읽었다.
작가와 나의 가장 큰 공통점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 가운데 삶을 살아간다는 것과 영적인 부분을 예민하게 표현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내가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워치만 리의 <혼의 잠재력>을 읽으며 물리적이고 합리적, 이성적인 부분을 뛰어넘은 영적인 영역이 얼마나 생생하게 살아 존재하고 있는지를 깊이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 더더욱 이 작품에 나오는 데미안의 이성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무척 신비하면서 이상한 능력과 행동들이 너무나 이해가 되고 짜릿하기까지 했다. 보통 독자들이 보기엔 분명 작가의 상상으로 그려졌을 거라는, 마법 같은 일들이 난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정말 흥분되며 큰 쾌감을 느끼며 읽었던 게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래서 그 철학모임에 가서 내가 실제적으로 생생히 느꼈다며 나눔을 할 때 다들 벙찐 얼굴로 내 이야기를 들었던 장면도 잊지 못함 ^^;; ㅎㅎㅎ
주인공 싱클레어와 오르간연주자 피스토리우스가 벽난로에서 장작을 태우며 일렁이는 불꽃들을 넋을 놓고 보면서 이런 시간이 철학하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정말 강렬하게 인상적이었다. 그 불꽃 안에 싱클레어 머릿속 깊이 있었던 황금빛 매의 머리도 보이고 그물 모양도 보이고 다양한 형상들이 발견되었다. 싱클레어는 그 불꽃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성향들을 강화하고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 부분을 읽은 지 얼마나 안 돼서 제주도에 있는 엉또폭포에 갔었는데 폭포에 떨어지는 물보라가 힘껏 달려가는 말로 보였다! 얼마나 경이롭게 보이는지! 그들이 느끼는 감동과 감탄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런 자연의 경이로움을 가만히 묵상하면 이성적 생각이 아니라 직관적인 감각과 깊은 내면의 있는 것들이 투영되어 그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이걸 경험해서 정말 놀라웠고 그것을 묘사한 헤세에 대한 애정도 더 커지게 됨!!
이 작품 안에서 제일 안타까운 것은 데미안을 통해 상황들을 깊이 볼 수 있게 되고 엄청난 정신력으로 주변을 다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통찰력을 지니게 된 싱클레어가 자신에게 큰 깨달음을 주고 많은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스승과 같은 피스토리우스의 약점을 툭 내뱉음으로 그들이 다시는 예전과 관계가 될 수 없게 된 장면이었다. 처음에 읽을 때 너무 안타까워서 나도 모르게 악! 소리 지름 ㅠㅠ 진실이 얼마나 잔인한지... 눈앞에 번쩍이는 장검이 휘둘러지고 피스토리우스와 같이 내가 칼 맞은 기분이었음 ㅠㅠ 싱클레어도 너무나 괴로워서 자신이 한 말을 부인하고 싶었으나 너무나 사실이라 말할 수도 없음 ㅠㅠ 피스토리우스가 이끌었던 그 높은 길은 싱클레어는 갈 수 있었으나 정작 본인은 갈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런 피스토리우스에게 나의 모습이 보임.. ㅠㅠ 큰 아이를 가르칠 때 그 아이에게 높은 이상을 보여주며 갈 곳이라 일러주었고 훌륭하게 그 아이는 가고 있으나 난 정작 그곳에 오르지 못한 것 같아서 피스토리우스의 마음이 더 공감이 되었다 ㅠㅠ
처음 읽었을 때는 이 부분들이 가장 크게 남았었는데 이번에 두 번째 읽었을 때는 싱클레어의 은혜에 대한 무지가 정말 안타까웠다. 열 살 때, 나쁜 친구 프린츠 크로머에게 허세 좀 부리고 싶어서 사과를 훔쳤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크로머가 그것을 약점 잡아 싱클레어에게 돈을 뜯어내고 자신의 몸종처럼 부린다. 싱클레어는 항상 평안과 행복을 주는, 빛 그 자체인 집이 더 이상 자신과 상관없다고 느끼고 자신은 더 이상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으며 거짓말에 거짓말을 더하고 계속 돈을 훔친다. 다행히 데미안이 도와주어서 크로머의 손에서 벗어나나 싱클레어는 지옥과 같은 삶을 이미 경험함... 그의 머릿속에 두 세계로 나눠져 있는데 빛과 어둠의 세계로 나눠져 있고 자신은 빛의 세계에 살았으나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이 아님을 느낀다. 그가 사실대로 부모에게 바로 말했다면 그런 지옥은 펼쳐지지 않았을 텐데! 그는 충분히 용서받고 괴롭지 않았을 텐데... 그는 사랑을, 은혜를 너무 몰랐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 그의 인생관을 통째로 흔들릴만한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바로 카인의 후예 이야기와 예수와 매달린 도둑이야기이다.
카인의 이야기는 동생 아벨을 죽여서 살던 곳에 쫓겨나게 된 카인이 다른 자들에게 죽임을 당할 까봐 보호를 받기 위해 신에게 표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카인이 대단한 지혜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자여서 다른 자들이 그를 두려워하여 피했는데 그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카인의 이야기를 만들었을 거라는 것이다.
예수와 매달린 도둑 이야기는 예수를 보고 회심한 도둑은 배교한 간사한 놈이지만 끝까지 악마의 손을 놓지 않고 끝까지 변함없던 도둑은 사나이답고 개성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너무나 교양 있는 부유한 보수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싱클레어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충격은 아직 자신의 신앙이 확고하게 자리 잡히기 전이었던 그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고 그는 원가족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는 그 모습을 진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이라고 여긴다.
계속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모습, 자신의 운명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것이 가장 가치 있는 모습이라고 헤세는 <데미안>을 포함, 다른 작품들을 통해 말한다. 그의 작품을 보면 실제로 그가 얼마나 참 자아를 찾기 위해, 진짜 삶을 살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몸부림쳤는지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작품에 나오는 데미안을 생각해 보면 싱클레어에게 새로운 세계를 눈 뜨게 해 주고 그를 성장시켜 주어서 처음에 <데미안>을 만났을 때는 그가 천사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천사보다는 악마 쪽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미안의 깔끔하고 능력 있고 차가운 이미지가 메피스토를 떠오르게 한다. 그는 싱클레어가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운명에 충성하도록 이끈다. 싱클레어 안에는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모든 것을 용서하고 용납하고 새롭게 해 줄 수 있는 선한 신의 자리는 없다. 극한 결벽증으로 거룩하지 않은 것들은 쳐다도 안 보고 어떠한 용납도 할 수 없는 신으로 그는 하나님을 오해한다. 그렇게 자신이 어둠의 위치에 있다고 여기는데 그런 싱클레어에게 어둠을 관장하는, 악마까지 포용하는 아브락사스를 찾고 그에게 예배해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던 자가 바로 데미안이다. 그리고 싱클레어를 자기처럼 되도록 만든다. 이번에 다시 보니 데미안에 대해 서늘하고 섬뜩한 느낌이 든다.
신의 대한 헤세의 생각은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지만 그는 진리를 추구하는 끊임없는 열정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과 예민한 영적인 감각과 그것들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정말 탁월한 작가다. 그것만으로도 헤세의 작품은 정말 볼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