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헤르만 헤세 (1930)
나의 친구는 이 작품에 나오는 골드문트을 무척 맘에 들어하지 않았는데 도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그럴까? 하고 궁금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또 생각나서 이번엔 직접 만나보게 되었다.
이 작품은 골드문트가 주인공인데 그의 모습은 헤세의 여러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데미안>의 싱클레어,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의 주인공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마치 알고 있던 인물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참 친근했다. 특히 <싯다르타>의 가톨릭 버전인가 싶었다는 ㅋㅋㅋ 다 읽고 나선 배경만 수도원이고 주인공 골드문트는 <달과 6펜스>의 스트릭랜드의 모습을 더 많이 닮은 듯한 느낌이었다.
이 작품을 한국에서는 <지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여러 책으로 출간되었는데 그 제목이 내용을 다 담고 있지는 않으나 많은 부분 포괄하고 있다. 나르치스는 지적인 부분에서 경지에 오른 사람이라면 골드문트는 예술의 경지의 오른 인물이다. 나르치스는 수도원에서 스스로 엄청 절제하는 삶을 살면서 앎을 갈고닦는다. 골드문트는 나르치스를 너무나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해서 그의 수준의 맞추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나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그것을 일깨워준다. 골드문트는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다 여자에 처음 눈 뜨고 무척 괴로워한다. 그러다 신부님의 신부름을 나갔다가 집시 여인의 유혹을 빠져 그녀와 육적인 경험을 하며 자신이 정말 행복하다고 깨닫는다. 그는 자신이 더 이상 수도원에서 지낼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을 깨닫고 자신의 전부 같았던 나르치스와 작별 후 몰래 빠져나온다.
그는 자신을 유혹한 그 여인과 계속 함께 있을 줄 알았으나 그녀는 남편이 있었고 그들은 황홀한 하룻밤을 보내고 헤어진다. 골드문트는 그렇게 방황을 시작하고 그의 젊음과 지적이며 아름다운 모습과 순수한 사랑에 여인들은 그와 함께 하기를 청하고 그렇게 많은 여인들과 육체적 관계를 갖는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관계를 하는 모습이 욕망에만 미쳐서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아름다운 것을 갖고 싶어서, 정말 사랑하고 행복해서 하는 모습들을 보인다. 정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골드문트는 정말 다양한 여인들과 관계를 하고 그도 물론 젊고 아름다운 여인과 하는 것이 더 좋았으나 전혀 아름답지 않고 나이가 많은 여성과도 그녀들이 원하면 기꺼이 응해주고 그녀들을 아름답게 여겨주고 그 시간만큼은 정말 순수하게 사랑해 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들도 그 순간만큼 그에게 온전히 사랑받고 귀하게 여김 받아서 그녀들의 아름다움이 회복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정말 생각지 못했던 포인트였음!
골드문트는 많은 여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더 배우고 노련해지고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를 대부분 해결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 사랑하고 싶고 행복하고 싶은 욕구를 그는 그렇게 채웠다. 그렇게 여인들을 통해 채움 받게 된 큰 이유는 그에겐 어머니에 대한 부재가 컸다. 어머니는 자유분방한, 집시의 삶을 사는 사람이었고 어렸을 때 헤어졌다. 그는 그의 아버지 손에 길러졌고 아버지는 자신의 아내에 대한 혐오가 있었고 그런 사람의 자식인 골드문트를 일부러 어릴 때 수도원에 보내 금욕적인 삶을 살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피를 속일 수 없었고 그 어머니를 너무나 그리워한다. 자신과 사랑을 나누는 여인들에게서 자신의 어머니의 얼굴을 찾으려 하고 일부를 발견하기도 한다.
골드문트는 방황의 삶을 살면서 놀라운 경험들을 많이 하는데 첫 깨달음은 자신과 사랑을 나눠서 절정을 느끼는 여인의 얼굴과 아이를 낳느라 산고 때문에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얼굴을 찡그리는 산모의 표정이 너무나 비슷하다는 것이다. 고통과 극한 쾌감의 얼굴이 일치하다니... 흑사병이 돌아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날 때도 그는 그 생생한 죽음의 현장에도 있고 그 옆에서 술 마시며 춤추고 노래 부르는 무리와도 함께 어울린다. 그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한 번, 자신의 여인을 겁탈하는 남자를 막기 위해 두 번의 살인을 저지른다. 특히 여인을 위하여 남자를 죽일 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눈에서 보이는 희열과 쾌감과 살의의 모습을 정말 인상 깊게 느낀다.
내가 헤세를 참 좋아하는 부분이 이런 부분인데 <데미안>에서도 <싯다르타>에서도 느꼈듯이 이렇게 전혀 반대되는 듯한 감정을 사람은 동시에 느낀다는 것을 예민하게 캐치하고 그것을 정말 잘 표현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살면서 이런 모순된 감정을 동시에 함께 느끼다니 정말 삶은 고통 그 자체구나라고 종종 생각한다. 너무나 사랑해서 평생 함께 하고 싶으면서도 그 순수한 마음이 사라지고 변할까 봐 당장 헤어지고 싶은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하는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정말 추악한 표정과 감정이 뒤섞이는 것이 현실인데 그 현실을 정확히 느끼고 헤세는 놓치지 않고 모두 표현해서 그에게 또 감탄하게 된다. 그 양가감정에 대해 평소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에게 헤세는 당신도 그거 아는구나?! 하면서 같은 종족 같은 느낌이 들어서 참 반갑고 마음에 시원함을 느낀다.
골드문트는 그런 감정들, 특히 사랑, 욕망, 죽음, 희열, 지겨움, 역겨움 등등을 생생히 자주 느낀다. 이런 강한 열정과 감정이 예술적인 부분으로 표현되면서 절정으로 느껴진다. 그 느낌들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느끼고 그것을 아는 골드문트는 그것을 형상화시킬 수 있었고 그걸 보는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내가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다. 정말 충격적이었으니까.... 내가 시스티나 성당에서 그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이걸 정말 사람이 만들었다고? 이게 정말 지금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며 감탄을 그치지 못했다. 그런 감동 아니었을까?
골드문트는 말년에 나르치스의 도움으로 목숨을 겨우 건지고 다시 수도원에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때 나르치스도 골드문트의 놀라운 수준을 인정한다. 골드문트 작품을 보고 나르치스는 평생을 거쳐서 하고 있는 자신의 일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이 맞을까 회의감이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자유를 너무나 사랑하는 골드문트는 묶여 있는 그 삶을 힘들어한다. 약속한 작품을 마무리하고 다시 방황의 삶을 떠나는데 떠나 마자 그는 말에서 떨어져서 사고를 크게 당한다. 바로 돌아왔어야 했으나 그러기 싫어서 오기로 더 외부에서 맴돌았는데 그 때문에 몸이 아주 약해져서 돌아온다. 그 시기에 골드문트는 크게 나이 들어 예전에 아름다운 모습은 사라진다. 여인들은 그의 말에 웃어주고 상냥하게 대하지만 그의 유혹은 거절한다. 골드문트는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늙었는지 깨닫고 더 이상 예전처럼 삶을 살 수 없음을 깨닫고 돌아오게 된다. 그는 더 이상 젊지 않고 아름답지 않으나 그는 그런 자신의 모습이 예전 모습보다 마음에 들었다. 이제 정말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상태가 됨. 이제는 자신의 어머니에게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며 편안해하며 나르치스에게는 자네는 어머니가 없어서 죽을 수 없어서 어떡하냐고 안타까워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너무나 다른 극단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재능을 키우나 둘 다 최고의 경지에 이른다. 정말 극과 극이 통하고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헤세는 그 둘의 삶을 통해서도 말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에게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 길만 요구하거나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크게 알려주는 것 같다. 여기선 <싯다르타>에서 처럼 정말 극락을 발견한 것으로 마무리하지 않고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어머니에게로 돌아간다는 결말도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참 일그러져 있고 흠집도 많고 얼룩이 잔뜩 진 것 같은 골드문트의 삶인데 정말 아름답고 고귀한 것을 가지고 있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느낌이었다.
골드문트의 쾌감에 같이 움찔움찔하고 그의 감탄에 같이 감탄하며 예쁜 장난감과 예술의 차이는 그 안의 신비의 유무임을 깊이 느끼며 풍성하고 즐겁게 이 작품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