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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룡 Jul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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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교수와의 대화

"피해자가 사망할 당시  안의 산소농도가 3.7%까지 낮아졌음을 현장 기체 분석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질소가스 중독으로 인한 질식사가 확실합니다."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다시 내쉬었다. 교수의 눈은 확신으로 번뜩였다. 범석은 '최대한 멍청한 질문만은 피하자'라는 생각으로 머뭇거리다가, 잠시 뒤 신중히 고른 단어들을 천천히 나열했다.
"질소가 사람에게 어떤 작용을 하고, 또 얼마나 위험 한건가요?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들이키면 금방  기절하거나 쓰러지게 되는 건가요?"
범석은 자신의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자신의 아둔한 말주변에는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기로 했다.
"사람이 의식을 잃는 경우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뭐 저혈압으로 인한 쇼크가 있고요, 일사병, 열사병, 만성피로, 철분 결핍, 가스중독 등이 있죠. 아, 과음도 예로 들 수 있겠네요(교수는 왼손으로 소주잔을 들고 마시는 시늉을 했다). 또 다른 경우는 격투 경기에서 자주 나오듯이 조르기로 인해 의식을 잃거나 혹은 강한 충격에 의해 쓰러지기도 합니다. 실신이라고 하죠."
교수는 입고 있는 새하얀 가운의 소매를 한 단씩, 양쪽을 번갈아가며 접었다.
"저혈압성 쇼크나 피로, 철분부족, 과음들에 의한 실신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한국에서는 뭐 의료상식 수준이니까요."
'건강 염려증의 나라가 아니겠는가'. 범석은 속으로 생각하며 교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르기의 경우는 심혈관이나 신경에는 이상이 없이 경동맥을 통해 뇌로 가는 혈액을 막아서 생기는 일시적인 산소부족 현상이에요. 얼른 조르기를 풀고 뇌에 충분한 혈액이 들어가 산소가 공급이 되면 금방 회복할 수 있어요."
고등학교 시절, 잠깐이지만 유도 선수로 활동한 적이 있었던 범석은 머릿속으로 뒤에서 상대방의 도복으로 경동맥을 조여 제압하는 <역십자 조르기>가 떠올랐다. 무의식적으로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서 놀란 범석은 손을 스트레칭하듯이 번갈아 주무르며 다시 초점을 잡고 교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강한 충격에 의한 실신은 중추신경계에 가해진 충격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정신을 잃는 경우인데요, 사실 이 경우는 실신보다는 그로기 상태에 가까워요. 몸을 가누지는 못하지만 의식이 유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심한 교통사고나 산업현장에서의 사고 등으로 중추신경계에 손상을 입게 되면 일시적, 영구적 장애가 생기거나 더 심할 경우 사망에 까지 이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범석의 휴대폰이 메시지 수신 알림으로 떨렸지만 범석은 확인하지 않고 진 교수에게 집중했다.
"하지만 질식의 경우는 달라요. 좀 복잡합니다. 특히나 이번 사건의 경우는 아주 치명적이라 할 수 있는데요."
교수는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조금 처진 안경을 고쳐 올리고는 양손을 깍지를 낀 뒤 책상 앞에 천천히 올려놓았다.
"일단 지구 대기에 대한 짧은 설명이 필요해요. 지구 대기 중 질소는 78%를 차지하고 있는데,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중에도 정상적인 산소 농도인 21%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질소입니다. 우리는 숨을 쉬는 매 순간 산소가 섞인 질소를 마시며 호흡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제부터가 중요한데요, 이 사건과 같이 질소에 의한 산소결핍성 질식은 공기 중 높아진 질소 농도가 산소 농도를 흐리면서 호흡으로 산소를 흡수하지 못해 이뤄지는 질식입니다. 그래서 질소에 의한 질식은 전조증상이 없어요. 신체가 어떠한 거부반응도 하지 못한 채 잠이 들 듯 의식을 잃고 사망한다는 것입니다. 무색, 무미, 무취에 호흡까지 가능한 기체라, 사건 현장 주변에 정황상의 증거가 없다면 부검에서도 특이 소견을 발견할 수 없어 추측으로만 질식의 정황을 판단할 뿐이에요."
교수의 얘기를 듣고 범석은 제 작년 여의도 금융인 사망사건이 떠올랐다. 수십 명의 고객들과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친 그는 돌연 잠적해, 연락이 끊긴 지 이틀 만에 한 시민의 신고로 한강공원 주차장의 본인 소유의 차량 안에서 발견되었다. 운전석에서 잠을 자듯 평온한 상태로 사망한 그의 옆 보조석에는 노즐이 열린 채 텅 비어있는 질소가스통이 놓여있었다.
범석이 잠깐의 서늘한 침묵을 깨고 교수에게 물었다.
"그럼 그렇게 위험성이 상당한 질소가 어떻게 인터넷 쇼핑으로 개인에게 판매가 되고 있을까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질소는 대기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너무도 흔한 기체입니다. 불활성 기체 즉, 다른 물질에게 영향을 주거나 서로 반응하지 않아 여러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실상 사용하지 않는 분야를 열거하는 것이 더 빠를 듯합니다. 과학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상업적으로도 불이 붙지 않는 질소를 아주 많이 사용하고요. 소방, 항공, 해양, 요식업은 물론 요즘은 카페에서도 사용해서 <니트로 커피>라는 게 인기가 많은 거 같더라고요."
장난기가 많은 얼굴이라고 범석은 생각했다.
"제가 특수기체 관련법이나 유통법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질소 혼합물까지 생각하면 너무 방대한 분야에서 사용되기에, 아직은 그만큼의 디테일한 법이 없는 것이 그 이유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심지어 봉지 과자에도 많이 들어가잖아요. '마트에서 질소 한 봉지를 사서 뜯어보니 그 안에 과자까지 들어있더라'라는 농담도 있지 않습니까."
교수는 빙긋 웃었다. 범석은 웃지 않았다. 교수는 무안함을 숨긴 채 다시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
"이번 사건에서의 쟁점은 제 생각입니다만, '자살이 확실한 가'인 거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장 형사님? 자살이라는 명백한 증거는 아직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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